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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간략한 답변
작성자 clipboard     게시물번호 8656 작성일 2015-12-06 10:43 조회수 2623




1.      제가 여기 올리는 글의 대부분은 한국의 진보기독교교단 (지금은 별로 진보인  같지도 않지만)총회 홈피에 함께 올라갑니다. 물론 실명으로 올립니다그러니까 여기  말을 실명으로도   있느냐 하는 질문같은 것은  하셔 됩니다저는 지금은 에드먼튼에 살고있지만, 1990 년대 8   캘거리에 살았었고 공적활동을  적이 있기 때문에  아마도  게시판에 들어오시는 캘거리 동포분들  태반이 저를 어떤 식으로든 알고 계실 겁니다.  처음 3 ~ 4  간은 실명으로 글을 올렸습니다. 오히려 실명이 아닌 닉으로 글을 올릴    조심해서 글을 쓰는  입니다. 실명으로 글을  때는 자기가 내뱉은 말을 온전하게 책임질  있지만  뒤에 있을  그럴  없기 때문에 심한 표현은 삼가게 됩니다


2.     어느 분께서 인간 박근혜와 대통령 박근혜를 구별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말씀은 백번 옳습니다. 다만  말씀을 하신 분은  의미를 거꾸로 이해하고 계신  같습니다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선출직 공무원들은 임기동안 행정단위를 맡아  단위를 대표하고  운영을 책임지는 동시에 유권자든 아니든 모든 사람들로부터 철저한 감시와 견제대상이 됩니다. 박근혜 씨처럼 치명적인 오류를 반복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선출직 공무원에 대해서 강도높은 비난과 조롱, 심지어 하야요구가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반응입니다.  저는 2012 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박정희의 로서 비판하는 행위를 옳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당시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했던 백년전쟁  박정희편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작시기도 적절치 않았을  아니라 내용에도 오류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강도높게 비판하는 대상은 개인 박근혜가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입니다. 


3.     대통령을 아버지(또는 어머니) 생각하고, 어떤 국가 자체를 조국 모국 운운하며 신성시 하는 것은 위험한 정서입니다.  위험한 집단정서는 독재자들과 파시스트들에 의해서 종종 아주 나쁜 방향으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신성한 존재 인식의 주체로서의 개인-개인이며, 국가란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고 개인간의, 그리고 개인과 조직간의 관계를 제도적으로 최선화하는  필요한 도구로서의 공동체 입니다어떤 개인이 공동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은 주체적 결정자로서의 개인의 결단에 의한 것이지, 거꾸로 국가의 부름에 부응하거나 국가가 충성을 요구하기 때문임이 아니라는 것이  기본생각입니다애국주의를 가장한 파시즘은 종종  관계를 거꾸로 돌려세워  개인과 국가의 우선순위를 가름하는 교착지점에서  군중들 몹시 햇갈리게 하곤 합니다

 

 

 

 4.       어떤 분은 박근혜 대통령을 능멸하고 모욕한 것에 화가 났다고 하셨는데, 제가 느끼기에  분은 대통령을 모욕하고 능멸 것에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신이 나신 반면  존재하는 것에 감사하며   순간 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철하라 충고에 화가 나신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잘못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은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자연스런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잘못됐다는 게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기 바랍니다. ‘신이  화가  좋게 결합되었기 때문에  분이 예전보다는 설득력있는 반론글을 올릴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

 


 분이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기독교인이시라니까, 히브리경전  잠언12  1   생각났는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저는 교회에 가는 대신 일요일 아침마다 맥카페나 A&W  가서 커피를 곁들인 아침식사를 하며 명상을 하거나 소설책을 읽다가 오곤 합니다)   


훈계를 좋아하는 자는 지식을 좋아하거니와 징계를 싫어하는 자는 짐승과 같으니

 


 

 말은 무척 고상한  같지만, 생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고대 먹물들의  탁상공론같은 소리라고 생각합니다훈계나 징계에 화가나기 때문에 반론이든 자기 변화든 동력이 생기는 것이지, 자체를 좋아해서 변화의 동력이 생기는  전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도 했던 소리지만 종족이 번식하는 이유는 성애본능 때문이지 종족번식에 대한 사명감 때문이 아닌  처럼,훈계를 싫어하고 거기에 화를 내는 마음은 자연스럽고도 훌륭한 생명의 본능입니다. 또 한 가지,, 제가 '국론통일' 이라든가 '총화단결' 이라는 말처럼 신통치않게 생각하는 표현이 '애정어린 비판'이라는 말 입니다. 비판의 동기는 애정이 아니라 잘못됐다고 판단한 부분에 대한 저항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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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계속 활발하고 유쾌한 게시판이 유지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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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vacman  |  2015-12-06 10:57         
0     0    

clipboard님,

브런치를 마치고 나서 커피 한 잔을 더 마시며 커피향과 더불어 님의 글을 음미했습니다.
평온한 주일 아침, 지성의 향의 한자락을 맛보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휴일 되십시오.

hvacman 올림.

추신:
여기 직장둉료나 동네친구들이 가끔 저한테 묻는 말이 있습니다. "니네 코리아는 쌤숭^^ 갤럭시 같은 끝내주는 스마트폰도 잘 만들고, 횬다이^^; 같은 좋은 차도 잘 만들어 전세계에 만들어 파는 좋은 나라 같은데, 왜 넌 여기 캐나다까지 이민와서 사냐?" 라고요.
그럼 저는, "한국의 그 복잡다난한 사회정치경제 현상이 멀미가 나고, 남을 밟고 올라서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심화된 경쟁구조에 숨이 막혀 이민왔어" 라고 들려주고 싶지만, 영어도 짧고^^; 모국 흉보는 거 같아 그냥 땅덩어리 크기 얘기로 얼버무리곤 합니다. "응, 사실 코리아 페닌슐라 사이즈가 미국 플로리다 만하거든. 근데 그나마 남북으로 나뉘고(참고로, 아직도 저보고 심각하게 너 남한에서 왔어, 북한에서 왔어, 하고 묻는 친구들도 아직 많습니다만 -_-;) 그 남쪽에 여기 캐나다 인구보다 더 많은 오천만명 쫌 넘게 살아. 물론 난 내 조국을 사랑해. 그렇지만 나와 내 가족이 보다 낳은 자연환경과 깨끗한 먹거리를 접할 수 있는 캐나다를 선택해서 이민 온거야." 라고 이야기 해주면,
몇초간 눈을 껌벅거리면서 면적과 인구를 자기 머릿속으로 열심히 비교해보고는 아 그랬구나, 하고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
작가 조정래 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전집을 말그대로 일주일간 침식을 재끼고 읽고나서는, 작가님의 표현대로 한숨이 절로 하르르...하고 나오고,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좁아터진 반도 땅덩어리에 이토록 이데올로기 이념이 피터지게 대립해서 이런 비극을 낳았는가... 우리나라가 이런 비극을 겪으면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나라가 사분오열 되지 않았더라면, 진즉 우리나라는 선진국 대열에 올랐지 않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요.
....
흔히, 사랑의 반댓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토록 이역만리 타국에서 모국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사는 것이, 개인적으로 나마 나의 조국이 보다 더 잘 됬으면 하는 바램에서 나오는 각자의 방식이라고 생각하며 글을 맺습니다. 고맙습니다.

clipboard  |  2015-12-06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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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 왜 캐나다에 이민왔느냐고 묻는다면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솔직히 왜 왔는지 잘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민 온 걸 후회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저는 1990 년 초까지 사회단체에서 활동했는데, 그 해 1 월 22 일 3당합당이 이루어지면서 일종의 파장 분위기같은 게 형성됐습니다. 한국을 떠나도 미련은 없을 조건이 그 시기에 형성됐다고나 할까요?

캐나다에는 누나가 1970 대 초부터 와 있었는데, 당시는 형제초청이 가능하여 저를 초청했습니다. 저는 이민같은 것은 생각조차 안 하고 있을 때여서 그저 시키는대로 건성건성 사진찍으라해서 사진찍고 신체검사받으라해서 신체검사받고,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캐나다대사관에서 인터뷰를 오라 그러더라고요. 당시는 캐나다 대사관이 시청 뒤 코오롱빌딩 11 층에 있었는데, 갔더니 영사라는 친구가 5 월 30 일 (1990년) 까지 입국하라고 그랬습니다. 인터뷰 한 날이 5 월 초였는데, 내가 바빠서 그렇게 빨리는 입국할 수는 없다고 그랬더니 영사가 하는 말이 5 월 30 일 이후에는 영주권이 자동취소된다고 했습니다. 아마 신체검사 유효기간이 그 때 만료되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행이나 갔다오자 하는 기분으로 (해외여행자유화조치가 된 해가 바로 그 전 해인 1989 년) 아무 생각없이 덜렁덜렁 와서, 있다가보니 경치도 좋고 공기도 맑고 사람들도 친절하길래 그냥 눌러 살게 되었습니다.

이러니 누가 나더러 “어떻게 캐나다에 오셨읍니까?” 하고 물으면 할 말이 별로 없을 수 밖에요.

제가요. 1990 년대초반에는 한국에 두 어 번 갔었는데, 그 이후로는 2007 년 까지 한국에 안 갔습니다. 그리고는 2007 년에 한국에 15 년 만에 갔습니다.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는데, 15 년 만에 들어와 집이 있는 동교동까지 가면서 정말 놀랐습니다. 한국이 그동안 엄청나게 변했더라고요. 불과 15 년 전 까지만 해도 후줄근하던 합정동 서교동이 뉴욕 맨하튼처럼 변한 건 둘째치고라도, 사람들이 달라진 걸 뚜렸이 느낄 수 있었어요. 여유로와지고 친절해지고. 거기 계속 산 사람들은 그런 걸 전혀 모르더라고요. 근데 밖에 오래 나가있다 들어온 저같은 사람은 그걸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도 변할 수 있다’ 는 사실이 그토록 큰 희망적 충격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한국에 계속 살아온 사람들은 별로 느낄 수 없는, 한국에 처음 간 외국인들은 결코 알 수 없는, 하지만 저같은 사람, 즉 과거에 한국에서 오랬동안 살아왔고, 한국이 정치문화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던 시기 (1990 년대)에 떠나있다가 15 년 만에 한국에 들어간 사람만이 별견할 수 있는 경이로움, 그 경이로움을 늘 보물처럼 간직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아주 운이 좋은 경우이지요.

그 경이로운 경험이 없었다면, 그 해 이후 한국여행을 이처럼 자주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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