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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동창회 127] 코로나19 팬데믹의 지구적 위기상황에서 교회는 “자기만족”의 노예생활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4818 작성일 2021-05-07 06:39 조회수 4092

종교(religion 관계)신앙(faith 신뢰)은 그 어원이 말해주듯이 이기적인 자기만족이나 개인적인 자아도취가 아니다. 원초적으로 종교는 하느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것이다. 따라서 상호의존관계에서 서로 신뢰하는 공동체적운명을 평등하게 공유하는 그 자체가 종교이고 신앙이다. 오늘날 코로나바이러스19 팬데믹의 위기상황에서 이기적인 자기만족의 망상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개인의 권리와 자유, 종교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코로나19 방역수칙에 반대하고, 마스크착용사회적 거리두기를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교회기독교 신자들은 집단감염의 온상지가 될 수 있는 대면예배를 불법적으로 갖는다. 그러나 내가 믿는 하느님은 바이러스를 막아준다는 그들의 믿음은 지극히 이기적인 자기만족노예생활의 모습을 드러낼뿐이다. 지난 수세기 동안에 인류는 과학혁명 인식혁명이라는 위대한 과업을 성취했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인간의 새로운 의식 인간성은 성숙해지고 있다. 그러나 인류사에서 오점을 남기는 부끄러운 일들이 생존의 두려움과 죽음의 공포를 비상식적으로 극복하려는 사람들에게서 드러났다. 다시 말해 이기적인 자기만족노예화는 성차별, 인종차별, 종교차별, 성적본능차별, 어린이차별, 빈부차별, 과학과 종교의 분리, 이 세계와 다른 세계의 분리, 육체와 영혼의 분리라는 변이형(變異)으로 드러났다. 이와함께 종교의 교파주의민족주의 국가주의라는 부족주의도 자신의 안전을 위해 다른 생명들을 무시하는 자기만족변이형이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 과학시대의 우주진화 세계에서 특정 종교에 속한 사람들만 구원하는 부족적하느님은 없으며 물론 초자연적인 하느님도 없다. 다시 말해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교회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만 보호하고 치료하는 하느님은 없다. 그런 하느님은 이기적인 자기만족망상에 불과하다. 참 사람 예수는 그런 옹졸하고 부족적이고 차별적인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았다. 예수는 인간들이 높이 쌓아놓은 경계 넘어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삶 방식과 비전으로써의 하느님을 가르치고, 자신이 몸소 그 하느님 의미를 살아내었다. 그래서 예수가 죽은 후에 그의 정신을 살아내려는 사람들이 예수 공동체생명 공동체를 시작했으며,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다. 초대 교회는 이분법적이고 교리적이고 관념적믿음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런 이기적이고 자기만족믿음은 가식적이고 회칠한 무덤이라는 사실을 예수 생전에 성전종교로부터 혹독하게 체험했기 때문에 어떻게 공동체적으로 사느냐가 초대 기독교의 신학과 신앙의 핵심이 되었다.

 

오늘날 참 사람 예수 정신180도로 반대되는 교회기독교의 신학과 믿음의 최우선 목표는 이기적이고 부족적자기 구원이다. 따라서 예배와 선교와 교육의 핵심 내용은 자신이 구원받기 위한 필수조건들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신자들의 선행 봉사 희생은 첫째로 이웃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자신구원을 위한 필수조건들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함께 교육 프로그램들 중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소위 제자훈련인데, 이 훈련의 목적도 구원을 위한 필수조건들을 수행하는 훈련이다. 이들은 성서문자적으로 읽고 직역적으로 믿기 때문에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성서구절을 구원의 필수조건으로 착각한다. 그리고 비기독교인과 타종교인을 기독교로 억지로 개종시켜서 예수를 하늘에서 내려온 하느님으로 믿도록 강요한다. 결국, 예수를 믿는 목적은 자신이 죽은 후에 천국에 올라가기 위한 필수조건을 충족하는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믿음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았으며 오직 구체적에 대해서 가르치고 또한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었다. 따라서 예수가 살아있을 때에는 물론 그가 죽은 후에 처음으로 성서가 기록될 때에도 원죄론 대속론 구원론과 성서의 절대적인 권위와 교회의 권위 따위의 이분법적 교리들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예수는 자신을 하느님으로 믿으라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성서에 그런 내용이 비치는 것은 후대에 참 사람 예수 정신 왜곡되면서 필사가들이 자신이 사본에 삽입한 내용이다. 예수에 대해서 믿어야 한다는 말은 후대에 만들어진 말이다. 초대 기독교 교회 전통에서 예수는 믿어야 하는 상대적이고 객체적 존재가 아니었다. 원초적으로 기독교의 신학과 신앙의 핵심은 참 사람 예수 정신새로운 의식 인간성을 구체적으로 살아내는 것이었다. 예수천국-불신지옥이라는 상업적인 구호성서문자근본주의자들의 두려움과 공포와 이기적인 욕심에서 나온 자기만족부산물이며, 갈릴리에서 목회했던 참 사람 예수와 그의 정신을 따라서 탄생한 기독교 교회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예수에게 솔직해야 한다. 물론 성서도 왜곡하지 말고, 바르게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다시 말해 예수를 소개하는 성서를 누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왜 기록했는지 그리고 특히 오늘 현대인들이 읽고 있는 성서가 과연 원저자가 기록한 원본인지 아니면 수없이 많은 필사가들이 어떤 자료들을 수집하여 수정첨삭의 편집과정을 거쳐 창작한 수많은 사본들 중에 하나 인지에 대해서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성서의 원본은 실종되어 오늘까지 현존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성서학자들이 성서비평학을 통해서 역사적 예수가 무슨 말을 했으며 어떻게 행동했는지에 대해 탐구하는 덕분에 기독교인들은 예수성서에 대해서 솔직하고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성서는 예수의 자서전이 아니며, 자습서도 아니며 단지 사본들을 편집한 책이다. 성서  문자적으로 직역해서 믿도록 기록한 교리책이나 역사책이나 과학책이 아니다. 성서는 기록될 당시의 보편적인 문학형식인 신화 서사시를 인용하여 은유적으로 기록한 지혜서이다. 따라서 고대 성서는 현대인의 언어로 재해석해야 진실한 책이 될 수 있다.     

 

신약성서의 복음서들은 예수라고 불리우는 떠돌이 현자(sage) 가르침과 그의 삶을 중심으로 새로운 운동 시작되었던 이야기들의 모음집이다. 예수를 오늘의 사회적-종교적-정치적 환경에 비추어 재해석하면 그는 주류 종교와 사회로부터 심지어는 고향 사람들로부터 쫓겨나 길거리로 나온 노숙자였다. 따라서 예수의 목회현장은 주로 생선냄새가 물씬거리는 바닷가와 악취가 풍기는 시장터와 자연의 들판과 산위가 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예수가 말하는 하느님과 종교와 인간과 생명에 대한 의미들은 사람들이 과거에 들어보지 못했던 신선한 이야기였다.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마치 화산폭발과 지각변동이 일어나는듯한 사회개혁적선언이었다. 예수는 항상 새로운 의식 인간성을 강조하며, 기존의 종교체제와 믿음체계에 강력하게 반대했으며, 과거의 패러다임을 전복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언했다. 예수는 공정한 분배의 정의와 조건없는 사랑과 폭력없는 평화가 실현되는 이 땅 위의 하느님 나라 운동 사람들을 초청했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 대해 성차별인종차별종교차별을 하지 않았다. 특히 고대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예수의 하느님 나라 운동에 남녀가 함께 참석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물론 신약성서의 복음서는 남존여비 가부장적 전통을 드러내고 있지만, 마리아 복음서 따르면 여성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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