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지하철은 그 자체가 박물관이다. 올해로 102 년 됐다. 고가철도 시절부터 계산하면 148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연륜에 걸맞는 고색창연한 운치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야생동물이 살아가는 모습도 관찰할 수 있다. 지하철 경내에서 출몰하는 야생동물은 쥐와 참새다. 쥐는 고양이가 놀라 자빠질 정도로 크다. 고생대 석탄기 이래 지구와 생사고락을 함께 해 온 곤충 (학명) Periplaneta americana 도 서식하고 있다.
박물관과 동물원 서비스를 겸하고 있어서 그런지 요금은 비싼 편 이다. 구간거리에 관계없이 한 번 이용하는데 2 불 75 센트다. 한 정거장을 가도 2 불 75 센트고, 반나절을 가야하는 거리인 브롱스 북쪽 끝에서 브루클린 남쪽 끄트머리까지 가도 2 불 75 센트다. 거리 요금 계산과 관련된 고민을 할 필요없는 쿨한 요금체계다.
여행자들은 7 일 무제한 승차권을 구입하는 게 유리하다. 메트로카드비 1 불을 포함해서 31 불 이다. 뉴욕 지하철의 최고 장점은 24 시간 운행한다는 점 이다. 막차를 놓칠까봐 염려할 일이 없다.
낡은 시설과 음산한 에너지의 기묘한 조화
뉴욕지하철의 그로스한 매력에 푹 빠지다 !!
승강장 양쪽으로 모두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는 열차가 들어온다. 반대방향으로 가는 열차는 철길 건너 편 승강장에서 타야 한다. 한 방향으로 진행하는 선로는 한 개가 아니라 두 개다. 다른 노선 열차가 번갈아 들어오므로 자기가 타고 갈 열차의 노선표시를 확인하고 타야한다.
열차색깔은 모두 은색이므로 열차색깔로는 노선구분이 불가능하다. 열차가 들어올 때마다 사슴처럼 모가지를 길게 빼고 열차 앞에 붙어있는 조그만 열차노선표시를 확인해야 한다. 노안이 있다면 돋보기를 착용하고 지하철에 들어가는 게 좋다.
모든 역에 정차하는 열차인지 Express 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Express 열차를 잘못타기라도 하면 백 리밖 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야 한다. Express 열치는 마름모꼴 안에 노선표시가 되어 있다.
지하철역을 발견하는데는 관찰력이 필요하다. 지하철역들이 하나같이 도적질하다 들킨 놈들처럼 길모퉁이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금융중심 월가의 지하철 입구도 마찬가지다. J.P Morgan 건물 옆에 있는 월가의 지하철 입구 역시 눈에 잘 띄지 않는 한 구석에 숨어있다. 월가 지하철역은 마치 중세기 소녀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월가에 가실 분들은 이 역이름과 노선 Z, J 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한 불럭 동쪽 증권거래소와 트리니티교회 사이로 지나가는 월스트리트 역에는 노선 1,2,3 호 지하철이 정차한다.
줄 같은 건 설 필요없다. 뉴욕 지하철 사전에 줄 이라는 단어는 없다. 승강구표시도 없다. 그저 먼저 온 자가 나중에 타고 나중에 온 자가 먼저 타는, 불공평해 보이지만 영겁의 세월이 지나면 결국 공평함으로 수렴되는 무질서가 계속 반복될 뿐이다.
스크린도어가 없기 때문에 줄을 서거나 승강구표시 앞에 사람들이 몰리면 더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싸르니아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각자 환경에 맞게 살아가는 방법은 따로 있는 것 같다.
뉴요커들이 걷는 속도는 다른 지역 사람들에 비해 매우 빠르다. 반면 개찰구에서의 메트로카드 인식 실패율은 높은 편이다. 개찰구 스캐너가 메트로카드 인식을 실패해 개찰봉이 열리지 않으면 성미급하게 나가려던 승객들이 개찰봉에 결려 공중제비를 돌거나 앞으로 고꾸라지는 사고를 당하기 쉽다. 개찰구가 경찰서 지하유치장 처럼 막혀 있으면 승객들이 그런 사고를 당할 염려가 없다.
뉴욕 지하철은 입장할때만 메트로카드을 스캔한다. 나갈때는 메트로카드를 스캔하지 않고 그냥 문을 밀고 나가면 된다. 당연하다. 요금이 2불 75 센트 한 가지 뿐 이니 승객이 나갈 때 카드를 스캔할 이유가 없다.
만일 당신이 예민한 영매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뉴욕지하철에 들어서는 순간, 이 세상 것이 아닌 듯한, 기묘하고도 색다른 에너지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때가 있을 것이다. 기묘한 에너지란, 산 자와 죽은 자가 같은 차원 한 공간에서 공존하고 있는듯한 강렬한 메시지 같은 것을 의미한다.
늦은 밤, 인적이 끊긴 업타운행 열차를 타고가다보면, 아무도 건드린 사람이 없는데도 열차 바닥에 떨어진 신문지가 휘리릭~ 하고 저절로 공중으로 떠 올랐다가 떨어진다든가 하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목격할 때가 있다.
참고로, 뉴욕지하철에서는 매년 평균 50 건 정도의 자살과 추락사고가 일어난다고 한다. 그런 사건이 1 백 년 넘게 계속 일어났다.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축적된 음기(陰氣)가 때로는 너무나 강력한 나머지 죽은 자의 공간에서 산 자의 공간으로 넘어 올 때가 있다.
스태츄 오브 홈리스
뉴욕지하철에서는 무료 와이파이가 제공된다. 물론 수시로 연결이 끊어진다. 서울지하철은 탈 때마다 덥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데, 뉴욕지하철은 언제나 에어컨이 빵빵하다. 방콕지하철이나 지상철을 닮았다. 인터넷하다 짜증을 내고 혈압을 올리기보다는 책을 읽기에 적당한 환경이다. 오랜만에 소설책 한 권을 짧은 시간에 다 읽었다. 타임스퀘어 명상계단에서 3 분의 1 을, 뉴욕지하철 안에서 나머지 3 분의 2 를 읽었다.
책 표지사진에 나온 숱이 많은 긴 머리 40 대 여성이 이 소설을 쓴 작가인 모양인데, 주인공 영혜가 작가의 20 년 전 모습과 똑같이 생겼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잘못 읽었는지는 모르지만,,,,,,작가처럼 숱이 많은 긴 머리를 가지고 있는 영혜가 이런 말을 헸었던 게 기억난다.
"언니, ...... 뉴욕의 지하철들은 모두 형제같아"
뉴욕에서 지하철을 타 본 적이 없다면 뉴욕여행을 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