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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캐나다 서부 에드먼턴 여행 Part 2
작성자 운영팀     게시물번호 8703 작성일 2015-12-15 08:55 조회수 2675
http://lpmagazine.co.kr/archives/23611


캐나다 서부의 에드먼턴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평원과 단풍에 둘러싸인 젊은 도시에서 사람과 자연의 이야기.

시티 마켓 다운타운에서 열리는 거리 공연. 이 시장은 에드먼턴 시민의 시장이자 휴식처다.© 허태우

시티 마켓 다운타운에서 열리는 거리 공연. 이 시장은 에드먼턴 시민의 시장이자 휴식처다.© 허태우

땅에서 자란 풍미

토요일 오전의 노천 시장은 역시 활기 넘친다. 에드먼턴 도심의 102애버뉴(avenue)와 104번가가 교차하는 장소. 시티 마켓 다운타운(City Market Downtown)에 참가한 노점과 사람들이 길게 도로를 메우고 있다. 도로 양쪽으로 늘어선 근대풍 낮은 빌딩의 붉은 벽돌은 아침 햇살을 받아 더욱 선명하다. 시민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각자의 먹거리를 구매하는 데 여념이 없다. 새벽부터 일어나 이곳까지 식자재를 싣고 온 농부와 목축업자는 즐거운 표정으로 자신들의 대표 상품을 내놓는다. 산지에서 친환경으로 사육한 소의 갈빗살, 유기농법으로 생산한 곡물 시리얼, 도시의 양봉업자가 제조한 벌꿀, 앨버타 주 북쪽에서 기른 당근과 양파 등. 신선하고 건강해 보이는 먹거리가 가판대 위에 가지런히 쌓여 우리를 유혹한다.

시타 마켓 다운타운에는 앨버타 주의 품질 좋은 식자재가 모여 있다. © 허태우

시타 마켓 다운타운에는 앨버타 주의 품질 좋은 식자재가 모여 있다. © 허태우

“자, 여기가 에드먼턴의 자랑인 파머스 마켓이죠.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가 세계 최고의 아웃도어 파머스 마켓으로 선정한 곳이에요.” 셰프 브래드 스몰리악(Brad Smoliak)은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그의 한쪽 손은 이미 비트와 양파, 옥수수를 가득 담은 바구니를 들고 있다. “2005년 25개의 벤더가 시작했는데, 이제는 250여 개의 벤더가 참가하고 있어요. 이곳에서 판매하는 식자재와 음식의 수준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하죠.”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마켓의 판매자들은 ‘오가닉(organic)’이라는 단어를 당연하다는 듯 매대 앞에 올려놓았다. 이와 함께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었는지 일일이 설명해준다. 식자재만 그런 게 아니다. 디저트나 샌드위치 등의 간편한 음식을 파는 곳 앞에도 여지 없이 줄이 늘어서 있다. 잠깐 초콜릿 매장 들러서 퍼지 1조각을 베어 물었더니 농도 짙은 맛이 입을 채운다.

산지와 바로 연결되는 파머스 마켓에 힘입어 에드먼턴의 미식업계는 최근 급성장 중이라고 한다. 초기 이주민들이 일궈놓은 농지가 이제 동시대 미식의 근간이 되어버린 셈이다. 스몰리악은 마켓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면서 식자재의 품질을 일일이 칭송하다가도 벤더들을 만나면 무척 쾌활하게 인사한다. 그는 이 바닥, 그러니까 에드먼턴 미식업계의 유명 인사다. 다운타운에서 키친 바이 브래드(Kitchen by Brad)라는 소규모 쿠킹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으며, 올림픽 등 캐나다의 국제 규모 이벤트에도 참가해 앨버타 주의 요리를 선보였다. 영국 여왕이 방문했을 때 만찬을 준비하기도 했다. 오늘 그는 시티마켓 다운타운에서 장을 본 후 쿠킹 스튜디오에서 요리를 시연할 예정이다.

브래드 스몰리악이 자신의 쿠킹 클래스에서 요리를 설명하고 있다. © 허태우

브래드 스몰리악이 자신의 쿠킹 클래스에서 요리를 설명하고 있다. © 허태우

얇게 썬 비트에 로제 소스를 섞은 샐러드. 스몰리악이 조리한 첫 번째 요리로, 의외로 단순하다. 쿠킹 클래스답지 않게 말이다. 하지만 얇은 비트를 먹는 순간 놀라운 맛을 경험한다. 파머스 마켓에서 바로 사온 비트는 무척 아삭하고 담백해 상큼한 소스와 천연덕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식자재의 풍미를 살린 ‘팜 투 테이블’ 요리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알려주는 듯하다. 뒤이어 나오는 요리도 단순함으로 입맛을 돋운다. 메이플 시럽을 발라 구운 베이컨, 올리브유와 발사믹을 섞은 콜라비와 토마토 샐러드, 특제 버터 소스를 발라 구운 옥수수와 바비큐 등이 계속 등장한다. 부지런히 칼과 집게를 사용하는 동안 스몰리악은 재미있는 이야기로 쿠킹 클래스의 분위기를 이끈다. “영국 여왕은 술을 안 마셔요. 건배를 하고 잔에 담긴 술을 뒤쪽에 숨겨놓은 빈 통에다 버리던데요.” 2시간 남짓 이어지는 수업은 전혀 지루하지 않고, 내내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절대 노래를 부르면 안 됩니다. 테이블 위에서 춤을 추는 건 괜찮아요. 하하하! 저는 이게 부엌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나고 행복하게 음식을 즐기는 것 말이에요. 재미있게 모여서 먹는다. 이것이 제 철학이에요.”

엘크 아일랜드 국립공원에서 한 여행객이 조심스럽게 차를 몰아가며 바이슨을 관찰하고 있다. © 허태우

엘크 아일랜드 국립공원에서 한 여행객이 조심스럽게 차를 몰아가며 바이슨을 관찰하고 있다. © 허태우

터전을 되돌려주다

캐나다는 넓다. 재차 강조해도 부족할 정도로. 태평양에 접한 브리티시 컬럼비아(British Columbia)의 주도 밴쿠버에서 대서양에 접한 뉴펀들랜드 래브라도(Newfoundland and Labrador)의 주도 세인트 존스(Saint Johns)까지 가려면 자동차로 7,000킬로미터를 달려야 한다. 그 길은 로키 산맥을 넘어 앨버타, 서스캐처원(Saskatchewan), 매니토바(Manitoba), 온타리오(Ontario), 퀘벡(Quebec)을 지나친다. 막막히 펼쳐진 평원도 있고 질퍽한 습지대나 호수, 쓸쓸한 동토도 있다. 비행기를 타도 8시간이나 걸린다. 반면 인구는 불과 약 3,500만 명. 하여, 캐나다에서 어느 특정 장소에 모여 도시를 이루고 산다는 것은 진정 원대하게 느껴진다. 불과 한 세기 전만 해도, “저기에 가면 사람들이 많이 있대!”라는 이야기를 허름한 술집에서 듣고 난 후 마차를 몰며, 때로는 기차를 타고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해갔던 대역사를, 캐나다의 선조들은 별 불만 없이 해왔으니까.

유전이 발견되기 전, 우크라이나 이주민이 정착하기 전. 1876년 캐나다 연방이 탄생하고 사람들이 수천 킬로미터씩 돌아다니기 전. 아메리카 대륙 북쪽의 이렇게 넓은 땅은 바이슨(bison)과 엘크(elk) 등 야생동물의 무대였다. 기록에 따르면 200년 전 캐나다 일대 바이슨의 개체 수는 300만 마리였다고 한다. 오늘날 캐나다 최대 도시 토론토의 인구보다 많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캐나다 이주와 개척이 시작되자 바이슨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다. 순한 성격의 바이슨은 고기로 먹을 수 있고, 가죽을 사용할 수 있어서 적당한 사냥감이었다. 또한 힘들게 개간한 정착지의 농작물을 파헤치고 무단 침입에 능수능란해서 꼭 처치해야 할 동물이기도 했다. 그 결과 19세기 말 북미에서 가장 큰 육생 포유류인 우드 바이슨의 개체 수는 약 300마리로 줄어든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캐나다 정부는 1907년 바이슨 등의 야생동물 보호 구역을 만들었다. 에드먼턴에서 가장 가까운 국립공원인 엘크 아일랜드 국립공원(Elk Island National Park)은 그렇게 시작했다.

오늘날 엘크 아일랜드 국립공원은 압도적인 풍경 대신 한없이 너그러운 자연의 품을 체험하게 해준다. 울창한 숲과 넓은 초원이 평화롭게 방문객을 반긴다. 국립공원 내 도로를 따라 여유롭게 드라이빙을 즐기기에도 좋고, 가족 단위 여행객을 위해 공원과 캠핑장도 여러 곳에 두었다. 그 주변으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수백 마리의 엘크, 비버, 사슴이 살고 있고, 350여 마리의 플레인 바이슨과 300여 마리의 우드 바이슨도 거닐고 있다. 한때 그들이 누비던 영토보다 훨씬 좁아도 걱정거리는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바이슨 서식 지역에 들어가면, 아주 천천히 차를 몰아 초원을 엉금엉금 걸어가는 바이슨 일행을 바로 앞까지 다가가 볼 수 있다. 육중한 몸집을 자랑하는 바이슨은 몇 미터 앞까지 사람이 다가와도 별다른 미동을 보이지 않는다. 몇 분이나 가만히 서 있다가 고개를 한두 번쯤 움직이거나 느릿느릿 발걸음을 뗀다. 너무 여유로운 모습이라 그들이 캐나다를 돌아다니려면 수백 년은 걸릴 것 같다. 이 공원에서 성장한 바이슨 중 일부는 개체 수 유지를 위해 세계 각지의 바이슨 서식지로 보내진다. 그래서 이웃 동네 서스캐처원 주나 매나토바 주, 미국의 야생동물 보호 구역 혹은 러시아에도 엘크 아일랜드 국립공원 출신의 바이슨이 돌아다니고 있다. 마치 100여 년 전 이 넓은 땅에 들어왔던 정착민과 비슷한 신세다. 그들도 낯선 장소에서 고향을 추억하고 있을까? 모를 일이다. 새로운 터전에서 선연한 일이 기다리고 있기만을 바랄 뿐.

글 ・ 사진 허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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