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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글: 늘봄님의 "누가 예수를 죽였나"에 대해서
작성자 fishlover     게시물번호 8592 작성일 2015-11-27 05:20 조회수 2376

늘봄님의 원글이 밑으로 내려가서 못보실까봐 새 글로 올립니다.


늘봄님의 글을 읽고 몇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고견 부탁드립니다.


첫째, 초자연적인 하나님은 없다고 하셨는데, 존재하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매길대학에서 공부하고 깨달아서 알게 되었나요? 그리고 매길대학은 없는 하나님을 빌미로 종교학부를 운영하고 있는지요? 마치 허공에 주먹질 하고는 케이오로 이겼다고 주장하는 권투선수처럼 들립니다.


둘째, 하나님은 "영적실재" 라고 하셨습니다. (영적실재: 영의 형태로 정말로 진짜로 존재하는 것). 그리고는 또 영적세계 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요?


셋째, 늘봄님이 이해하시는 기독교나 매길대학에서 가르키는 종교가, 구원과 영생으로써의 종교가 아니고 그냥 죽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두뇌활동의 산물인 "생활철학으로써 의 종교" 라면 왜, 무슨 목적으로 이렇게 열정적으로 반복해서 주장을 펼치시는지요? 어차피 몇 십년 뒤 죽고나면 이러나 저러나 큰 문제도 아닌 것을 가지고....하물며 책까지 출판하여 영생의 진리를 위해 고민하는 사람들의 시간과 돈까지 뺏어 가나요? 그리고 "기독교인" 이라는 타이틀 보다는 그냥 "늘봄철학자" 로 개명 하는것이 더 적절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 하시는지요?


넷째, 늘봄님의 글을 읽다보면 제가 국어공부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우리가 보통 이해하는 단어를 다르게 사용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심지어 "신간늘봄국어사전"의 필요성을 느낄 정도 입니다. 그럴때 마다 생각나는 것이, 이곳 친구들이 자주하는 표현, "Do you know what you are talking about?"이 생각납니다.


눈에 안 보이는 형이상학적 진술이야말로, 사상의 명확성, 사실의 분석, 논리의 전개, 단어의 선택이 정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늘봄님이 미워하시는 전형적인 속물기독교인이 펼치는 맹신적 주장과 다를 바 없겠죠?


늘봄님의 글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처럼 신학대학 문 앞에도 못 가본 사람들일 것입니다. 이 분들도 이해할 수 있는 clear thought 를 전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것이 배운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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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  |  2015-11-27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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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주신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지난 일 년 동안 씨엔드림 신문에 올린 “진화영성과 두려움없는 삶”에 대한 칼럼들에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메길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깨달은 진리입니다. 메길대학은 기독교의 믿음체계가 만든 교리들 – 창조론, 구원론, 종말론, 예정론, 축복론 등 – 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대신 성서라는 책에 대해 학문적으로 연구하면서 거기에서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온 인류에게 좋은 길인가를 탐구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해할 수도 없으며 믿지도 못할 교리들을 무조건 믿고 순종하는 ‘믿음의 종교’를 버리고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의심하고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는 삶을 찾는 ‘깨달음의 종교’를 택했습니다. 메길대학은 하느님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느님에 대해 가르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란 말을 악용하는 종교들과 종교인들이 하느님의 의미를 바르게 생각하도록 도우려고 신학과 비교종교학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영적’ 이란 말은 단순히 이성적으로 느끼고 지성적으로 깨닫는 것을 뜻합니다. 질문하신 것에 답변하는 것으로 금년 1월 2일 씨엔드림 종교칼럼란에 올린 저의 글을 다시 한 번 소개합니다:

[[하느님과 우주에 관한 생각은 코페루니쿠스(1473-1543)가 천동설을 발견하고, 곧이어 갈릴레오(1564-1642)가 지동설을 발견한 이후에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더욱이 생명과 하느님과 지구에 대해서 이전과 똑같을 수 없게 된 결정적인 동기는 찰스 다윈(1809-1882)의 진화론이었다. 지구의 생명들이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서 변형해왔다는 다윈의 진화론은 계속해서 발전하여 이제는 지구의 생명들을 넘어서 138억년 전 빅뱅이 일어난 이래 우주는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다는 우주 진화론을 생각하게 되었다. 더욱이 21세기의 주류 과학계는 다윈의 진화론을 더 이상 이론으로만 취급하지 않고 이것은 실제로 있는 사실(fact)로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필자는 이 칼럼에서 이론의 의미를 담고 있는 ‘진화론’이란 말 대신에 사실로서의 ‘진화’라는 말을 쓴다. 오늘날 현대 과학자들, 철학자들, 그리고 신학자들은 인간, 자연, 우주, 종교, 하느님(신)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진화에 기초하여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다. 우주 진화 이야기에 따르면 이 세상 이외에 다른 세상은 없으며, 즉 세계는 오직 하나이며, 우주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미리 설계한대로 더 이상 변하지 않는 완성품으로 고정시킨 것이 아니라, 138억년 동안 계속해서 팽창하고 진화해왔듯이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계속될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불확실성(Uncertainty)의 우주라고 한다.

필자는 이 칼럼을 통해서 20년의 전문목회 현장에서 경험한 과학과 종교의 갈등에 대한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파헤치면서 독자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종교인이든 비종교인든 과학과 종교가 분리된 모순되고 불안한 삶을 살아간다. 필자는 21세기 양자물리학, 천체우주학, 유전자공학, 분자생물학, 지질학, 전자공학, 생명공학, 생태학의 첨단과학시대에 전통적인 유신론자들과 무신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이 지니고 있는 삶에 대한 고민과 잘 풀리지 않는 질문들을 풀어가려고 한다. 예를 들자면, 한 가족 안에 여러 다른 종교가 공존하는 다원주의가 있고, 동성애라는 성적본능이 다른 가족이 함께 살아가며, 신앙공동체 내부에 진화라는 과학적인 사실에 대해 보수와 진보로 대립하고, 따라서 내세를 믿는 사람들과 현세를 중시하는 사람들로 혼돈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종교 지도자들은 이런 실제적인 현안에 대해서 솔직하고 선명한 설명 또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과학적인 진화를 무시하고 전통적인 종교의 교리와 형식을 고집하는데에는 두려움과 편견이 있기 때문이다. 이 칼럼의 독자들은 개인적으로 의미있고, 자유하고, 편협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고, 두려움없이 만족하고 감사하게 살면서 세속적인 세상 속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의미있는 삶을 살기 원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고 모두가 이러한 삶을 원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 칼럼을 읽고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필자는 이 칼럼을 통해서 한인사회가 기독교인 비기독교인, 종교인 비종교인, 유신론자 무신론자, 남한 북한, 경상도 전라도, 남자 여자, 동성애자 이성애자 로 분리된 불행한 현실을 극복하는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 종교 칼럼의 독자들의 범위는 종교와 철학과 사상을 넘어서서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 필자는 한때 근본주의 기독교인 지질학자로써 다윈의 진화론을 머리로만 이해했다. 나의 직역주의적인 신앙이 과학을 넘어서지 못했고 항상 과학과 종교가 이혼한 상태에서 행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메길대학 종교학부에서 기독교 신학을 공부하면서 첫번째 진화의 깨달음을 경험했고, 20년의 전문목회 기간동안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두번째 진화의 깨달음이 있었고, 이제 2012년에 은퇴한 후 종교적 자연주의 책들과 과학책들과 철학책들을 읽으면서 세번째 진화의 깨달음을 체험하고 이 칼럼을 쓰게 되었다. 이 칼럼은 독자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그들의 인생의 배경이 무엇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앞으로 이 칼럼을 읽을 독자들은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개인적인 삶은 물론 다른 사람들과 세상과의 관계가 훨씬 넓어지고 깊어지고 진실해지고 두려움없이 자유하고 의미있게 살 수 있다.

진화를 거부해 온 독자들은 이 칼럼을 통해서 진화를 새롭게 이해할 것이다. 즉, 온 인류는 빅뱅 이후 100억년이 지난 후, 공통적으로 40억년 전 지구에 출현했다는 우주 진화 이야기를 이해하게 되면, 다른 종교인들과 인종들과의 관계가 새롭게 되고, 매일매일 나의 삶에 의미와 자유가 넘치고, 내세에 의존하기 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 분명해진다.

진화를 머리로만 이해하고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는 독자들은 이 칼럼을 통해서 과학을 삶의 철학으로 이해하고, 상상력에 불길이 솟구쳐 오르고, 가슴이 뜨거워지고, 우주와 인간들과 다른 생명들과 자연에 대해 감사함과 경이로움과 존경심이 고취될 것이다. 물론 하느님이란 말의 새로운 의미를 인식함으로써 초자연적인 존재(하느님)를 떠나 보내고 동료 인간들과 다른 생명들과 자연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가슴으로 이해한 진화에 대해서 친구들과 가족들과 직장동료들과 성서를 문자적으로 읽는 가까운 이웃들과 대화할 수 있는 방법들을 발견할 것이다.

성실한 기독교인 독자들은 그들이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중도적이든, 카톨릭이든 개신교이든 정교회이든 새롭게 이해하게 된 진화 이야기가 자신들의 신앙을 심층적으로 변화시키고, 과거의 신앙생활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신선함과 자유함과 만족함을 경험할 것이다.

회교도, 불교도, 힌두교도 독자들은 이 칼럼이 소개하는 진화의 새로운 의미가 자신의 삶과 신앙에 그다지 어렵지 않게 적용될 것이다. 필자가 우주 진화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심층적으로 발전시켰듯이 독자들도 진화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들의 전통이 가르치는 지혜들을 보다 더 심층적인 단계로 이끌어 가고, 자신들의 종교와 세상에 매우 귀중한 헌신을 베풀 것이다.

불가지론자, 무신론자 독자들은 주류 과학계가 인정하는 우주 이야기를 이성적이고 상식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진화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죽은 후의 다른 세상을 믿을 필요도 없으며, 단지 이 칼럼이 소개할 ‘진화 영성’(Spirituality of Evolution)은 그들과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에 아름다운 혜택이 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 잘 모르는 독자들은 이 칼럼을 통해서 세상과 인간과 생명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게 되며, 흔들림이 없는 우주적인 도덕적 윤리적 기반 위에 설 것이다. 무엇보다, 피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에 빠지더라도 삶의 정열과 심오한 의미를 잃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자신의 종교적 신앙때문에 과학을 수용하지 못하는 독자들과 과학적인 세계관때문에 종교를 거부해온 독자들은 이 칼럼을 통해서 자신의 모든 관계들이 새롭게 될 것이다. 독자들은 가까운 사람들과 이 칼럼에 대해서 대화를 나눔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고, 지금까지 서로의 사이에 공존하지 못했던 인류 공통의 우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이 칼럼은 다른 사람들을 개종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에 대해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신뢰와 너그러움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려고 한다.]]

fishlover  |  2015-11-2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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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에게 약간은 반항적 질문을 하면 질문의 논리는 생각지 않고 "믿으라면 믿어"해버리고 마는 권위적인 목사님과 똑같은 답변을 주셨네요. 답변자로써의 최소한의 성의도 볼 수가 없습니다.

늘봄님의 진술을 그대로 빌리면, 하나님, 즉 영적실재란 이성적으로 느끼고 지성적으로 깨달아서 실재로 존재함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없다는 주장은 무엇인지요?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신문에 올리신 칼럼을 매우 힘겹게 읽어보고(논리적 연결고리가 부족해서 전체맥락을 기억하면서 읽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마지막에 느끼는 개인적 감상은 언제나 "횡설수설"로 끝났습니다. 그래서 이런식의 유희적 언어공세로 질문의 핵심을 피해가는 전략은 지양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앙적으로 확고하신 분이 왜 저같은 비 전공자의 간단한 질문 3가지를 대답할 수 없어서 논문 베끼듯이 기존의 칼럼을 복사해서 올리시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답변으로 복사해서 올리신 칼럼도, 저의 질문에 대한 알맹이가 전혀 없습니다. 2~3개 단락이면 충분할 글의 서론을 장황하게 끌고 갔습니다만 결국 서론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본론, 결론까지 전부 이곳에 복사해서 올리라는 말씀은 절대로 아니니까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watchdog  |  2015-11-2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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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shlover님, 혹시 셸리 케이건 (Shelly Kagan)이란 철학자가 쓴 Death (번역서: 죽음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 들어보셨나 궁금하네요. 저는 죽음에 관해 물리적인 면만 있다고 생각하고 영적 세계나 존재를 믿지 않았는데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사고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영혼이라는 것은 존재하느냐에 대한 의논으로 시작해서 죽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가, 죽음은 나쁜 것인가, 삶의 가치는 어떤 것인가 하는 사람이 살면서 근본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해 봐야할 질문들을 탐구해 본 책이었습니다.

저는 서울에 놀러 갔다가 교보문고에서 번역본을 먼저 사서 읽었는데 흥미로워서 Youtube에 있는 Yale 대학 강의 비디오도 봤습니다. 그러잖아도 책장에서 다시 꺼내 읽어보려던 참이었는데 reminder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HWquOHF8F3Q

https://goo.gl/apgxp7

내사랑아프리카  |  2015-11-2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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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종교인이든, 무신론자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케이건 책은 못 읽었는데 몇 년전부터 중고시장으로 싸게 넘어오면 사볼 생각이었는데 최근에 좀 비싸더라도 중고를 주문할까 고민중입니다. 한국에서는 종교와 관련해서는 종교현상학자 정진홍 교수의 [만남, 죽음과의 만남]이란 책이 있습니다. 실존적 존재로서의 개인과 종교현상학자로서의 고민이 묻어나는 좋은 책입니다. http://www.pn.or.kr/news/articleView.html?idxno=11223

저도 케이건의 강의 초반을 보았었는데, 그가 사후세계같은 것을 믿지 않지만, 죽음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믿었나 하는 역사적 현상적 이해가 중요하죠. 죽음론에 대해서는 Ernest Becker의 [The Denial of Death]가 고전적인 것으로 유명하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이 갖는 보편적 현상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칼 융의 "자기"(self)라는 개념도 인간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자는 노력이구요.

fishlover  |  2015-11-2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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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chdog님, 아직 못 읽어 봤습니다. 기회있으면 한번 읽어봐야 겠네요.
좋은정보 감사드립니다.

sattva  |  2015-11-28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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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늘봄님의 삶의 체험과 주장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봄님의 칼럼을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

습니다.

많은 이론가들의 글을 인용해서 나열해도 자신의 생각으

로 정리되지 않고 체화되지 않은 지식은 별반 도움이 되

지 않을 것이며 설득력도 떨어질 것입니다.

반면에 늘봄님의 글은 본인이 직접 체험하고 고민한 흔적

이 가득 베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진지하게 인간의 삶을 탐구해 오

신 글을 비아냥거리는 것은 그리 좋은 태도는 아니라 생

각합니다.

오히려 그 분의 칼럼을 읽어보고 자신의 생각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로 삼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 되지 않을

까요?

저도 아직까지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는 지에 대해서 알고

자 노력해 왔으나 저의 지식과 지성으로는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여백으로 남겨두고 제가

생각하는 삶을 실천하고 살면서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에

서 조금씩 오류를 수정하면서 계속 인간 존재의 과학을

탐구해 가고 있을 뿐입니다.

한 인간의 평생 동안의 지성의 결과물을 진지한 태도로

접해보고 나서 비판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다시 정리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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