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진화과학의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의 일반적인 정보들을 일상생활에서 익히고 살아내는 현대인들은 영, 영혼, 성령, 하느님, 심령, 사탄, 천사는 객체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긍정적인 삶과 부정적인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문학적인 말로 인식한다. 이 모든 말들을 총괄적으로 표현하는 영(靈)이라는 것은 인간의 정신상태를 말할 뿐이며 따라서 억지로라도 믿어야만 하는 교리가 아니다. 인간이 이런 말들을 자신의 삶 속에서 창작한 이유는 인간의 연약함과 한계성 때문이다. 자아의식의 인간이 죽음을 무서워하고 생존에 대해 불안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죽음의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이에 따르는 이기적인 욕심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죽음 후에도 영원히 살고 싶은 꿈을 갖고, 육체는 죽더라도 영혼은 몸을 떠나 하늘 위 천국에 올라가 영원히 산다는 이원론과 내세론을 창작했다. 여기에 덧붙여 몸이 죽은 후 다시 살아난다는 소위 부활론 내지는 윤회론까지 창안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종교체제는 이것으로 사람들을 통제하고 탄압하고 착취하는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수단으로 악용했다. 그러나 21세기 과학시대에 육체와 영혼의 분리, 물질의 세계와 영의 세계의 분리, 세속적인 세상과 거룩한 세상의 분리, 종교의 내부와 외부의 분리, 지옥과 천국의 분리, 현세와 내세의 분리 등을 신학과 믿음의 핵심으로 맹신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망상이다. 인류사에서 이러한 이분법적 이원론이 인종차별, 종교차별, 빈부차별, 성차별, 성적본능차별의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특히 이원론적이며 내세 지향적인 교회 기독교는 차별주의와 우월주의와 황금만능주의와 성공주의와 자본주의의 꼭두각시로 전락하여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고 급속도로 죽어가고 있다.
현대인들은 138억 년의 우주진화 세계관에 근거한 생명(life)과 죽음(death)의 의미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면 두려움과 불안과 이기심에서 해방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죽음 후의 내세에 대한 망상에서 벗어나 자유해질 수 있다. 생명은 일회적이며, 죽음은 인간의 잘못도 하느님의 징벌도 아니다. 죽음은 자연의 법칙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늘 위의 초자연적인 하느님을 맹신하는 기독교인들은 죽음과 생명에 대해 이성적이고 지성적으로 솔직하지 못한 불량 믿음 때문에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죽음의 현실을 은폐하려고 한다. 불행하게도 교회 기독교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소위 이분법적 구원론과 부활론을 창작하여 뻔뻔스럽게 팔아먹고 있다. 다시 말해,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죽었다는 것을 입술로 시인해야만(믿어야만) 영생을 얻는다는 허위공식(교리)을 무작정 믿으라고 사람들을 위협하고 강요하고 있다. 원초적으로 역사적 예수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살아내려는 공동체에서 탄생한 기독교는 그런 이원론적이고 이분법적인 종교가 아니다. 더욱이 21세기 현대 기독교는 이러한 이원론적 분리와 차별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절대적으로 맹신하는 삼층 세계관의 종교가 될 수 없다. 인간 예수의 기독교는 생명은 일회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지금 여기에서, 순간순간 영원함을 살아내며,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개체들이 따로따로 분리되지 않고 통합하여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현세에서 참된 인간으로 사람답게 살아가는 생명과 삶의 종교이다.
21세기 우주진화 세계관의 시대에 육체와 분리된 불멸의 영혼을 맹신하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비현실적인 유치한 짓이다. 그런 믿음은 단지 개인적이고 부족적인 꿈에 불과하다. 오늘날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는 이원론은 인류사회를 분열시키는 위험한 요소가 되고 있으며, 인간의 밝은 미래에 큰 장애물이 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현대 과학과 전통적인 고대 종교의 두 진영은 인간에 대해 서로 다른 정의와 해석을 내린다. 고대 종교는 초자연적인 하느님이 미리 설계한대로 세계와 생명체를 창조했으며,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나약하고 더러운 죄인이기 때문에 하느님 없이 선할 수 없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없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138억 년의 우주진화 이야기를 인식한 현대인들이 발견한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태초에 인간은 완성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원초적으로 인간의 조상은 바다의 물고기였으며, 물고기가 진화하여 육상으로 올라와 동물이 되었고, 동물이 진화하여 원시 인간이 출현했다. 따라서 인간 뇌는 물고기의 단순한 뇌에서 유래되어 원시적인 본능의 파충류 뇌와 모성애의 본능을 지닌 고포유류 뇌와 신포유류 뇌 그리고 가장 뒤늦게 호모 사피엔스 현생인류의 대뇌(피질)로 진화되었다. 다시 말해, 뇌는 인간의 본성이다. 뇌에서 인간은 세계의 큰 그림을 그리고 세계관을 창조했으며, 우주진화 역사를 인식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의 뇌는 우주세계이다.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는 현대과학의 뇌과학과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에 대해 육체와 영혼은 분리될 수 없다. 또한 현대 철학과 사상은 인간의 몸과 마음을 하나로 본다. 그러나 아직도 삼층천의 세계관을 떠나 보내지 못하고 있는 이원론적 종교인들에게 물질적 육체는 소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불결하고 오직 영혼만이 진실하며 불멸한다고 맹신한다. 따라서 그들의 내세적 믿음은 실제적인 현실 세계를 폄하하고 부정하며 죽음 후에 영은 몸을 빠져나가 이 세계를 버리고 다른 세계로 이주한다는 망상에 빠져있다. 인류학에 따르면 고대 원시인들은 육체적인 측면과 정신적인 측면이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통합체임을 인정하였다. 또한 고대 이집트인들은 몸과 영혼을 하나로 간주했다. 마음은 몸을 통해 발견되고, 몸은 마음을 통해 발견된다. 몸과 마음은 모델로서는 인정될 수 있으나, 독립적인 실체는 될 수 없다.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 아니며 몸과 마음이 하나이듯이, 인간과 우주도 하나이다. 다시 말해, 몸(육체) 자체가 이른바 마음(영혼)의 원리를 반영하고 있다. 육체의 내부에서 영혼을 발견할 별도의 공간은 없다. 육체와 영혼은 별개의 존재가 아니다. 영혼이란 육체의 근원적인 작용과 관련되어 있는 몸의 현상이다. 금세기 초에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세계대전들도 인간을 단순히 물질 혹은 자원, 화력 따위로 보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현대에 심각한 문제가 되는 인종차별, 성차별, 성적본능차별, 아동학대, 빈부차별, 경제적 불평등 등의 주요 원인은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이라는 원초적인 성서의 인도주의(Humanism)가 결여된 데서 기인한 것이다. 인류의 밝은 미래를 위해 우리는 진화 과학에 근거하여 전통적인 종교를 재해석하여 인간의 본성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
인간은 태어나고 성장하고 살면서 환경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으며, 정체성이 형성된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학문이며 오늘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의 기초가 되고 있다. 우리는 파충류 뇌와 구포유류 뇌와 신포유류 뇌와 인간 뇌의 모든 심리적 유인(誘因)들을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다. 이것들은 진화과정에서 유전으로 전해져 내려온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태초로부터 누군가 미리 설계한대로 완전하게 만들어진 생명체가 아니라, 장구한 세월 속에서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진화해왔으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진화과정은 계속될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고, 무능력하고, 자율성이 없고, 스스로 선할 수 없다는 고대 믿음체계의 이원론적 신학은 불량신학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마음(심리 Mind)을 진화론적 시각에서 이해하려는 학문이다. 특히, 진화심리학은 인간 뇌가 다양한 기능적 구조를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뇌의 기능적 구조는 자연선택에 의해 진화된 심리학적 적응 혹은 심리기제(機制 –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작용이나 원리)라고 불린다. 예를 들자면, 인간의 시각, 청각, 기억, 운동 제어 등은 뇌의 기능적 구조의 작용이다. 진화심리학이 답을 알아내려고 추구하는 핵심적인 질문들은 다음의 세 가지가 있다: (1) 왜 마음은 이렇게 진화되었을까? 즉, 인간의 마음은 어떤 원인결과 과정을 통해 현재의 형태로 진화되었는가? (2) 구성요소들의 기능과 조직 구조는 무엇인가? 즉, 마음은 어떤 일을 하도록 진화되었는가? (3) 현재 환경의 입력은 마음의 진화와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관찰 가능한 행동을 낳는가?
따라서 진화심리학자들은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동등하게 취급하고, 환경으로 인해 유전자가 어떻게 발현되는지 다시 말해, 유전과 환경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또한 인간 뇌의 작용인 마음은 고대로부터 수렵-
“영”(spirit)은 하느님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유독 기독교에서 영을 하느님에게 속한 독점물로 취급하며 하느님이 통제하고 조정하는 객체적 존재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spirit과 관련해서 soul도 객체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모습 곧 인간의 온전함과 온전한 인간됨의 문학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즉 spirit과 soul은 지금 여기에서 살아 숨쉬고 움직이는 인간에 대한 문학적인 표현입니다. 인간의 몸(뇌)이 죽으면 영과 혼도 없습니다. 영과 혼의 존재를 믿는 것이 종교인의 신앙이 아닙니다.
“영적”(spiritual)이란 말은 하느님에게 충성하고 순종하는 교리적 믿음에 대한 말이 아닙니다. 오늘날 전통적인 종교 밖의 현대인들은 “영적이란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간혹 이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의식이 살아있는 사람” 또는 “인간성이 되어 있는 사람”에 대해 사용합니다.
죽은 몸(뇌)을 떠난 영(혼)은 신경세포가 없기 때문에 산 송장이나 다름없습니다. 지옥천당은 존재하지도 않지만, 산 송장들이 모인 곳도 아닙니다. 결국 몸을 떠난 신경세포 없는 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종교인들이 죽음 후에도 영원히 살고 싶은 욕망 때문에 개인적이고 “사적”으로 염원하는 꿈에 불과합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 없는 종교” “내세적인 믿음 없는 종교”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의 지구적 위기상황에서 그런 종교와 믿음은 우리에게 해롭고 위험합니다.
그런데 이제 (전에도 언급만 하셨지만) 뇌과학이니 진화심리학 말씀을 하시니 지난 오류를 반복하시지 않으려면 구체적으로 누가 어떻게 무엇을 왜 종교를 말하였는지 알려 주시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선언적인 글은 한 번 정도로 족하다고 보구요. 이런바 뇌과학자들은 종교를 어떻게 말하는지, 진화심리학자들은 종교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그리고 심리학과 핵심적으로 연관되는 인지과학자들은 종교를 어떻게 말하는지 설명해 주시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여기서 쌈박질할 필요가 거의 없을 것 같아요. 이를테면 늘봄님이 인용하셨는데 여기서 사라진 파스칼 보이어의 종교론을 잘 정리해 주셔도 독자들이 엄청 appriciate 할 것 같아요. 위에 여전히 언급된 David Sloan Wilson의 종교론도 정리해 주시면 금상첨화일 것 같아요. 그런데 진화심리학자들의 종교론 목록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에드워드 윌슨은 진화심리학에 큰 영향을 미쳤으니까 예외로 하죠.
마지막으로, 로얄 루의 종교론은 도킨스의 종교론과 배치됩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에서 말씀이죠.
전에 제가 언급한 보스튼 대학의 종교학자 Stephen Prothero도 그의 책 [God is not One]에서 New Atheism을 기능론적 접근에서 보자면 종교의 일종이라고 해요. 그러니 이런 무신론적 협회도 종교학의 연구의 대상이죠. 제가 그랬잖아요. 피자 숭배도 종교일 수 있어요. 영화 스타워즈 씨리즈 땜에 영국에만 수십만 팔로워가 있었다고 해요. 당시를 돌아보면 거의 종교에 가까웠어요. 수많은 종교가 생성/소멸되죠. 1960년대의 신의 죽음의 신학도 시대를 풍미한 듯 하지만 몇년 전 알타이저의 사망 후 거의 언급되지 않아요. 사상은 유행하지만 공동체는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개인적 영성활동도 기능적인 면에서 당연히 종교활동에 들어가지만 운동이나 공동체로 발전되지 않으면 단명합니다. 이건 신종교운동에 대해서 좀 배운 학도로서 말씀드린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