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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답글] 늘봄님께 질문드립니다. (좀 진지한 고민입니다)
작성자 Zeppelin     게시물번호 8826 작성일 2016-02-10 12:30 조회수 2427
저는 교회를 나가고 있지만 신앙심이 없어 아내손에 이끌려 나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인생은 무엇인지? 왜 사는지? 인간은 무엇인지? 그리고 절대적인 신에 대해 평소 고민은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중 최근 어떤 분을 만나서 2시간씩 5일연속 1:1 강의를 들었습니다.

내용인즉,  아무리 교회 열심히 다니고 성경 읽고 해도 거듭나지 않으면 영생을 얻을수 없고 못 얻으면 영원히 지옥에서 살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거듭나는건 인간의 노력으로 되는게 아니라 순간의 깨달음으로 얻을수 있고 그 진리는 매우 쉽고 간단한데, 인간이 교만하고 욕심이 많아서 그 쉽고 간단한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는 내용입니다.

10시간의 강의를 모두 듣고 저는 성경도 믿어지고 창조주가 천지를 창조하고 우주 만물을 관장하시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었고 믿게 되었는데요, 마지막 단계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얼마가 보잘것 없고 하찮은 죄인인지 고백)에서 막히고 있어요.

그렇게 기도를 통해 고백을 해도 뭔가 잘 안풀리는 느낌입니다. 제가 현재 물에 빠져 죽음의 문턱에 있다고 느껴야 처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할수 있고 그래서 구원을 받을수 있는 준비가 되는 거라고 합니다.그런데 아무리 봐도 제 맘이 그렇게 절실하지 않은거더라구요.

강의를 해주었던 목사님 왈 그 이유는 제가 살면서 큰 인생의 기복이 없고 큰 고생이 없이 편히 자라왔다는 점, 그리고 또 한가지는 제가 스스로 '이 정도면 나름 잘 살고 있는것 아닌가? 세상엔 나보다 훨씬 더 악한 사람들도 많은데..'라는 생각이 있어 그렇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보실때 인간은 똥통속의 구더기같은 존재라는 겁니다. 구더기가 아무리 깨끗하게 목욕을 해도 구더기는 구더기라는 거죠. 

그분이 설명해준 저에 대한 문제의 원인은 위와 같구요, 제가 스스로 찾아낸 원인은 이것입니다. 
구원받는 이는 극소수라는데 그럼 그 많은 인간들 (현재 인구만 70억이고, 과거 인구까지 합치면 1천억명은 될텐데 말이죠) 그 많은 사람들을 지옥불속에 그것도 영원이 집어 넣는게 애초의 태초를 설계했을때 창조주의 계획이라는게 도저히 저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이 느낄수 있는 고통의 강도는 1~10까지 있는데 지옥불에서 느껴지는 고통의 강도는 최대인 10이며 화상을 입으면서 칼로 피부를 찔림을 받는 그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사랑과 용서와 자비의 창조주이신 그분이 진정 극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몇천억명의 인간들을 영원토록 불구덩이이 넣고 그걸 즐기시려고 했을까 하는게 제 의문입니다. 그분과는 내일 다시 만나서 이야기 나누기로 했는데 그때 질문드리고 답을 얻어볼까 합니다. 

글쎄요, 내일 그분으로부터 명쾌한 답을 얻을수 있을까요? 얻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그러면 저는 영원히 강도 10의 고통에 해당되는 지옥불에서 살게 되는걸까요? 차마 그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늘봄님께서 이에 대한 답을 주시면 감사하겠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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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선생님이 주관하는 '종교 너머 아하! 경계 너머 아하!' (www.njn.kr)에서 퍼왔습니다. 이 웹사이트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합니다. 종교적 정치적 사상이 서로 다르더라도 건전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씨엔드림의 자유게시판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소개합니다. 

각 개체들이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홀로 살 수 없는 것이 우주의 법칙입니다. 진보이든 보수이든, 남한이이든 북한이든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세상은 평화롭고 윤택해집니다.  



최근에 작고한 세계적 비교종교학자 라이몬 파니카(Raimon Panikkar, 1918 ~2010) 박사.   (경계너머 아하 고문으로 있는 노영찬 박사의 지도교수이기도 하다.)


그는 스페인 바셀로나에서 가톨릭 어머니와 힌두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가톨릭 예수회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대학에서는 화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철학박사화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로마에 있는 Pontifical Lateran University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와 샹카라를 비교하는 논문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생애 후반부에 이르러 하버드 대학교 신학부 방문교수로 초청된 후 여러 해를 미국 산타 바바라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 Santa Barbara)에서 가르쳤다그는40권의 책과 900 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가 가톨릭 신부로서 인도에 가서 바나라스 힌두 대학(Banaras Hindu University)에서 인도 철학을 공부하면서 힌두교인이 되고 다시 불교를 공부하면서 불교인이 되었다그는 나중 그의 경험을 나는 그리스도인으로 유럽을 떠났고, (인도에서내가 힌두 교인임을 발견하게 되었고, (유럽으로돌아올 때는 불교인이 되어 있었는데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인 되기를 그친 일이 없었다.”


파니카는 현재 그리스도교가 활력을 잃고 쇠퇴해 가는데이를 멈추게 하는 길은 이웃 종교와의 이종교배와 상호 수태(cross-fertilization and mutual fecundation)를 통해서그리고 현재의 문화적 철학적 경계를 넘어 섬으로만 창조성과 역동성을 회복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요즘 말로 고치면 자기 종교만 진리를 다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이웃 종교를 정죄하거나 배척하는 배타주의적 태도를 버리고 역사적으로 검증된 종교 전통들 중에서 필요한 요소들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끌어안고 받아들여 이를 체화해야 한다는 뜻이다그는 자신의 생각을 몸소 실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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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하는  종교간의 대화에서 지켜야 할 규칙 아홉가지.

대략적인 골자를 한국어로 옮겨봅니다.

The Religious Encounter: Rules of the Game

 

Panikkar's primary principle for religious encounter is that it must be a truly religious experience. He develops this with respect to a number of subsidiary principles.

 

1. It must be free from particular apologetics. The Christian, Hindu or Buddhist must not approach the dialogue with the a priori idea of defending one's own tradition over or against the other. 
특정한 호교론으로부터 자유스러워야 한다.  자기 전통을 방어하려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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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It must be free from general apologetics. Those involved in interfaith dialogue should not see their task in terms of defending religion in general against the non-religious or anti-religious attitudes of secular society. This would turn the religious encounter into an ideological movement as well being simplistic in its rejection of modern secular consciousness.
일반적인 호교론으로부터도 자유스러워야 한다.  무종교나 반종교적 태도로부터 종교 일반을 방어하려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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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One must face the challenge of conversion. To be involved in religious encounter is a challenge and a risk. The truly religious person is not a fanatic who has all the answers but a pilgrim who is always open to the experience of grace and truth. One may lose one's life or even lose faith in one's own tradition--but one may also be born again and one's own tradition transformed.
자기가 모든 해답을 다 가지고 있다는 광신자가 되지 말고 진리에 대해 열린 태도를 취하고 심지어 개종할 수도 있다는 각오로 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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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The historical dimension is necessary but not sufficient. All religions risk limiting themselves to particular, historical interpretations which quickly become truncated ideologies. Religious encounter is a meeting of religious persons who both carry the power and burden of their own religious traditions; yet they also carry the power and burden of reinterpreting that tradition anew, not breaking with past history, but carrying it forward in imaginative ways. Religious persons like all others belong to history; they also change history through responding to life's contemporary challenges.
역사적 차원은 필요하지만 충분하지는 못하다. 자기 전통도 지금의 도전에 응답할 수 있도록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힘과 부담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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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It is not just a congress of philosophy. Religious encounter is a meeting of persons, not simply the meeting of minds. This does not deny the place of philosophy including the possible comparison of various religious systems. Nonetheless, doctrinal comparisons must be genuinely dialogical, that is, taking into account the reality of profoundly diverse worldviews. Much damage has been done by well intentioned western scholars who assume that only western philosophy has appropriate categories for understanding the world's religions. If anything, eastern philosophy has a more sophisticated system for appropriating religious truth.
종교적 대화는 단순히 철학 대회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격의 만남이지 지성의 만남이 아니다. 서양 철학만 아니라 동양 철학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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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It is not only a theological symposium. Theologians have an important role, but religious encounter is not primarily concerned with theological systems of thought. Theologies emanate from a particular experience, revelation or event that is ipso facto specific to the particular religious tradition in question. Theologies are primarily concerned with religious beliefs; religious encounter is concerned with religious persons in their entirety. The meeting of persons is not at the level of belief, but at the level of faith in a truth that transcends beliefs, doctrines and theological systems.
종교적 대화는 단순히 신학 심포지움만이 아니다.  신학은 신념체계에 관한 것이지만 종교적 대화는 종교적 인간 전체에 관계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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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It is not merely an ecclesiastical endeavour. Admitting that official encounter among representatives of the world's religious traditions is today an inescapable duty, these must be seen as separate to and independent of the religious encounter of ordinary religious believers. The former will be primarily concerned, as they must, with the preservation of their own traditions in a religiously pluralistic world. The latter will be freer to try new ways and risk new solutions . . . and to be genuinely open to the multireligious experience.
그것은 단순히 교회 지도자들의 노력만이 아니다.  평신도들도 참여해야.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의 전통을 유지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으나 평신도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 더 자유스러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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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It is a religious encounter in faith, hope and love. Whereas beliefs, ideologies, doctrines and theologies divide, faith unites. Hope is at once a truly human and a profoundly religious attitude, often linked to the religious notion of sacrifice: one's eschatological hope for the world andourselves enters the heart of the dialogue overriding fear, weakness and prejudice. Love seeks truth, but it also impels us toward our fellow human beings, leading us to discover in them what is lacking in us. In faith, hope and love, one yearns for the common recognition of truth that does not obliterate the differences or mute the voices of any tradition.
종교적 대화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이다. 신념체계나 이데올로기나 교리나 신학은 갈라놓는 경향이 있지만 신앙은 하나로 묶는 힘이 있다. 소망과 사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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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The primacy of intra-religious dialogue. Before entering into an inter-religious dialogue, one must first depth the reality of one's own tradition. This is to say that intra-religious dialogue is primary.
자기 종교 내에서의 대화가 먼저다.  이웃 종교와의 대화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자기 종교 전통의 실상을 깊이 알아야 한다.  자기 종교 내에서의 대화가 우선이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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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tchdog  |  2016-02-1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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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봄님께 하신 질문이지만, 저도 비슷한 경험,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의견을 보태봅니다. 종교는 desperate 한 상황에 처했을 때 생존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찾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제가 현재 물에 빠져 죽음의 문턱에 있다고 느껴야 처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할수 있고 그래서 구원을 받을수 있는 준비가 되는 거라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신 것이 그 증거입니다. 사기나 종교의 공통점이 바로 이 desperation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절박해지면 분별력이 떨어지고 급한 마음에 long-term consequence 에 대한 깊은 생각없이 단기적 이득/위안을 위해 편법을 쓰거나 종교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종교나 종교단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경제적 어려움, 외로움과 같은 인간의 불안한 감정을 바탕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런 절박함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연적입니다.

같은 논리로, 감정을 절제할 줄 알고 절박하지 않다면 종교의 힘을 빌릴 이유가 없습니다. 저도 유아시절 독립적인 사고 능력이 없을 때 어머니의 손에 끌려 교회를 다녔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도 말하는 뱀에 대한 존재가 의심스러웠고 기도할 때 항상 눈을 뜨고 주변 친구들이 뭐하고 있는 지 관찰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10대 후반에 들어서는 논리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성경 이야기 전반에 걸쳐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게 됐고, 대학에서 철학,논리,과학적 사고력을 키우다 결국 종교는 나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는 필요없다는 판단에 agnostist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사랑과 용서와 자비의 창조주이신 그분이 진정 극소수를 제외한 나머지 몇천억명의 인간들을 영원토록 불구덩이이 넣고 그걸 즐기시려고 했을까 하는게 제 의문입니다."

저도 같은 의문을 가졌었는데, 이 역시 불안감을 조장하기 위한 tactic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런 행동을 보이는 창조주가 있다면 어느 순간에는 사랑했다가 돌아서면 잔인무도한 폭력을 불사하는 심각한 bipolar disorder를 가진 정신장애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존재를 숭배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self-respect와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받아들여서는 안되는 모순입니다.

지옥이라는 개념은 중세에 사람들이 아는 게 별로 없을 때 Dante 때나 얘기하던 아이디어입니다. 지옥의 존재는 관찰된 적도 없고, 검증할 수도 없는 현상이니 불필요한 상상은 떨쳐버리시고, 교회에 더 이상 돈 버리는 일 없으시길 바랍니다. 요즘처럼 불경기일 때 내 자산 관리 잘 하는 게 가족 지키는 길이죠.

내사랑아프리카  |  2016-02-10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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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ppelin님, 안녕하세요. 제가 관여할 댓글인지 모르겠지만, 님께서는 부인의 의견을 존중하시는 것 같고 본인 또한 종교적 진리의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하신 것 같습니다. 정치에 대해서도 누구든지 한 말씀을 하듯, 종교에 대해서도 누구든지 한말씀을 하니 선택하기가 힘들죠. 그래도 종교라는 현상에 대해서 객관적 입장을 유지하는 사람의 태도가 좋다고 봅니다. 종교에 대해서 윽박지르는 발언들은 진보적 신앙이든 보수적 신앙이든 별로 종교 이해에 도움이 안됩니다. 그런 발언들은 이미 본인들의 종교적 입장(종교를 가지든 그렇지 않든)을 선입견적으로 갖고 있다고 봅니다.

제가Zeppelin님을 이해하는 바로는 보수 복음주의 교회 중에서도 성령세례를 강조하는 오순절교회나 침례교 계통의 구원파 사람들이 주장하는 확고한 영생을 강조하는 교회나 교역자들을 접한 것 같습니다. 위의 글을 보면, 님께서는 그 목사라는 분의 교회나 가르침을 받는 한 별로 마음의 평화를 가지시지 못할 것 같군요. “마지막 단계”에서 꽉 막혔다고 하셨는데, 첫단계에서부터 저는 이미 막혔다고 봅니다. 개인의 소박한 신념이나 위대한 신학체계든 나름대로 일관된 주장을 갖추고 있으므로, 마지막 단계의 천국과 지옥의 문제는 첫단계와 일관성이 있는 체계이므로 그런 좁은 체계(belief system)안에서는 지옥의 문제는 결코 극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Zeppelin은 부인도 기뻐하시고 본인도 종교적 의미추구를 할 수 있는 종교를 추구하시고 싶은데 지나치게 경직된 “구원론”(soteriology)에 힘들어하시는 것 같군요. 제 소박한 생각에 그 강의를 해 준 목사로부터 “내일 그분으로부터 명쾌한 답을 얻을수 있을까요?”라고 하신 것처럼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연유로 보자면 그분으로부터 떠나시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겁니다.

세상에 종교가 다양하듯 기독교 내에서도 구원론에 대한 이해도 다양합니다. 보수 복음주의 내에서 릭 워렌이나 조엘 오스틴은 물론 로이드 죤스나 J. I. 패커 같은 목사와 신학자들도 지옥을 강조하시 않습니다. 전통적인 기독교는 ‘신을 아는 지식’(Knowing God)은 지옥을 경험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데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좀 기술적인 용어(technical term)을 사용하자면, 힌두교든, 불교든, 기독교든 현재 일어나는 나의 불행이나 나의 삶의 미래에 대한 해답을 구하고 나름대로 체계를 잡으려고 합니다. 이런 노력을 종교사회학의 선구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신정론”(theodicy)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정론이란 왜 신이 통치하는 세계에서 신자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이런 질문에 대해서 그 목사라는 사람은 “인간의 죄=>지옥”이라는 연속성을 제시하는 것이죠. 힌두교에서는 윤회(samsara)와 업(Karma)의 연관으로 설명하고, 불교는 인간의 영혼(soul)은 애초부터 없기 때문에 이러한 자아는 없었다는 무아사상에서 출발해서 인간에게 닥치는 고통의 현실을 직시하자는 노력이라는 신정론을 발전시켰습니다.

이러한 신정론의 문제는 종교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사랑하는 자녀가 교통사고로 죽거나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날 때, 그 사람은 회상과 망각을 거듭하며 마침내 자기 위로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무지 괴로와서 살기 힘들 겁니다.

말씀이 길어지는 것 같아서 기독교의 문제로만 한정시켜 보겠습니다. 저는 폴 틸리히라는 신학자이자 종교철학자를 좋아하는데, 인간의 죄나 천국과 지옥의 문제는 유한성에 대한 질문에서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숙명적 (mortal) 존재이고 그러한 숙명성을 극복하자는 나름의 노력이 바로 사후 세계에 대한 구성(construction)입니다. 어떤 이는 이것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서 사후세계는 현세만큼 real하다고 보는 것이며, 틸리히과 같은 학자는 유한한 인간의 의미추구의 연속성과 영속성을 고민하는 것이죠.

제가 답변을 결론적으로 드린다면, Zeppelin님처럼 진지한 질문을 하시는 분은 그 목사라는 분으로부터 ‘의미있는’(meaningful) 답을 기대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meaningful하다는 것은 질문과 답이 깊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이상 그런 분을 만나기보다는 영어가 좀 되신다면 서양인 교회에 잠시 다녀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또는 영생이나 지옥으로 윽박지르지 않은 복음주의 교회를 나가시는 것도 좋구요. 님께서 캘거리에 사시면서 서양인 교회에 나가고 싶다면, Woodcliff United Church (http://www.woodcliffunited.com/ )
를 추천합니다. 여기 목사는Rev. Piotr (Peter) Strzelecki입니다. 그는 폴란트 가톨릭 신부 출신이고 개신교로 이전 하신 분인데 가톨릭과 개신교의 영성을 두루두루 섭렵하신 분입니다. 제가 힘들 때 상담을 했었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분이 헤르만 헤세를 무척 좋아해서 저에게 친근해진 분입니다. 이분을 통해서 저는 유대인 랍비 Harold Kushner를 알게 되었죠. 쿠쉬너의 대표적인 책은 [When Bad Things Happen to Good People]입니다.

다시 틸리히로 돌아와서, 틸리히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철학자의 하나님과 다른 분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부인께서는 소박한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을 추구하시면 좋을 듯하고 님께서는 좀 더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면서 신앙의 해답을 찾는다면 참 좋겠군요. 이에 더하여 믿고 실천하는 것, 즉 believing과 doing에 한정하지 말고 공동체를 추구하는 belonging도 함께 추구하면 참 좋겠군요. 교리와 믿음행위도 중요하지만 사람들과 만나서 교류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believing, doing, belonging은 함께 가는 것이죠. 결국, 우리가 무엇을 믿건, 무엇을 행하건, 어디에 속하건, 기독교의 전통에 있는 한에서 보자면 사랑이 기독교의 핵심이지 천국과 지옥이 핵심은 될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 올림

늘봄  |  2016-02-11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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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ppelin 님에게 저의 답글을 드리기 전에 여러 분들께서 좋은 의견들을 내어주셔 감사합니다. 이미 나눈 생각들을 다시 중복하지는 않겠습니다. 님께서 저에게 질문하신 내용들은 기독교인들이 타인의 강압적인 간섭없이 자율적으로 자유하고 진지하고 정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들입니다.

질문하신 문제들을 저 나름대로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무엇인가? 영생이란 현세의 문제인가 내세의 문제인가? 영생은 죽음 후에까지 연장되는 지옥/천당의 구원론에 대한 것인가? 거듭남이란 기독교인으로 개종하는 것인가 아니면 깨달음인가? 고대인들이 기록한 성서는 문자적으로 읽고 그대로 믿어야 하나? 21세기에 창조론과 진화론의 충돌은 무엇인가? 초자연적인 하느님은 하늘 위에 물질적으로 존재하는가? 오늘 나의 구원은 무엇인가? 종교란 무엇인가? 기도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나?

저는 20년 동안 목회하면서 저의 설교와 교육에서 다음의 신학과 신앙과 삶의 비전을 교인들에게 나누었습니다. 물론 저의 생각과 다른 교인들도 있었고, 이해하는 교인들도 있었습니다. 제가 교인들에게 요청했던 것은 저의 신학과 신앙을 한 번 진지하고 솔직하게 생각해 보라고 했습니다.

성서는 고대인들이 삼층 세계관에서 시적 또는 신화적 또는 은유적으로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성서를 읽는 사람들은 우주진화 세계관에서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서는 문자적으로 읽고 공식이나 교리로 믿는 책도 아니고, 역사책이나 과학책도 아닙니다.

이에 따라서 인간은 초자연적인 신이 만든 벌레만도 못한 죄인이 아니라, 이 광활한 우주 전체를 이루는 하나의 개체일뿐입니다. 그러나 호모 싸피엔스 인간은 최근에 인간의 본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생명의 의미와 인간의 존엄성과 삶의 의미에 대해 심층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대 종교들이 만든 교리가 인간의 자율성과 독창성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물론 각 사람은 개인적으로 죽음 후의 다른 세상을 염원할 수 있습니다. 죽은 후에 이미 돌아가신 부모님들과 형제자매들과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꿈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죽지않고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 죽은 후 다른 세상(천당)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풍요롭게 멋지게 살고 싶은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이 모든 꿈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꿈은 극히 개인적인 바램일 뿐이지 온 인류에게 적용할 원칙이 될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계시와 공개적인 계시는 구분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요한게시록은 요한의 개인적인 체험일뿐이지 이것을 온 인류의 미래로 강제적으로 강요할 수 없습니다.

죽은 후 천당에 올라 가거나 현재 여기에서 잘 살 수 있는 길을 하느님이 결정한다는 것은 우주진화 세계관에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만일에 천당이 있다면 또한 지금 여기에서 잘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간섭할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만든 삶의 방식이지 믿어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느님을 믿어야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말은 교회가 만든 상업적인 공식입니다. 그런 하느님이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죽은 후에는 물론 지금 여기에서 잘 살고 잘 먹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종교는 하느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다른 인간과 생명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즉 종교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수단입니다. 사람들은 하느님없이도 선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믿는 대상 또는 목적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사는 방식입니다. 교회에 나가고 기독교의 하느님을 믿으면 좋은 일이 일어나고 하늘에서 보상이 내려온다는 말은 대단히 상업적이 발상입니다.

나의 구원은 지금 여기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지 않고 인간답게 사는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순간순간에 영원함이 있습니다. 영생의 길은 거듭남 즉 깨달음에 있다는 말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죽은 후에 내세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영생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깨닫는 순간이 영생(영원함)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Zeppelin 님의 질문은 죽는 순간까지 일상생활 속에서 심층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할 중요한 문제들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답변이 절대적인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님께서 스스로 자율적으로 생각하실 수 있는 길을 열어 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신학을 공부했던 학교의 교수님들은 이구동성으로 "Think about it" 이라고 요청하면서, 내가 가르친대로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기독교 교회들은 교인들에게 이것이 절대적인 해답이라고 무조건 복종하고 믿으라고 억지를 부립니다.

님께서 자율적으로 양심적으로 성실하게 사시는 평범한 삶 속에 영생과 천당과 구원이 있습니다. 이것을 더 잘 하기 위해 교회에 가는 것입니다.

평생 고민해야 할 문제들을 너무 간단하게 답변해서 죄송합니다. 질문하신 내용들을 기회가 있는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나 혹시 에드몬튼에 사시면 저와 직접 만나 더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디 상식과 양심을 잃지 마시고 하루하루를 생기가 넘치게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늘봄  |  2016-02-11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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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ppelin 님, 혹시 작년 한 해 동안 CN 드림 신문에 소개된 진화영성에 대한 종교칼럼을 읽어 보셨는지요? 거기에 저에게 주신 질문들을 탐구하는 내용들이 상세하게 나왔습니다. 기회가 있는대로 읽어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많은 책들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를 추천한다면,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발행한 '기독교의 심장'(마커스 보그 지음)이 기독교인의 신앙과 삶에 대해 정직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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