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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21세기 12] 예수는 “하느님”이 아니었다! 더욱이 “유신론적 신자”도 아니었다! 다만 세속적인 세상에서 참된 인간으로 평등과 정의를 살아낸 “무신론적 삶의 실천가”였다!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5957 작성일 2022-04-01 06:04 조회수 3647

유신론적 믿음의 신자와 무신론적 삶의 실천가는 하늘과 땅의 큰 차이가 있다. “신자는 인간과 분리된 외부의 초자연적인 신의 존재와 그런 신이 인간의 삶에 개입하여 기적을 일으킨다는 것을 보상심리로 믿는 사람이고, “실천가는 그런 신을 믿지 않고 그보다 인간존엄성 곧 자율성과 창조성과 잠재력을 더 소중하게 여기며 사심없이 구체적으로 살아내는 사람이다. 21세기에 그런 초자연적인 신을 믿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대단히 이기적인 부족주의의 망상이 아닐 수 없다. 현대 기독교인들이 성서예수에게 솔직해야만 하는 것은, 역사적 예수는 하늘 위의 하느님을 믿는 유신론적 신자가 아니라 새로운 의식 인간성을 온전히 살아낸 무신론적 실천가였다는 사실이다. 기독교인들은 1700년 전에 교회가 상업적으로 만든 하느님 예수를 수동적으로 무작정 따르는지, 아니면 이분법적 교리로 더덕더덕 덧칠하지 않은 순수한 참 사람 예수 자율적으로 따르는지에 대해 이성적으로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 누구였고, 무엇을 가르쳤고,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 예수 비유 명확하게 밝혀준다. 무엇보다도 기독교인들은 성서솔직하면, 다시 말해 문자적으로 읽지 않고 직역적으로 믿지 않으면, 예수 비유에서 그의 새로운 의식 인간성 인식할 있다. 예수 관념적이고 교리적이고 내세적인 믿음 신자 아니었다. 물론 예수는 하느님도 아니었다.  예수 거룩한 성전에서 자신의 하느님 나라 비전 가르치지 않았으며 오히려 성전 사람들의 가식과 거짓과 은폐를 칠한 무덤이라고 비판했다. 예수 이분법적이 차별적이고 부족적인 인격신론 불량신학 가장 싫어했다. 예수 우주적이고 통합적 구체적으로 살아내는 것이 하느님 나라에서 사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따라서 예수 하느님 하느님 나라 의미 가르치고 살아내는 세속적인 삶의 현장을 택했으며, 종교체제성전과 먼 거리를 두고 멀리했다. 예수 들과 산에서, 장터에서, 바닷가에서 사람들을 만났으며, 그곳에서 사람들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며 하느님의미 자유 분망하게 살아 내였다. 예수 행동에는 종교적이고 인종적인 경계 없었다. 성서 저자들은 예수 하느님 나라 증거하기 위해서 그의 비유들을 소개했다. 예수 비유 성서문자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이 맹신하는 기복적이고 부족적인 믿음 대한 설교예화 아니라, 현세적 하느님 나라 건설 대한 도전장이다.

 

성서에 기록된 예수 비유는 대단히 짧으며 단지 줄거리만 요약한 것이다. 1세기 예수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전통과 상황에 대한 역사적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예수는 사람들과 자신의 비유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며 어떤 사람은 예수의 이야기에 동조하기도 하고 반대하기도 하고, 예수는 논평하기도 하고 토론하기도 하면서 청중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현대 기독교인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 비유는 형이상학적이고 내세적인 믿음에 대한 교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지극히 현세적이고 세속적인 세상에 건설해야 할 하느님 나라를 촉구하는 이야기이다. 예수의 모든 비유는 하느님 나라 비전에 대한 것이며, 그 나라는 어떤 것이며, 그 나라에서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살아가야 할 방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는 사람들에게 구약성서를 문자적으로 읽고 직역적으로 믿는 성경공부를 인도하지 않았다. 예수는 성전종교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인간 존엄성을 하찮은 것으로 폄하하는 성서문자근본주의 신앙을 철저히 반대했다. 원초적으로 성서 저자들은 성서를 문자적으로 기록하지 않았으며, 고대 사회의 문학형식인 은유법을 사용하여 인간의 궁극적인 체험을 신화적이고 시적으로 표현했다. 그들은 성서를 자서전이나 역사책이나 과학책이나 법전으로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유대교와 기독교의 종교체제는 성서를 왜곡하고, 사람들을 통제하고 조정하는 상업적이고 정치적인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성서는 하느님에 대한 책이 아니라 인간 온전함에 대한 책이다.      

 

예수의 가르침의 주요 방식이었던 비유는 단지 종교나 신학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에 관한 토론의 장이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은 현세적이 세계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온전하고 참되게 사느냐에 대한 문제였다. 예수의 모든 비유들은 제국주의 지배와 식민지의 체제적 불의에 굴종하지 않고 항거하는 의식을 사람들 가슴 속에 불러 일으켰다. 다시 말해 비유들은 귀족과 농민의 서로 다른 운명 그리고 가난과 적빈의 엄연한 차이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예수는 빈부차별, 성차별, 인종차별, 종교차별이라는 불평등 불의를 철저히 반대하고, 민중들에게 항거하도록 도전했다. 예수비유구조적인 불의에 억눌려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용기을 불러일으켰다. 비유는 청중을 움직여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하도록 도전했다. 예수비유를 통해서 선포되는 하느님 나라 비전, 하느님이 인간을 수동적인 꼭두각시로 만들어 지배하기보다는 인간이 새로운 의식과 인간성을 인식함으로써 원초적인 자율성과 창조성을 회복하고 참된 인간으로 사람 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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