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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칼럼 - 종교문맹퇴치 23] 아직도 기독교인들만 축복받고 구원받는다는 거짓말을 믿습니까?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1037 작성일 2018-07-08 18:10 조회수 3580

[21세기의 종교(Religion)는 어떤 대상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우주의 개체들이 상호의존관계 (Relationship)를 이루어 살아내는 삶이다. 따라서 믿는 것(believing)과 사는 것(living)을 분리하거나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종교문맹이라고 한다. 종교문맹은 종교의 진리들과 과학의 진리들을 별개의 것들로 따로따로 떼어놓고 생각하는 것이며 또한 역사의 진리들과 종교의 진리들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종교문맹은 우주진화 세계관이 사회주류를 이루고 있는 21세기에 과거의 패러다임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분별하지 못하거나, 그 분별을 무시하고 거부함으로써 비과학적인 삼층 세계관에 근거한 가치관과 윤리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증상을 말한다. 종교문맹은 인류의 밝은 미래에 큰 장애물이 된다. 따라서 종교문맹은 반드시 퇴치되어야 한다.]

 

21세기 우주진화 세계관의 사회에서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성서근본주의의 노예가 된 교회기독교의 거짓과 은폐에 더 이상 속아 넘어가지 말고, 또한 억지로 믿는 척하며 타율적인 신앙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세상종말과 최후심판이라는 죽음의 두려움을 심어주면서 기독교인만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간는다는 이원론적 구원론을 상업적으로 팔아먹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죽은 후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 위 천국으로 올라갈 망상을 버리고, 더 이상 이런 위선과 거짓에 휘말려 혼돈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갈 필요가 없다. 오늘날 새로운 패러다임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기독교인들은 작은 그림의 부족적인 믿음을 떠나 보내고, 삶의 지평을 우주적으로 넓힐 때가 되었다. 교회기독교는 편협하고 비상식적이고 부족적인 종교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큰 그림의 우주적인 종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밝은 미래를 위한 정직한 대안이다.

 

인류문명이 시작된 이래 세계 도처에서 민족들마다 특유한 종교적 전통들을 만들었다. 특히 중근동 지방과 서구세계의 민족들마다 자신들을 보호해줄 강력한 신(god)을 만들었다. 또한 민족들 사이의 생존의 경쟁으로 일어난 전쟁은 그야말로 신들의 전쟁이었다. 한편 멸망의 늪으로 빠져들어가는 로마제국은 갈릴리 예수를 신성화하여 그것으로 제국의 운명을 구하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어서 바티칸의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로마제국을 계승한 성로마제국이 구축되었다. 그러나 제국적인 교회기독교는  생존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권력과 권위를 보호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다.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성스러움을 가르쳤던 역사적 예수의 정신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예수를 배반한 제도적인 기독교는 오히려 인간예수를 초자연적신으로 숭상하고 제국종교로 변질되었다. 불행하게도 바티칸의 교회기독교는 이분법적인 우월주의와 배타주의의 망상에 사로잡혔으며, 기독교인만 축복받고 구원받는다는 독선과 거짓과 은폐 속에서 사람들을 통제하고 우롱했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기독교인들은 죽음의 두려움과 이기적인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한체 예수천당-불신지옥의 부족적인 믿음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 우주는 하나의 생명의 망으로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우주진화 세계관이 주류 사회의 기초가 되고 있다. 기독교는 작은 그림의 부족적인 종교 넘어, 큰 그림의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삶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신약성서에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여라라는 예수의 가르침이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이야기는 예수가 사람들에게 오직 자신을 믿어야 죽은 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소위 거짓 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도하라는 명령이 아니다. 그것보다 로마제국의 잔악한 통치와 성전종교의 이분법적 탄압 아래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빼앗기지 말고, 비굴하지 말고 자율적으로 떳떳하게 용감하게 사람답게 살라는 도전이다. 다시 말해, 예수의 가르침에 따르면 사람들이 만든 교리와 공식을 입술로 인정하고 수동적으로 믿는 것이 참된 삶과 신앙이 아니다. 예수는 진부하고 쾌쾌묵은 과거의 패러다임을 내려놓고, 편협하고 부족적인 종교 넘어 신앙과 삶의 지평을 넓히라고 도전한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작은 그림으로 보지 말고, 새로운 지평의 우주적인 큰 그림으로 보라는 뜻이다. 기독교인들이 따라야 하는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는 후대에 교회지도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예수(Doctrinal Jesus)와는 180도로 다르다. 역사적 예수는 만들어지기 전의 원초적인 참 사람 예수이다. 이 예수는 온 인류가 자신만을 믿어야 하며, 타종교인들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라는 편견과 오만의 작은 그림을  가르치지 않았다. 예수의 하느님나라 소식은 오직 예수를 믿는 사람들만 구원받는다는 이분법적이고 배타적이고 우월적인 대속론이 아니라, 경계 넘어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큰 그림이다.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의미있고 믿을만한 이야기가 없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큰 그림에 대해 상상할 수 있겠는가? 즉 우주적인 큰 그림이 없다면 우리는 부족적인 작은 그림 속에서 소극적이고 편협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다. 생태신학자 토마스 베리는 인간이 살아 숨쉬고 있는 우주 이야기는 인간의 실제적인 배경과 현실이 되는 위대한 이야기라고 선언했다. 따라서 큰 그림, 우주 이야기는 인간의 생명과 삶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에 해답을 준다. 참 종교의 기능은 과학을 무시한체 사람들을 제한된 공간과 시간에 감금하기 보다, 사람들이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활짝 열어 큰 그림을 보도록 격려하고 돕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큰 그림의 우주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우주는 138억 년 전 빅뱅으로 출현했고, 첫번째 은하계가 130억년 전 형성됬다. 우리의 은하계는 80-90억 년 전 탄생했다. 46억 년 전 태양계가 형성되었고, 곧이어 45억 년 전 태양이 생겼다. 그리고 우리의 별 지구는 44 5천만 년 전 탄생했다. 40억 년 전 지구상에 최초의 세포가 탄생한 이후 생명체들의 진화는 계속되었으며, 260만 년 전 최초의 인류인 호모하빌리스가 그리고 150만 년 전 호모이렉투스가 등장했다. 20-30만년 전 아프리카 남부에서 태초의 이성적 인간, 즉 원시 호모싸피엔스가 출현했다. 참고로, 이들은 4만 년 전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18천 년 전 동굴벽화를 그렸다. 인간은 약 6천 년 전 설형문자를 발명했고, 37백 년 전 최초의 알파벳을 창조했다. 기독교의 구약성서는 우주 세계가 시작한지 약 138억 년,  지구가 출현한지 44 5천만 년, 그리고 인간이 출현하지 20만 년이 지난 후, 3천 년 전에 기록되었다.      

 

인류역사에서 이성적인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여 대화를 나누고 끊임없이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의 해답을 탐구하는 이야기들을 후세대들에게 전승했다. 오늘날 우주진화 세계관의 과학자들과 신학자들은 밝히기를, 온 인류에게 공평한 해답은 인간들이 20-30만 년 전 지구에 출현한 이야기와 138억 년의 우주진화 이야기 속에 담겨있다. 항상 이야기들 속에는 또다른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다시 말해, 우주의 역사는 우리 각 사람의 이야기 안에 담겨있다. 우리의 몸 전체를 이루고 있는 모든 세포들과 장기들을 포함한 개체들은 수십억 년의 과거를 지니고 있다. 물론 우리의 사고방식과 이야기들도 수만 년의 과거를 지니고 있다. 우리 각 사람은 이야기들 중의 한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그 아이의 어머니의 이야기이고, 아버지의 이야기의 한 부분이다. 또한 그들 가족의 이야기는 더 큰 이야기들 즉 그들이 속한 종교/사회 단체와 도시와 주()와 국가와 대륙이라는 이웃들의 이야기의 한 부분이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종교적 전통과 사회적 문명과 전체 인류의 이야기 속에 담겨져 있으며, 최종적으로 우리의 별 지구와 태양계와 은하계 넘어 우주 이야기에 포함된다.

 

밤 하늘을 보자. 우리의 별 지구가 속해 있는 은하계와 우주에 얼마나 많은 별들이 있는가? 우리의 은하계에 천억 개의 별들이 있고, 우리의 우주에 천억 개의 은하계들이 있다. 거기에다 셀수 없을 정도로 많은 또다른 우주들이 있다.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하늘은 전체 우주에 좁쌀만큼 작은 부분일뿐이다. 오늘 많은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속한 교회 밖에 다른 종교들과 교파들과 교회들에 속한 사람들과 등을 돌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만 구원받고 축복받는다는 망상에 빠져있다. 또한 외국에 살고 있는 많은 한국인 부모들은 자녀들이 반드시 한국인과 결혼해야 한다는 부족적 민족주의를 고집한다. 이 넓은 우주에 살면서도 좁은 시야의 부족적 민족적 종파적 지역적 배타적 편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헐리우드 영화 죽은 시인들의 사회”(the Dead Poets Society)를 소개하겠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어느 학교 선생이 자신의 학생들의 인생에 큰 변화를 일으킨 감동적인 이야기다.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배역으로 나오는 키팅 선생은 교실에서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마지막 수업을 마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학생 여러분, 책상 위에 올라 서십시오. 그리고 멀리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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