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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만 모르는 여인
작성자 안희선     게시물번호 8231 작성일 2015-07-30 04:56 조회수 1631

우리만 모르는, 日本이 가장 껄끄러워 하는 여인, 존 카터 코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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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Carter Covel l · 1910∼1996


미국 서구학자로서는 처음으로 1941년 컬럼비아 대학에서 일본미술사와
고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1978년 하와이 대학을 정년퇴임할 때까지만 해도
동양미술사의 권위자로서 학계에서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던 그녀에게 
한국에서 예정한 6개월이라는 체류시간이 9년으로 늘어나면서,
그녀의 인생이 180도 달라지게 될 줄은 그녀 자신,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1978년 부터 체류하는 동안 그녀는 ' 일본 것' 혹은 '중국 것' 으로 알아왔던
수많은 미술품들이 사실은 한국땅에서 건너갔거나 한국인 예술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져 나온 것임을 알게 됩니다.

1981년 <코리아타임스>에 쓴 글 " 내가 컬럼비아대학에서 배운 일본사는 가짜였다 " 를
시작으로 아들과 함께 쓰여진 관련 글들은 모두 7권의 책과 1400 편이 넘습니다.

1978~1986년까지 체류하며 그녀가 쓴 글은 당시 한국대중이 받아들이기에 너무 앞서간
내용이 많아서 그런지 한글번역 소개는 1982년 ' 경향신문' 에서만 가능했습니다.

한국의 문화재가 일본에 많이 가 있는 것처럼 이집트의 문화재는 런던에,
일본의 문화재는 보스턴에 많이 가 있는데
런던에 있는 이집트 문화재는 처음부터 이집트 것으로, 일본 것은 일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반해 일본에 가 있는 한국 문화재만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것은 완전한 일본작품,혹은 중국 것으로 왜곡되어 있어서
이제 와서 한국이란 근원을 찾는 작업은
지극히 어렵고도 미묘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날조의 한 예로,
일본 역사가들은 369년 가야 부여족의 왜 정벌 이래 700년까지
한국이 정치 문화적으로 일본을 지배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감춰버립니다.

히틀러가 말한 것처럼 거짓말은 크면 클수록 사람들을 속이기가 쉽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역사가들은 역사를 뒤집고 가야에서 온 부여족이 왜를 정복한 게 아니라
왜가 가야를 정복했다는 말도 안되는 거짓주장을 하며 또, 우리는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대로 받아들여왔습니다.

이런 식의 수많은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목격한 코벨박사는
이 어려운 작업에 도전장을 내밀고 남들은 은퇴하고 유유자적하게 여생을 보낼 시간에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는데 평생을 바칩니다.

그녀가 무턱대고 한국미술이 우월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아님을
책을 읽으면 알게 됩니다.

특히 쉬운 언어로 난해한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는 것은 매우 단순해 보여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맨 처음에 출간된 ' 한국문화의 뿌리' 는 일반인도 부담없이
술술 읽혀내려갑니다.

코벨박사는 일본에서 오래 살았던 까닭에 처음에는 한국미술을 일본식 눈으로 보았지만,
점차 한국식으로 바뀐 눈으로 일본에 보존되어 있는 한국미술을 보게 되면서
어째서 일본은 그들이 한국문화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그토록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라는 기본적인 질문을 가지게 됩니다.


일본 내의 박물관장들은 아무도 한국에서 교육을 받지 않았으며
유교가 지배적인 일본에서 그 누구도 오래전부터 일본적으로 치부해놓은 예술품의 분류가
부정확할 뿐 더러 국수주의적  행태라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
일본사회에서 불이익을 받을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반면
코벨박사를 내내 괴롭혔던 생각은 왜 당사자인 한국(당시 1981년 하지만, 지금도 분위기상
큰 차이는 없음)은 이토록 소극적일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해법으로 나이든 학자들은 일본사람 밑에서 공부했기에 그렇다 치더라도
젊은 학자들,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은 이들은 박차고 일어나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했습니다.


부여기마족이 일본으로 건너가는 것을 시작으로
두 나라 사이의 문화적 관계의 흐름은 99프로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일방적 흐름이 지속되었고
그 영향은 그림, 건축, 도자기 등 수많은 미술품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실제로 책속의 많은 사진과 그림을 통해  생생하게 입증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1프로는 20세기 초 동경의 미술학교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많은 한국화가들이
일본식 구도에 일본식 채색을 사용한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이것도 당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코벨박사의 생전에 하던 말씀 중에 -


" 한국인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에너지는 부여기마족이라는 한민족의 조상을
  이해하는 데서 수수께끼가 풀릴 것.
  한국인의 조상 부여족의 실체를 파헤쳐 그들의 에너지를 이어받는 것이야말로,
  오랜 기간 지속된 유교의 침체적 분위기보다 한국의 미래를 확실하게 할 힘의
  원천이 될 것 "


요즘 우리나라를 보면서 이 주장이 피부에 와닿고 있습니다.

' 부여기마족과 왜(倭)' 라는 그녀의 책에서 '바위의 아이들' 이란 단어로
한국의 민족적 기질을 정의했는데, 일본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뻗어나가는
한류를 보며 고대부터 외부에 긍정적 영향을 끼쳐왔던 우리민족의 문화적 힘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생전의 코벨박사는 자신의 글이 한글로 번역되는 것을 
'연못에 던진 돌이 파문을 일으켜서 커져가는 것 '이라며 기뻐했었다고 합니다.

편역을 맡으셨던 김유경 선생님은 문화일보 기자였을 당시에
코벨박사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되셨다고 합니다.

코벨박사가의 업적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상황을 누구보다도 안타까워 하시며
절판 된 책들이 하루빨리 재 출판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이 분이 아니셨다면 이런 귀한 글들이 우리나라에 소개되기도 어려웠을 거라 짐작됩니다.


1996년 코벨박사가 미국에서 작고한 뒤 그의 유해 일부가 일본 교토 다이토쿠지 신주안에 안장되었는데
그녀의 생전에 한국의 해인사 등 몇 군데 절에서도 그녀의 묘자리를 약속했는데
그의 사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한국에 흔적을 남기지 못하셨다고 하는 얘기를 듣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코벨박사가 더 이상 일본의 편에서 얘기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아니 가차없는 지적과 신랄한 비판에 대해
오랜 기간동안 그녀에게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일본학계는 섭섭함과 상당한 불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그녀를 받아준 건 한국이 아닌 일본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저 학자로서 역사적 사실규명에 사명감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었지만
자기 나라도 아닌 일에 이토록 열정적일 수 있을까?

한국인에게 아무것도 바라지도 않고 받는 것도 없이, 이만한 학문을 이룬
그녀의 업적을 우리는 잊지말아야 합니다.



* 위의 글 중 일부분은 코벨박사의 책에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 희선,



맨 처음 이들이 한국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책 : " History of Korea " by Hurbert

1985년 " Korea's Colorful Heritage "

1984년 " Korean Impact on Japanese Culture : Japan's Hidden History "
전세계적으로 지금까지 10쇄를 넘길만큼 한국문화의 확고한 영문소개서로 자리잡음





개인적 사족:  일본의 문화라는 건 원천적으로 조선 문화의 아류亞流인 것이며, 모방문화에 불과한 것

                    혈통적으로는, 백제계 및 신라 . 가야 (夫餘)계의 곁가지 - 특히, 일본왕가는 명백한 백제계열
                    하지만, 부모국인 조선을 침탈했던 패륜悖倫국가
                    그리고 오늘까지 일체의 반성을 모르는 철면피한 족속들
                    (종군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를 비롯해)

                    하여, 반드시 반드시, 조만간 하늘의 大심판이 있을 것으로
                    강력히 예상되는 섬나라   - 3.11 동북 대지진은 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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