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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양국의 파상공세에 한국정부가 굴복했다. 2015 년 12 월 28 일을 기점으로 한국은 적어도 정부차원에서 위안부 문제를 공식거론할 수 없게 되었고, 일본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사과는 커녕 응대조차 하지 않아도 무방하게 되었다.
박정희와 사토 에이사쿠간에 체결된 독도밀약이 비공식 협약이었다면 박의 딸과 사토의 외조카손자 간에 이루어진 '위안부 타결'은 공식협약이었다. 참고로 1965 년 당시 독도밀약을 체결한 사토 에이사쿠는 만주인맥의 리더이자 이차대전 1급전범 기시 노부스케의 친동생이므로 사토 당시 수상은 아베 현 총리의 당할아버지가 된다. 만주인맥의 후손들이 우여곡절 끝에 미국의 종용으로 손을 다시 굳게 맞잡은 셈이 됐다.
협약은 위안부 문제에 국한되었지만, 위안부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전쟁범죄를 상징하는 것과 같은 단어이므로 대한민국에 대한 일본의 전쟁범죄 전체에 대한 면죄부 발부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좀 더 기술적으로 말하지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제국일본에 선전포고를 한 1941 년 12 월 10 일부터 일본이 항복문서에 공식서명한 1945 년 9 월 2 일까지 민간인을 대상으로 저질러진 반인륜 범죄가 하루아침에 사면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일본 정부가 아베 총리의 입을 통해 협약 상대국 정부에 대한 외교적 배려조차 일체 무시한 채 공개적으로 지껄인 말들 중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불가역적이며, 둘째 협약의 판정을 미국이 한다는 것이고, 셋째 만일 한국이 향후 딴 소리를 하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자격을 잃는다는 것이다.
미일 양국이 무슨 수단을 동원했길래 불과 수삼일만에 박근혜 정부가 모양새조차 갖추지 못하고 무너져버리듯 굴복해버린 것일까? 박근혜 대통령은 그들로부터 무슨 협박을 받았길래 본인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은장도'처럼 움켜쥐고 있던 위안부 문제를 단돈 10 억엔을 받고 하루아침에 헌신짝처럼 내팽개쳐버린 것일까?
싸르니아가 판문점을 방문했던 날로부터 3 일 후 인 지난 11 월 2 일 조셉 던포드 미국군 합참의장이 판문점을 방문했다. 그는 한국방문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와서 느닷없이 북코리아를 미국의 안보에 가장 위협이 되는 나라라고 지목했다. 미국이 자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나라라고 지목했을 때 그 개념은 구체적이고 협의적인 것이다.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나라는 예외없이 미국 본토를 장거리 탄도미사일로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들이다. 탄도미사일이 실어나를 무기는 두 말할 것도 없이 도시 하나를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리게 할 수 있는 핵탄두를 의미한다.
던포드 합참의장의 이같은 발언은 12 월 14 일에 나왔는데, 이 날은 김정은 제 1 위원장이 평천혁명사적지를 방문해서 북코리아가 핵융합기술을 확보했음을 시사한 지 4 일 째 되는 날이었다. 미국군 합참의장은 북코리아측의 핵융합기술보유 발언에 대해서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그들의 발언을 뒷받침하는 듯한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 것이다.
싸르니아는 지금으로부터 두 달 반 전인 지난 10 월 12 일 "박근혜 대통령의 단식투쟁을 지켜보면서' 라는 글을 쓰면서 오늘과 같은 사태를 다음과 같이 예측한 적이 있다.
백악관은 지금 시간이 없다. 백악관과 국무부 모두 어제 조선로동당 창건 70 주년 기념 열병-분열식 행사에 등장한 300 mm 방사포와, 그 탄두가 소형화-경량화형으로 업그레이드된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대한 논평을 일체 거부한 채 침묵을 지키고 있다. 한국언론들은 잠수함발사미사일이 등장하지 않은 것에만 약간의 안도를 하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지만, 잠수함발사미사일이란 타격목표를 향해 발진할 잠수함에 장착하고 소리소문없이 비장되어야 할 무기이지, 열병식 차량에 싣고 이리저리 끌고다니면서 자랑하기 위해 만든 무기가 아니다.
미국은 이제 어떠한 형태의 대북선제공격도 감행 할 수 없는 중대한 상황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대북정책을 포함한 동아시아 정책을 목차부터 다시 써야하는 기막힌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작전명 50 으로 시작하는 대한반도-대북군사정책은 결국 북코리아가 명실상부한 핵보유국임을 인정하고, 미국이 재무장한 보통국가 일본과의 강화된 전략연대를 통해 북코리아와 대칭적 상호견제관계로 공존하는 수 밖에 없다는 쪽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일본의 보통국가전환으로 그 성격이 완전히 바뀐 미일동맹에 한국을 하부단위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사실 백악관은 이것을 설득하기 위해 지난 여름 박근혜 대통령을 초청했었다. 근데 개뚱딴지같이 탄저균 배달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미국의 해외 세균전 음모가 구체적으로 폭로될 위기에 몰리자 미국은 부랴부랴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방문을 취소시켰었다. 명목상이긴 하지만 주권국가의 대통령이 미국까지 갔으면 탄저균 문제를 제기하고 항의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렇게 되면 문제가 아주 복잡하게 꼬일 수 있고, 초청의 본래목적인 한국정부의 일본 재무장 수용과 보통국가로 거듭날 일본에 대한 굴욕적 협조강요가 물건너 갈 게 뻔 한 마당에 박근혜 대통령 방미취소결정은 너무나 당연한 거였다. 한국언론은 때마침 확산일로에 있던 메르스 때문에 한국정부가 방미취소를 주체적으로 결정한 것처럼 보도했지만,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결정한 한국 대통령의 방미를 한국 정부가 제멋대로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은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박근혜 대통령이 13 일부터 16 일까지 3 박 4 일 동안 미국을 방문한다. 한국의 연합통신은 오늘 보도를 통해 "양국정상이 한미동맹의 굳건함과 북핵문제의 공조를 재확인할 것" 이라는 전망기사를 내놨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이런 쓰나마나한 형식적인 소리를 전망기사랍시고 작성한 기자를 당장 해고했을 것이다.
10 월 16 일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그토록 철두철미하게 지켜왔던 항일 역사의식을 슬그머니 후퇴시키고 딴 소리를 실실 하기 시작할 것인지, 아니면 예의 1977 년 불굴의 단식투쟁 정신으로 대통령 자리를 내걸고 백악관과 맞서 싸울 것인지, 싸르니아는 일단 짐작을 유보하겠다. (2015 년 10 월 12 일에 쓴 글)
싸르니아가 당시 유보했던 짐작이 빚나간 점이 한 가지 있다. 방미 이후 그토록 철두철미하게 지켜왔던 항일역사의식을 슬그머니 후퇴시키고 딴 소리를 실실 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슬그머니 후퇴시킨 것이 아니라 단숨에 내팽개쳤다.
결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했던대로 박근혜 대통령의 단식투쟁은 쉽게 끝났다. 10 억 엔 받고 기분이 좋아서 끝낸 것 같지는 않고, 강도높은 협박을 당한 것 같다. 위안부 문제를 일본이 요구하는대로 공식타결해 주지 않으면 1965 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명한 독도밀약 5 개항과 부칙에 관한 문서를 일본정부가 공식적으로 공개하고 독도영유권 문제를 국제분쟁화하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혼비백산했을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독도밀약이 공식화되어 가뜩이나 똥이 잔뜩 묻어있는 아버지 얼굴에 새 똥칠을 다시 하고 당시 적국이었던 제국일본의 전쟁범죄 부역자 후손으로서는 백해무익한 한일분쟁에 다시 말려드는 것 보다는 차라리 (어차피 욕 먹을 바에는) 위안부 문제를 타결하여 전쟁 중 부역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부여하는 편이 어느모로 보나 이득이라는 판단을 한 것 같다.
미국은 아마도 옆에서 거들기를, 일본이 독도밀약을 공식화하여 국제분쟁화하면 미국으로서는 1951 년 일본과 연합국간에 조인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라 독도 영유권에 대해 일본편을 들어 줄 수 밖에 없다고 협박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종류의 협박들은 비선라인을 통해 비밀리에 전달되었을테지만 박근혜 정부가 국내의 강력한 반발과 후폭풍을 무릅쓰고 저토록 어처구니없이 굴복한 꼴을 보면 미일 양국의 파상공세가 어느 정도로 노골적이고 무례했겠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