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ader who works very hard in the wrong way is often a dangerous one...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은 우리 모국의 대통령입니다"
과연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은 사람이 최선의 선택일까요?
민주주의의 단점은 종종 옳지 않은 선택을 다수의 의견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화가 된다는 점입니다.
어떤 리더가, 또는 어떤 단체에서 강한 주장을 펼칠 때는 과연 그것이 사실인지를 알아봐야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이 없거나 게을러서 신문기사에 헤드라인 몇 개 훑어보고 그게 진실인 줄로 착각을 하는데에 그칩니다. 그래서 대기업들이 대부분의 신문사를 소유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한국의 leadership 결여 문제는 제 생각에는 유교문화의 폐혜에 근본적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봅니다.
윗사람이나 조직에게 무조건적 충성하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어떤 해결책이나 대안을 알고 있다하더라도, "잘난 척한다" "윗 사람을 가르치려 든다"는 식의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죠. 저는 이런 것을 한국문화의 구조적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유교사상이 한국말 깊숙히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한국말을 쓰는 한, 문제해결 능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하는 것이 어렵다고 봅니다.
이름이나 You 라는 말대신 과장님, 선생님, 사장님, 형님, 선배님과 같은 지위를 지칭하는 말로 상대방의 권력을 상기시키는 말로는 문제점을 지적하기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사상교육은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수 백년에 걸쳐 내려져 온 것이기 때문에, 전 이런 문화가 고쳐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런 문화나 사회가 내 라이프스타일과 맞지 않아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크면, 그런 사회를 떠나는 것이 개인과 가족의 웰빙을 위해 더 좋은 선택이라고 봅니다. 견딜만 하면 그냥 그러녀니 하고 사는 것이고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조직이나 국가의 존속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에겐 한국사회는 참 살기 어려운 곳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에 존재했던 나라들의 공통점은, 조직 또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게 돌아온 것은 무시나 조롱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독립운동에 가담했던 사람들의 자손들이나 북파공작원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 지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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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게시판에 올려진 글을 읽고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모국의 현실에 대해 걱정하고 좀더 잘되기를 바라는 한 마음이라 느껴집니다.
이건 지극히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여기 글들의 대부분은 어느 한쪽 성향으로만 강하게 비추어져 있어 보입니다.
여러가지 다양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을 진대 무조건 대통령을 비판하고 깍아내리는 모습이 좋게 보이지만은 않습니다.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은 우리 모국의 대통령입니다. 잘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비판하고 깍아내릴 것이 아니라 열심히 하고 계시는 부분은 충분히 존종해 드려야하는 위치라 생각합니다.
1980 년 여름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이던 존 위컴이 이런 발언을 해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들쥐와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던 따를 것입니다\"
국내에서는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모욕발언이라며 길길이 뛰었지만 그의 발언의 배경에 대해서는 역시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언급하지 않았지요. 사실 존 위컴은 12.12 사태 이전부터도 항상 거들먹거리는 전두환을 극도로 멸시하고 증오했었는데, 광주민주화운동 직후 국보위가 출범하고 학살주범이 권력을 장악해나가는 과정에서 한국의 지식인들이 빠르게 신군부 주위로 모여들고 언론은 물론, 대부분의 국민들 또한 체념을 하며 그런 형편없는 인간에게 순응하는 자세를 보이자 어이가 없어진 나머지 튀어나온 실언 아닌 실언이었다고 합니다.
들쥐란 말 대신 herd mentality 라고 했다면 반감을 덜 샀을 지도 모르겠네요. 패거리 문화의 폐해는 한국사람들 스스로도 인정을 할 테니까 말입니다.
80년대 여름이면 제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런 혼란의 시기를 거쳐 지금의 한국 사회가 되었는데, 많은 시민들과 학생들을 살해하고도 그에 상응하는 처벌없이 아직도 잘 지내고 있는 전두환의 모습을 보면 아직도 Nazi 들을 쫓아다니며 재판을 하고 있는 독일과 피교가 됩니다.
이성적인 생각을 까다롭고 피곤한 것으로 조롱, 비하하는 집단 패거리 문화는 유교사상에 그 뿌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의 권리나 자유보다는 집단이나 민족의 존속을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가치관이니까요. 다들 짜장면 시켜 먹는데 나 혼자 울면 먹고 싶다고 해서 음식이 늦게 나오면 눈치를 봐야하는 사회죠. 튀지 말라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왜 그렇게 피곤하게 사느냐고... 한국 사회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익숙한 말들입니다.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거기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말이죠), 유교문화를 좋든 싫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You 나 이름대신 너,당신,사장님,손님,선생님,선배님,차장님,형부,아저씨,아줌마,언니,이모,할아버지와 같은 호칭을 쓰며 한국식 대인관계 생활을 해야하기 때문이죠. 사실 저부터도 한국에 사시는 친척분들의 이름을 모르는 경우가 흔합니다. 큰 아버지나, 큰 이모부처럼 명절 때나 한 번 씩 뵙는 분들 이름은 실제로 제가 부를 일이 없어서 모르거든요. 유교문화권에서는 관계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기억력이 안 좋은 이유도 있고요...
종교든 사상이든 한 번 교육을 받으면 그 영향이 평생을 갑니다. 저는 오랜 세월에 걸쳐 실험과 독서로 종교나 민족주의 사상,유교사상으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진 것 같습니다. 바깥 세상을 한 번 맛 보고 나면 다시 그 소굴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지는데, 그 바깥 세상이 안에 있을 때보다는 나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반대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죠.
글쎄요. 현 한국의 정치문화를 유교 탓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한국(조선)의 전근대에서 근대로서의 전환은 일제에 의해, 최근에는 박정희 개발 독재를 통해서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 경험은 지극히 짧고요. 유교라는 종교제도가 거의 사라진 상태라서, 현재의 패거리 문하가 유교 뿌리만은 아닌 것 같구요. 어떤 한국인 사회학자는 부르디외의 개념을 빌러 유교적 전통을 habitus로 설명을 하는데, 이렇게 사회에 뿌리내린 전통을 수량화한 연구는 없습니다. 현재 개신교와 가톨릭의 한국 종교지형 점유율이 25%는 되고 불교 역시 상당하다고 볼 때, 집단주의적 망령의 기원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유교문화권 나라들이 중국이야 유교 본산지니까 당연히 속하고 한국, 일본, 베트남, 싱가포르 등등이 유교문화권 나라들인데 그중에 싱가포르는 손바닥 보다 작은 도시국가니까 제외하고라고 한국 같은 정치문화를 같고 있는 나라들은 없습니다.
한국 고유의 패거리 문화, 다른 나라들도 그런게 있긴 하지만 한국처럼 유별난 나라는 없는데 한국인 특유의 정 문화(情 文化)와 연관 시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이란게 긍정적으로 나타날 때는 참 좋은거지요. 떡을 해도 동네 사람들과 한조각 씩 나눠 먹고, 어려운 일 생기면 서로 도와주고, 기쁜 일 생기면 같이 좋아 해 주고. 그런데 정이 부정적으로 나타날때가 골치거리입니다.
나쁜 짓 한 걸 알고도 그놈의 정 때문에 모른 척, 공과 사를 가려야 할 자리에서도 정 때문에 슬쩍, 아닌 줄 뻔히 알면서도 동문이란 정 때문에 한 표... 뇌물 주는 걸 옛날에는 인정 쓴다고 했거든요. 서양 사람들은 한국인의 정을 쉽게 이해 못할 겁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 판단을 가로막는 게 정 때문입니다.
근대사회로 전환하는 데에 일제와 박정희의 군사독재 시대가 대부분을 차지했다는 말씀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거기다 전두환, 노태우까지 보태면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지난 15년 정도가 채 되지 않는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이명박이 국민들을 상대로 제대로 털어먹어서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그래도 엄밀히 따지면 민주주의였다고 봐야죠.
하지만 유교는 사상이지 (ideology)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유학사상이라고 하는 게 낫겠네요. 참는 것을 최고의 가치관으로 여기는, 공자라는 사람이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만든 사상이 유교입니다. 다시 말해 유교는 그 근본부터 정치사상이었다는 생각입니다.
기원전 500년에 태어난 사람이 세운 정치사상을 2500년이 넘은 지금 시대에도 유지를 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그런 정치사상이 오래 세월에 걸쳐 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말속에 그 문화가 심어졌기 때문에 한국말을 하는 동안에는 유교사상의 영향권에 묶여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대인관계에서도 영어로 대화를 할 때와 한국어로 대화할 때 느끼는 관계가 다른 것을 느낍니다. 영어로 대화를 할 때는 한국식 권력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운 것을 체험해 보셨죠. 나이가 많은 형님이나 선배라 해도, 영어로 소개를 할 때는 그냥 good friend 로 일축이 되니까 말입니다. 심지어 한국 사람들을 지칭할 때도 한국분, 한국인의 차이가 있는 문화죠.
제 나름대로 예측을 해 보자면,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세대들의 세력이 무의미해지는 시점이 지나면 민주사회의 발전을 기대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좀 더 생기지 않을까 합니다. 70년대에 20-40대였던 분들이 주 노동층이였다고 한다면, 한 2030-2040년 정도가 돼야 패러다임이 바뀔 토대가 갖춰지지 않을까 합니다.
유교가 종교가 아니라 판단은 편향적일 수 있구요. 이러다가 유교 공부하는 사람들 밥줄 끊기겠네요. 와치독 님께서 \"기원전 500년에 태어난 사람이 세운 정치사상을 2500년이 넘은 지금 시대에도 유지를 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라고 하셨는데 동양에선 종교 문화 정치의 경계가 그렇게 강한 것은 아닙니다. 종교에 대한 맹아적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은 도교와 유교 땜이 아니라 불교의 유입으로 그렇게 된 것이구요. 신유학은 그러한 불교에 대한 response로 나온 것이구요.
막스 베버 선생이 유교는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장애물이라고 하셨는데,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 대만, 중국, 한국 등의 나라에서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되자 학자들은 공자의 보이지 않는 손이 아시아 자본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습니다. 유교가 동아시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 겁니다. 하지만, 그 공과를 유교에 몰입하는 것은 지나친 판단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이스가 최근에 경제적으로 망가진 것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탓만도 아니며 그리스 정교회 탓만도 아니죠. 그럼, 맑스 탓이였을까요?
저는 개신교도여서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바라볼 때 편견이 제 속에 깊이 내장되어 있다는 것을 감지하곤합니다. 언젠가 한국을 방문해서 낙성대에서 마을 버스를 타고 모학교 후문으로 가던 중 중동에서 온 무슬림 학생을 만났는데, 유교나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열변을 토하더군요.
제가 유교를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를 결정하는 기준이 달라서였네요. 저는 통상적으로 organized religion이 갖는 특징들, 그러니까 신에 대한 숭배, afterlife 에 대한 믿음, 우주의 기원에 대한 믿음 등이 종교를 구분 짓는 기준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종교든 사상이든, 저는 유교의 병폐와 한계가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방해하는 큰 걸림돌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선배든 어른이든, 잘못한 것이 있으면 지적하고 고칠 수 있는 환경이 건전하고 합리적이죠. 유교사상이 우리 말에서 없어지지 않는 한 소수자나 약자를 억압하는 문화는 지속됩니다. 공익, 국가의 기강을 들먹이며 말도 안되는 논리로 노동계층, 여성,미성년자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사태가 매일 같이 벌어지니 말입니다.
힘이 있는 사람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고 눈치를 봐야하는 풍토가 사라지는 시점이 오면 (2040년 찍어봅니다) 한국식 대인관계에서 오는 갈등도 (예: 고부갈등, 직장상사/부하직원간 관계, 갑질 이슈, 등등) 조금씩 개선될 수 있는 기반이 생길 지 모른다는, 병아리 눈꼽 만한 기대를 해 봅니다.
내세관은 유대교의 경우도 거의 없고, 무속(샤마니즘)도 거의 없습니다. 유교도 그렇구요. 우리가 근대 이전의 종교를 이야기할 때, 근대적 의식을 투영해서 평가하면 안됩니다. 당시에는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라는 자기 정체적 의식이 희박했습니다. 종교라는 개별적 의식은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근대 이전에 희박했던 것과 거의 차이가 나질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만 봐도 불교를 핍박한 조선시대에 왕궁에 법당을 차린 왕도 있었죠. 무교(무속)는 불교의 극락왕생의 개념을 빌었구요. 일본에서 사람이 죽으면 명복을 빌기 위해 절에 가고, 결혼은 기독교식으로 하고, 축복은 신사에 구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구 기독교적 인식으로 일본의 종교현상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죠.
와치독님께서 한 때 가톨릭 신앙을 가졌었다고 하셨는데 그런 인식이 다른 종교를 이해하는데 준거점으로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현재 한국에서 정치/철학사상이나 대중문화에서의 유교는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일부 호칭이나 사회적 관계를 들어 유교의 병폐를 이야기한다면 구체적 문화나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불교가 주류를 이루는 경상도와 개신교가 주류를 이루는 전라도에서 보면 경상도가 훨씬 보수적입니다. 게다가 경상도는 개신교가 아주 보수적인 곳이죠.
고려가 망하고 유교적 정치체계를 구축한 조선시대에도 민중에 깊이 뿌리 내린 종교는 불교와 무교였습니다. 유교적 정치이념은 철저한 엘리트 문화였구요. 종교나 사상이 기본적으로 정치와 결합했을 경우, 근본이념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을 수도 있죠. 제가 생각하는 유학 또는 유교사상의 근본이념의 담지자는 선비정신입니다. 선비정신은 기본적으로 공부하는 정신이고, 이런 공부는 도올선생이 이야기 하듯 \"discipline\"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훈련으로서의 공부는 하늘의 뜻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경으로서의 자기 수양과 이러한 자기 수양을 통해 유교적 이념을 사회에 구현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비사상으로서의 운동은 성리학을 하는 사림들의 노력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종교든 사상이든 항상 사회적 관계를 통해서 발전되는 것이고, 실학운동이나 구한말에 반응한 유학자들의 모습은 단선적이 아니라 다양한 행태로 나탔났다는 것을 무시하면 안됩니다.
참조로, 한국에서 종교적 현상으로서의 유교를 평생 탐구한 금장태 교수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가톨릭 교인이지만, 성균관대와 서울대에서 유학을 전공하셨고 근대의 유교에 대해서 깊이 탐구하신 분이고 제가 알고 있는 한 이 분야의 최고의 권위잡니다. 저는 이분한테 한학기 강의를 들었는데, 우리가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유교가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분이죠. 제 표현이 무례하기들릴지 모르겠지만, 혹시 시간나면, 한국유학사를 한 번 정리하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누누히 주장한 바이지만, 민주화의 걸림돌로 어떤 특정 현상을 single out해서 그 현상에 모든 것을 전가하면 안됩니다. 그 특정 현상이 enclave나 ghetto가 아닐진대, 상호관계를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지 그것만이 주요한 책임이 될 수 없죠. 종교의 권위주의적 경향성이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정치의 권위주의적 경향성이 종교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역사의 아이러니도 있는 법이죠. 나찌 시절 본회퍼 목사가 소속된 독일의 \"고백교회\"는 보수복음주의적 작은 교단이었는데 가장 격렬히 나찌에 반항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반항이 정치적 이념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 이슈가 주였습니다. 진보적 개신교는 나찌에 굴복했구요. 한국의 경우, 신사참배에 가장 강력히 거부한 사람들은 주기철, 한상동 목사를 위시한 보수 개신교도들이었습니다. 이른바 진보적 교회는 쉽게 무너졌습니다. 그럼 가톨릭 교회는 어땠을까요? 한국천주교사에서 수많은 \"순교자\"(?)를 냈지만, 그러한 순교의 바탕은 로마 교황청의 타종교 이해에 대한 배타적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천주교가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를 완전히 수용하였는데, 그것은 로마 교황청의 신사참배에 대한 이해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즉 신사참배는 종교적 활동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도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한국보수개신교(일부)는 친일을 거부한 결과가 되었고 한국천주교는 가장 친일적인 집단으로 전락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종교적 이슈를 무시하면 이런 해석으로 도출된다는 겁니다. 이것이 역사의 아이러니죠.
한가지 첨언을 더하면, 한국 개신교의 폐해, 특히 여의도 순복음교회같은 열광주의를 비판하려고 한국 개신교가 무속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지금도 주류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특히 개신교 신학자들이 그러한 주장을 많이 폈습니다. 무속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어느 개신교 집단의 부정적인 면에 전가한 경우죠. 아주 웃기는 주장들이죠. 그럼, 오순절 계통이 아닌 개신교는 무속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경운가요? 아이러니칼하게도, 무속을 강력히 저주하고 파괴하려고 한 집단이 바로 오순절 교회를 위시한 개신교 집단이었습니다. 만일 개신교 신학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이런 개신교의 anti-Shamanistic 운동은 근본을 못알아보는 후레자식들이죠.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살면서 다양한 문화와 만납니다. 그런데 그 만남의 과정에서 좋은 것은 자기 때문이라고 보고 나쁜 것은 남탓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승만 이후 한국 정치지형을 좌지우지한 기독교 집단, 즉 가톨릭과 개신교는 철저히 반성해야 합니다. 구린내는 자기들이 풍기고 방귀는 남이 꼈다고 하는 박근혜식 희생양찾기식은 빨리 사라져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