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영화들이 있다. <러브 액츄얼리>, <브리짓 존스의 일기>, <로맨틱 홀리데이> 등 크리스마스를 대표하는 영화들은 한 해의 끝과 겨울이라는 드라마틱한 설정을 활용한 ‘달달함’ 으로 해마다 많은 사람들의 연말을 따뜻하게도 만들었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한 가족영화 <패밀리맨>은 조금 다르다.
1987년의 뉴욕 공항, 잭과 케이트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잭이 불투명한 자신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사랑하는 연인 케이트를 뉴욕에 두고 런던으로 인턴쉽을 떠나려고 한다. 케이트는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냐며 그를 붙잡지만 겨우 1년일 뿐이며 잭은 비행기에 오른다.
명심하자. 여자가 이런 눈을 하고 가지 말라고 할 때는 가면 안 된다.
그렇게 13년이 흘러 2000년, 잭은 월스트리트 최고의 투자전문가로서의 생을 살아간다. 맨하튼의 펜트하우스에 살면서 페라리를 몰고 이천불짜리 양복에 매일 밤 침실로 부를 수 있는 여자까지, 그는 필요한게 있냐는 다른 사람의 말에 “아니, 나는 전부 다 가졌어” 라고 얘기할 만큼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살고 있다.
그런 그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는 일이라고는 또 한번의 M&A를 성사시켜서 최고의 연말을 보내는 것. 의욕에 차있는 잭은 13년 만에 헤어진 연인 케이트에게 걸려온 전화를 무시하고 이브의 늦은 밤에야 집으로 돌아온다.
언뜻 보면 뻔해 보이는 가족영화 같아 보이지만 <패밀리맨>에는 한가지 흥미로운 요소가 있다. 바로 잭이13년전에 런던으로 떠나면서 포기했던, 또 다른 삶을 사는 기회를 갖는 다는 점이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자고 깨보니 그의 옆에는 13년 전의 연인 케이트가 있다. 무슨일 인가 싶은 그에게로 두 딸이 달려오고 어느새 거대한 강아지까지 낡은 침대의 한구석을 차지한다. 회사로 가보지만 모두 잭을 모른다. CEO의 명패는 이미 바뀐지 오래다. 영문도 모른 채 어리둥절한 그에게 ‘신’이라며 등장한 한 남자는 정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뭔지 알게 되면 원래의 삶으로 돌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버린다.
CEO에서 그저 평범한 가족으로 돌변한 잭
그제서야 자신이 13년 전에 포기했던 또 다른 삶 속에 들어와 있음을 깨달은 잭. 혼자가 익숙했던 그는 이 지나친 가족애가 버겁다. 무엇보다 맨하탄을 내려다 보던 사무실의 창과 페라리가 그립다.
영화 <패밀리맨>은 ‘만약’ 이라는 가정을 두고, 극단적으로 반대인 삶을 보여주면서 당신이 정말로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를 깨닫게 해주는 가족영화다. 어디선가 한번쯤 봤을 법한 이야기가 지겨워 보일 수도 있지만 <패밀리맨>이 특별한 이유는 주인공 잭은 ‘필요한 것이 없는’ 완벽한 사람이라는데 있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케이트의 품에서 깨기 전에도 그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었다. 스스로 전혀 불만이 없었던 그가 갑자기 전혀 다른 경우의 삶을 사는 것은 그저 우연이었다. 그는 그 우연한 기회를 통해 자신이 미처 몰랐던 부족한 무언가를 깨달아 간다. <패밀리맨>은 니콜라스 케이지 특유의 어벙벙한 표정을 십분 활용하여 그 모든 과정을 유머와 웃음으로 재미있게, 그리고 따뜻하게 그려낸다.
“잭, 당신과 결혼하지 않았으면 난 어떤 삶을 살았을까? 아마도 언제나 확신할 수 있는 뭔가가 빠졌을 꺼야.당신과, 애들. 당신은 어때?”
“나는 이 세상 어디보다 지금 당신과 여기 있고 싶다는 거. 그거 하나는 확신해.”
잭에게 찾아온 우연은 구운몽과 같은 한 순간의 꿈이었을까?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자신의 또 다른 삶을 엿본 남자는 그대로 멈출 수 없다. 13년 전의 그가 불확실한 미래를 붙잡기 위해 그랬듯이.
2000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했던 <패밀리맨> 은 극중의 배경도 크리스마스지만 영화 곳곳에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돋구는 장치와 음악들이 가득하다. 뿐만 아니라 가족의 사랑을 표현하기에 부족할 게 없는 잭의 두 딸, 애니와 죠쉬를 보고 있자면 오래 전 <나홀로집에>의 ‘케빈’ 을 처음 봤을 때의 흐믓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의 공항에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때로는 후회를 낳는다.
사랑과 가족인가, 부와 명예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배우자인가, 아니면 하룻밤을 즐길 수 있는 파트너인가?
누구도 뚜렷한 답을 내릴 수 없는 선택이지만,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시작해서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다른 삶을 살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그 삶을 통해 당신이 잊고 살았던 무언가를 발견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저 오래된 영수증처럼 과거에 묻어둘 것인가?
CEO가 아닌 가장(Family Man)이 되고 싶게 만드는 영화, <패밀리맨>이 사랑의 계절, 크리스마스에 당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