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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충근의 기자수첩) 세계 극우화와 기독교 - 트럼프는 극우의 정통 적자

사진 설명) 위는 오스트리아 극우정당이 정권 잡았을 때 모습, 아래는 마가 모자 쓴 트럼프 대통령 
오스트리아가 던진 돌멩이 한 개
1999년 오스트리아 총선이 있었다. 유럽지도를 놓고 보면 오스트리아는 손톱처럼 작은 나라인데 1999년 총선에서 세계를 뒤흔드는 사건이 생겼으니 극우정당 오스트리아 자유당(FPO)이 27% 득표율로 제2정당이 되었다. FPO는 오스트리아 국민당(OVP)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2차대전 후 최초로 정권을 잡은 극우정당 등장에 유럽은 망연자실했다. 나치라는 극우 괴물이 사라진지 고작 50년만에 극우가 또 등장하다니.

그후 유럽의 극우화는 이슬람 난민들이 몰려들면서 가속화되어 FPO는 현대 유럽 극우정당의 할아버지 대우를 받는다.
몰려드는 이슬람 난민에 대해 전통가치 수호, 문화적 정체성을 앞세워 유럽 극우정당들은 날개를 달았고 최근 총선에서 FPO는 29% 득표로 제1당이 되었다. 여기에는 보수 기독교가 앞장섰다. 극우정당과 보수 기독교는 공유하는 가치가 있다. 전통적 가부장적 가족 모델, 기독교 전통 문화 등등.

유럽의 기독교(천주교 개신교 모두)는 겉으로 보기에는 교회가 텅텅 비어 관광객들 구경거리로 전락하였지만 기독교 가치는 유럽인들 정신에 내재되어 있다. 마치 우리들 DNA에 유교적 전통이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거슬러 올라가면 오스트리아의 극우는 뿌리가 깊다. 2차대전 때 히틀러의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침공하자 오스트리아 국민 대다수가 비엔나 광장에서 열렬히 히틀러를 환영했고 투표에서도 99.7%가 나치와 합병을 찬성했다. 이 배경에는 독일 민족주의와 범 게르만 주의(Pan-Germanism)가 있다.

2차대전 후 오스트리아는 나치에 협력한 책임으로 미, 영, 불, 소 4개국의 분할통치를 받았다. 손톱만한 나라가 4등분되었는데 우리분단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는 미국 앞잡이 이승만과 소련 앞잡이 김일성이 반쪽짜리 권력이라도 잡으려고 분단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오스트리아는 외세 앞잡이 4명은 합의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분단은 안된다.”

그러다 스탈린이 죽고 후루쵸프가 서기장이 되며 동서 화해 무드가 조성되었다. 1955년 오스트리아는 영세중립국을 선언하며 외세가 물러나 마침내 통일이 되었다. 변태스럽게 권력에 집착한 스탈린이 살아 있었다면 오스트리아 통일은 어림도 없었지만 분열은 안된다면서 10년을 버틴 오스트리아 정치지도자들의 끈기의 산물이기도 하다.

2차대전 후 전 세계는 나치를 철저히 색출해 죄과를 물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오스트리아는 다소 예외 다. 미국과 이승만 정부가 공산주의 침투를 막으려고 친일파 처벌하지 않고 중용했듯이 오스트리아도 공산주의 침투를 막으려고 나치 처벌을 철저히 하지 않았다.
FPO의 전신 자유연맹은 나치 잔당들이 모여 창당을 했다.

4개국 분할통치시절인 1949년 총선에서 11.6% 득표율로 16석의 의석을 차지했다. 그후 FPO로 당명을 바꿨다. 초대 당수 안톤 라인탈러는 친위대 장군 출신이고 2대 당수 프레드릭 페테는 17세에 나치에 가입, 친위대 장교를 지낸 인물이다.

오스트리아가 던진 돌 하나가 유럽에 파문을 일으키며 일파만파로 헝가리, 슬로바키아, 이탈리아, 네덜란드, 덴마크, 독일의 우파정당이 극우와 연합해 정권을 창출하거나 극우가 무시할 수 없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프랑스도 극우 정당이 최대 정당 중에 하나로 떠올라 이젠 극우정당, 극우 정치가 등장이 더 이상 금기가 아니라 뉴 노멀(New Normal)이 되어 대서양을 건넜다. 마치 코로나 바이러스 번지듯이.

영국의 브렉시트 가결은 미국 같은 민주주의체제에서도 기득권 엘리트에 맞서는 포퓰리즘이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 유럽의 대표 극우 헝가리 오르반 정권의 반 이민주의, 비자유주의 민주주의는 트럼프의 MAGA가 지향하는 가치에 선행 사례를 제공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시작된 이민자를 본국으로 되돌려 보내는 Remigration은 트럼프의 핵심 이민 정책 용어가 되었다.

트럼프는 유럽의 극우정당들을 문명적 동맹(Civilizational Allies)라고 연대감을 표시하며 이슬람 유입에 맞서 서구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고 추켜세웠다. 트럼프와 유럽의 극우는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전 지구적 문명 전쟁으로 격상되었다.

정교분리, 말뿐 인가?

나폴레옹은 말했다. “나는 그리스도가 3일만에 부활했다는 기적은 믿지 않지만 종교가 사회 통합, 사회 질서를 유지한다는 기적은 믿는다.” 나폴레옹은 군사적 업적이 뛰어난 전략가지만 동시에 정치에 종교를 이용할 줄 아는 노회한 정치가였다. 그는 황제 대관식에 교황 피우스 7세를 초청했다. 프랑스 혁명으로 종교(천주교) 권위는 땅에 떨어졌는데 나폴레옹에게 황제의 관을 씌워 줌으로써 교회의 권위를 회복하게 되었다. 황제 대관식은 노틀담 성당에서 열렸다. 노틀담 성당은 혁명정부가 마구간으로 개조했는데 그후 복구되었다. 예수가 마구간에서 탄생하신 걸 생각하면 혁명정부 의도가 아주 잘못된 것은 아니다.

대관식에서 나폴레옹은 교황에게서 관을 받아 직접 머리에 썼다. 나는 내 스스로 황제가 되었다는 선언이다. 사무엘이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듯이 피우스 7세도 선지자의 권위를 회복하려 했으나 고작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나폴레옹의 예에서 볼 수 있듯 종교와 정치는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다. 당시에도 혁명정부는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헌법에 명시했으나 헌법과 현실의 괴리는 컸다. 그 괴리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다. 우리나라도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도 미국도 헌법에는 종교와 정치를 분리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정치와 종교의 관계가 전세계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남침례교와 트럼프

트럼프 같은 괴물이 생겨난 것도 종교(남침례교) 영향이 매우 크다. 미국 침례교는 노예제도를 놓고 갈라졌다. 북부 침례교회는 노예해방을 남부 침례교는 노예제도 존속을 주장했다. 1845년 노예제도 찬성하는 남침례교가 태어났다. 미국 건국 아버지들의 대부분은 노예를 거느린 농장주들이었다. 남북전쟁 후에 법과 제도가 바뀌었으나 남침례교는 인종차별을 신의 질서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창조설 대신 진화를 가르치고 낙태를 헌법적 권리로 인정하고 인종차별이 폐지되고 성소수자 권리가 인정되자 남침례교 중심의 복음주의자들은 종교의 자유가 침해 받았다며 정치에 직접 관여하기 시작했다.

정교분리가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지킬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복음주의자들의 힘은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났다. 카터 대통령과 레이건이 맞선 선거에서 레이건의 손을 들어주었다. 카터 대통령은 매주 예배에 참석하는 남침례교 독실한 신자이고 주일학교 교사로 오랜 기간 봉사했고 레이건은 교회도 다니지 않고 이혼한 경력이 있는 비 성경적 인물이다. 그러나 종교를 떠나 정치적 이념에서 카터 대통령의 평등 사상, 여성 권리 존중 보다는 레이건의 공립학교에서 기도 부활, 낙태 반대, 동성 결혼 반대, 전통적 가족 가치 존중, 강력한 반공주의 등의 정책이 극우 복음주의자들을 열광시켰다.

남 침례교 중심의 복음주의자들은 1, 2차 걸프전쟁에서도 부시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하며 기도회를 열었으니 예수가 말씀하신 사랑, 관용, 헌신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성경의 진리대신 정치적 입장이 더 중요한 것이다.

사회가 진화되어 다문화가 일반화되고 동성결혼, 여성권리 존중이 사회적 이슈가 되자 복음주의자들은 영적 전쟁이란 이름으로 극단화 되었다. 기독교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은 전세계적 현상으로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통계에 따르면 2006년 복음주의자는 인구의 23%였으나 2024년에는 13%로 줄었다. 그러나 정치적 영향력은 오히려 늘어났다. 미국 선거제도가 갖고 있는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미국의 예비선거(Primary) 제도는 정당의 후보 선출 과정에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민주적 제도이나 낮은 투표율로 인한 대표성 문제, 정치 양극화 심화, 제도적 불균형 등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다.
2024년 기준으로 하원 의석의 87%가 예비선거에서 결정되었는데 예비선거 과정에 참여한 유권자는 전체의 7%에 불과했다. 유권자의 7%가 의원 87%를 결정하는 현실에서 후보자들은 예비선거에서 강성 지지자들의 외면을 두려워하여 온건하고 중도적 입장보다 강성 지지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게 되어 정치적 극단화를 야기한다. 강성지지자들의 대부분이 교회출석 열심히 하며 매주 얼굴을 맞대는 극우 복음주의자들이다.

미국은 다를 줄 알았는데

트럼프 1기때만 해도 대부분 사람들이 황당 해하면서도 “미국이 이럴 수가?” 혹은 “어디서 돌연변이가 나타났구나. 저러다 말겠지, 미국이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정교하게 작동하는 나라인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트럼프 2기가 시작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 못지 않게 미국도 자생적으로 극우 포퓰리즘이 쉽게 정권을 잡을 토양이 충분히 자리잡고 있다. 충분조건 하에 등장한 극우 대통령은 우연이나 일회성이 아니라 미국사회가 내포하고 있는 구조적인 결함을 보여준다.




기사 등록일: 2026-02-28


사계절4 | 2026-02-28 1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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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정치적 혼란, 과연 종교만의 문제일까요?

올려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지금의 정치적 혼란을 바라보는 님의 우려에 깊이 공감합니다만, 거의 43년 동안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제 경험과 미국 시민으로서 트럼프 대통령을 지켜본 바에 따르면 제가 현장에서 체감한 진실은 님의 의견과 조금 다릅니다.

혼란스러운 정치 유세 현장 한가운데서 군중의 뜨거운 열기를 마주하다 보면,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 보고 섣부른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경우가 참 많지요. 하지만 작금의 혼란은 거대한 종교 전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종교가 주던 도덕적 중심이 사라진 자리를 정치적 혐오가 채웠기 때문에 발생한 씁쓸한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트럼프주의와 오스트리아 자유당 같은 유럽의 극우 정당을 비슷한 결로 보시지만 실제로는 그 뿌리부터가 완전히 다릅니다. 유럽의 극우가 역사적으로 강한 국가 권력과 사회 복지를 강조하며 기존 체제 안에서 움직이려 한다면, 트럼프주의는 기존 시스템이나 관료 체제 자체를 흔들고 해체하려는 성격이 강해 예측이 훨씬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가 극단주의를 부추긴다는 선입견이 있지만, 실제 현장의 통계는 정반대를 가리킵니다. 매주 빠짐없이 교회에 나가는 독실한 지지자들은 종교가 없는 지지자들보다 인종이나 이민자 문제에 훨씬 더 온건하고 포용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종교 안에서 실천하는 이웃 사랑과 봉사가 사람들의 극단적인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일종의 '백신'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셈입니다.

실제로 미국 최대 교단 중 하나인 남침례교(SBC)조차 최근 공식 회의에서 국가가 특정 종교를 강요해선 안 된다며 정교분리와 종교의 자유를 명확히 선언하기도 했고요.

그렇다면 정치가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변했을까요? 저는 그 이면에 종교적 음모가 아니라, 미국의 '고장 난 선거 방식'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고 봅니다. 현재 미 하원 의석의 87%가 본선이 아닌 경선에서 사실상 결정되는데, 정작 이 경선 참여자는 전체 유권자의 7%에 불과합니다. 아주 소수의 열성 유권자만 투표에 참여하다 보니, 정치인들로서도 대다수 중도적인 국민보다는 소수 극단주의자들의 눈치를 보게 되는 치명적인 한계에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잡성은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캐나다 앨버타의 상황에서도 고스란히 엿볼 수 있습니다. 이곳의 보수 운동 역시 단순한 종교적 열풍이라기보다는, 지역 경제의 핵심인 에너지 산업을 보호하고 연방 정부로부터 자치권을 굳건히 지키려는 경제적이고 지역적인 목적이 훨씬 크게 작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결국 지금 벌어지는 정치적 현상들은 어떤 거창하고 이상적인 종교적 프레임이라기보다는, 당장 현실적으로 어떻게 삶을 꾸려나갈 것인가 하는 '먹고사는' 평범한 진실의 문제에 훨씬 더 맞닿아 있습니다.

지역마다 복잡한 사정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것인데, 이를 거대한 종교 전쟁이라는 하나의 렌즈로만 묶어 보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따릅니다.

따라서 지금은 특정 집단을 향해 날 선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기보다는, 대다수 평범한 시민의 목소리가 올바르게 전달되도록 선거 제도를 개선하고 서로 존중하는 공동체의 유대감을 회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도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