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신문에 올라온 기사‘웃음 소리가 사라진 대한민국!’ 를 퍼왔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제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내용이라 동감이되서요. 이 문제는 대통령이나 몇몇의 정치인들의 잘못이 아니라, 대한민국 총체적인 문제라고 생각되며 대부분의 국민들이 여기에서 자유로울수가 없는것 같아요.
청소년들을 모두 입시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그게 문제가 있고 잘못된 것 인줄 알면서도 대부분의 국민들 생각에는 '그래도 내 자식만큼은 좋은 대학, 좋은 직장(남들 보기에 폼 나는)을 가야 한다'라는 생각 때문에 결국 모든 아이들을 지옥 속으로 몰아넣고 있듯이 말이죠.
제가 아직도 한국 살고 있었다면 허구 헌 날 '이민 가야지' 하고 한탄만 하고 있었을테구요, 결국 이번 사태를 계기로 타국으로 떠날 결심을 했을 것 같네요.
끝으로, 어제 들은 이야기인데
유가족들 사이에서 그리고 해경이나 해병대등의 구급요원들 사이에서 떠도는 유언비어라는데 요약해 보면 이렇습니다.
구조단 잠수부들은 이미 배 안에 들어가서 전원 사망한 모습을 보고 왔다.
다만 정부에서 이를 쉬쉬하고 시간 끌기 작전을 하고 있어 발표를 못하고 있다.
애꿎은 공포탄만 계속 쏘아대고 날씨나 조류 때문에 그렇다는 변명만 늘어놓으면서 시간 끌기만 하고 있다......는 게 요지였습니다.
솔직히 저도 뉴스를 보면서, 해저 3만리에 가라앉은 배도 아니고 아직도 선체 일부는 물에 떠 있는 배 안을 3일째 들어가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게 21세기 대한민국 땅에서 가능한 일인가 의아해했습니다.
만약 이 유언비어가 사실이라면 정부는 이번 세월호 사태가 6월 지방선거에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까 봐, 세월호 침몰의 원인과 책임에 적절한 이유를 갖다 붙이려고 머리를 쓰고 있고 그래서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닌가라고 밖에는 생각이 안되네요.
어차피 언론들은 대부분 정부가 장악한 상태이니 시키는 대로 말들 잘 듣고 있어 문제도 없고.. 사고 현장에는 일반인들이나 현정부에 비판적인 기자들은 근접도 못하게 하고 있으니까요.. (이러다가 설마 배 안에.. 북한글씨체가 있는 폭탄 파편 하나 슬쩍 갖다 놓고, 북한이 그랬다고 우기려고 하는 건 아니겠죠.. 너무 어이 없어 별별 기괴한 상상을 다 하게 만듭니다.)
솔직히 사고가 난 것 보다도 사고 처리나 이에 대처하는 관계당국이나 정부의 모습이 저를 역겹게 만드네요. 진실과 사실 그리고 국민의 알 권리는 다 필요 없죠, 그냥 선거에 이겨서 정권을 유지하는 게 목적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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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소리가 사라진 대한민국!
웃음 소리가 사라진 대한민국!
웃음 소리가 사라진 대한민국!
By Haney Jeong,
피리 부는 사나이가 130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사라진 건 약속을 하고도 지키지 않은 하멜른의 어른들에 대한 복수였다. 피리부는 사나이에게 약속했던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하멜른은 희망을 잃었다. 이 오래된 동화의 소름끼치는 비유가 오늘 눈앞에서 현실이 되었다. 이 세상에 '말이 되는 사고'는 없지만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다. 납득할 수가 없다. 사고 경위도 그렇고 구조상황도 그렇다. 아무리 들여다 봐도 구멍이 숭숭 나 있다. 그 사고를 대하는 일부 언론사들의 태도도 가관이다.
지/옥/이/다!
지금 이 나라의 어른들은 이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으로써 가져야 할 의무감과 책임감을 잃어버렸다. 사명감이나 소명의식은 조롱당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법은 때와 사람을 가려 유연하기 그지없다. 비겁하게 굴어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제 목숨 살리기에 급급하다. 그게 상식인 줄 안다. 이런 괴물이 우리 아이들을 빼앗아갔다. 왜 자꾸 말도 안되는 사고로 아이들이 희생돼야 하는가. 어째서 또 아이들을 잃어야 하는가.
원칙을 무시한 낙하산 인사, 전문성 없는 인물의 책임자 등용, 난무하는 인사청탁과 보신성 전관예우. 이런 것들이 긴장감도 없고 책임감도 없는 이 사회의 윗물을 만든 원흉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힘과 명예를 얻은 이들이 새끼를 치고 독을 퍼뜨려 종국에는 가장 깨끗하고 가장 죄없는 우리 아이들이 의미없는 죽음을 맞았다.
아니라고 말 못할 거다. 비약이 아니다. 이 사회의 느슨함에는 이유가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이 구태의연한 속담이 구닥다리 상식이 아니라 뼈아픈 교훈이 된 슬픈 오늘이다. 하여, '원칙과 신뢰'는 저, 머리도 마음도 비어있는 머저리같은 가짜 대통령이 들끓는 민심에 과자 던져 주듯, 언 발에 누는 오줌처럼 사용할 말이 아닌 거다. '원칙과 신뢰'는 우리 아이들을 더 이상 허망하게 빼앗기지 않겠다는 각오를 칼처럼 입에 물고 엎어지겠다는 정도의 무게를 짊어지고 해야 할 말이다. 건곤일척의 마음으로 해야 할 말이다.
어디 감히 그 입으로 원칙과 신뢰를 말하며, 책임자 문책을 논하는가. 각 대학 오리엔테이션 폐지 따위를 대책이라고 들이밀고 진짜 책임자는 등 뒤로 빼돌려 눈 가리고 아웅으로 꼬리나 잘라내는 주제에 무슨 염치로 신뢰를 말하는가.
대체 뭘 믿으란 말인가?
내가 가장 오래 가르친 아이가 올해 고3이다. 그 밑으로 고1, 고2 소년 소녀들이, 또 그 아래로 어린 아이들이 졸망졸망이다. 내가 직접 글씨를 가르치고, 무릎에 앉혀 책을 읽어주었다. 이젠 나보다도 키도 크고 손도 크다. 이 아이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이란 문장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침처럼 울음이 터진다.
이 아깝고 귀한 아이들이 왜 자꾸 죄없는 죽음을 당해야 하는가. 이쯤 되면, 벌이라는 생각밖에 안든다. 우리 어른들이 지은 죄를 어린 목숨으로 갚고 있다.시대의 不淨(부정)을 아이들이 짊어지는 꼴을 언제까지 봐야 하는가. 웃음 소리 사라진 하멜른이 동화 속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