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달아 글을 올려서 죄송합니다. 저도 이제 일하러 가봐야겠습니다. 일이 산더미라-- 아프리카 올림
Pioneer님의 글을 보면, 참 토론하기 쉽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반론이 나오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이고, 비판이 나오면 성공하지 못한자들의 심성이 비뚤어진 질투 때문이라고 하면 되니까요. 제가 pioneer님과 토론할 때, 시골 교장 선생님같다, 초딩같다고 했는데, 이런 labeling을 너그러이 받아 주시는 것을 보니, pioneer님은 너그러운 분이신 것 같습니다. 제가 실례가 많았습니다.
전자에 “시골” 이라는 형용사를 붙인 것은 우직하지만 자기 의무를 옳 다고 충실히 수행하는 분을 상징합니다. 위에서 지시 사항이 하달되면 마치 대통령이 한 명령처럼 전달받아 실천에 옮기는 분을 연상했는데요. 사실 기존보수 사회를 지탱하는데 이런 분도 중요할 수 있지요. 초딩같다는 것은 저의 경험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저의 고향은 산골이라 저는 유치원 같은 것이 있는지도 몰랐고, 국민학교 1학년 입학식 하루 전날 저의 누나가 이름을 쓸 줄 알고 입학해야 된다고 해서 밤늦게까지 제 이름 석자를 연습했는데, 그 때 처음으로 공부하는 것이 장난이 아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입학해서 배운 첫 노래가 박정희의 시월유신 찬양하는 “시월의 유신은 김유신과 같아서…어쩌고 저쩌고” 하는 노래였습니다. 시골이라 테레비가 있는 집이 거의 없고 유치원 유자도 모르는 제가 노래를 배웠으니 매일 길거리를 걸으면서 그 노래를 신나게 부르곤 하였지요. 아마도 pioneer님께서는 당시 고딩이나 대딩이 아니었을까 짐작은 되는데, 님의 그러한 단선적 보수적 세계관을 형성한 사회적 요소가 무엇일까 상상도 해 봅니다.
제가 이렇게 에피소드를 말씀드리는 이유는 우리가 당연히 생각하고 받아드리는 국가 (nation-state)나 애국심이라는 것이 사실은 이미 확립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거나 구성된다 (invented or constructed)는 것입니다. pioneer님께서 건축도 하셨다고 하니 구축된다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국가 (nation)라는 개념을 갖게 된 것은 서구의 근대성의 영향입니다. 그 이 전에는 서구에서도 국가 개념이 희박했고, 아시아나 아프리카와 같은 식민지 국가는 식민지 경험을 통해서 민족 정체성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조선만 해도 한참 소중화론에 빠져서, 이미 망한 명나라를 이상화된 공동체 (imagined community)로 구성한 골빈 성리학자들이 많았습니다. 일제의 강점을 경험하고, 청일 전쟁, 러일전쟁 보면서 눈이 번쩍 뜬 소수가 있었을 뿐입니다.
거기에다가 국가 (state)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삼국시대도 있었고, 땅이 절반밖에 안된 고려시대도 있었고, 조선에 이르러야 현재의 지도에 구색을 갖추었고, 실은 청과 조선의 국경이 그렇게 선명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 대표적 예가 간도 지역 아닙니까? 그래서 정부의 행정이 실천되는 국가 (state)와 좀더 광의의 추상적인 개념인 국가 (nation)을 구분하기도 합니다. 즉 우리가 갖는 민족주의 (nationalism; 국가주의로 번역하기도 하는 것 같지만, 저는 정치학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렇겠지만 민족주의란 개념이 더 적합할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가 현실 국가와 꼭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유대인처럼 수 천년 동안 국가가 없다가 시온주의의 영향으로 이스라엘을 세운 그런 상상된 국가도 있질 않습니까?
그러므로 도대체 국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는 역사적인 존재라 한국사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이성계가 위화도를 회군했거나 신유학의 정치이념을 가진 정도전과 그의 일파가 조선혁명을 일으켰는데, 이것을 부인해도 그것은 이미 역사적 과거가 되었고, 박정희같이 친일의 첨병을 걷던 이가 다시 뽈갱이 짓하다가, 또 다시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나라를 파시스트 또는 전체주의적 국가를 만들어 온통 반공을 국시로 삼아 인권유린을 일삼은 이 쿠데타 정부의 역사를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그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정리하는 것은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다시 평가할 이유가 많은 김재규의 박정희 시해 이후 민주화의 여력에 찬물을 끼얹고 나타난 전두환이라는 자는 할 술 더 떠서 민주 인사를 감옥에 처넣고 광주에 탱크를 몰고 가게 해서 무고한 시민들을 총칼로 죽였습니다. 이 과거는 단순히 고정된 과거가 아니라 묻혀진 사실을 계속 밝히고 다시 해석해야 할 현재 진행형인 “역사적 기억”을 간직하며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애국은 무엇일가요?
애국이란 우리가 어떤 준칙을 갖고 이해하고 실천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애국심에 대한 정의는 그런 애국심을 발휘하는 사람들의 참여와 활동에 의해서 달리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만일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면, 정부의 선전에 따라 그냥 정부가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 애국이라는 해괴망측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 인사들을 매국으로 몰아넣은 프로파갠다가 바로 그런 짓거리죠. 또 예를 들면, 재작년 불타 올랐던 촛불시위를 통해서 불도우저로 몰아부치는 (일명 삽질하기) 이명박 정부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애국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가가 개인의 인권과 존엄을 함부로 유린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 정부는 이미 정부의 자격이 없으니 민주화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애국이 아니겠습니까? 돈은 돌고 도는 것입니다. 돈만으로 국격을 살 수는 없지요.
이념도 영원하질 않습니다. 한때 “중공”이라는 중국은 남한과 가장 중요한 경제적 교역국이 되었으며, “북괴”는 “북한”이나 “북조선”이 되었으며, 월남이 패망해서 이 나라는 영원히 공산주의 국가가 되어 남한과의 교류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이른바 한류의 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공산주의 수괴로 알고 있는 베트남의 민족해방의 영웅 호치민 선생은 지금도 13세기의 베트남 민족의 영웅인 Tran Hung Dao와 더불어 베트남인의 가슴에 깊이 살아 부활하고 있습니다. 이런 빛나는 투쟁사의 베트남이 세계의 주역이 될 수 있고, 한 때 장개석 정부를 몰아낸 중공은 곧 미국 경제 규모를 넘어선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2천년-2천 5백년의 유대인의 흩어짐 (diaspora)이 유대인의 종말은 아니었습니다. 세계 제국이었던 로마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은 이제 사라지고 없습니다. 여러 왕조의 합종연횡 이었던 유럽은 민족주의의 등장으로 갈갈이 나눠졌다가 다시 EC로 연합했습니다.
저는 한국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한국이 이제 돈만 아는 나라가 아니라 이주 노동자의 인권을 존중하며, 약한자와 가난한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삼으며, 가난한 나라를 돕는 그런 나라가 되길 바랍니다. 졸부국가가 되며, 국격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한쪽에서는 미디어법이나 만들어 언론제벌 힘이나 실어주고, 삼성처럼 힘있고 빽줄쎄고 돈많다고 금방 풀어주는 그런 나라를 원치 않습니다.
게다가 이민자 2-3세가 되면 이미 그들은 이민자 1세대가 경험하는 그런 역사적 경험과 기억을 전혀 갖고 있질 않습니다. Korean-Canadians가 한국이라는 nation-state를 사랑한다면 어떤 면에서 그래야 하나요? 삼성 제품 쓴다고 자랑스러워 하기보다는 한국이 인권을 존중하며, 다른 나라에 도움을 주며, 또 바른 정의를 실천하는 그런 나라를 더 좋아하지 않을까요? 듣도보도 못한 “국격”이라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하지 말고,빵꾸똥꾸 같은 씨잘데없는 헛소리 하지 말고, 최소한 국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런 통치자를 꾸짖어 만들어야 하지 않나요? 국격이라는 말이 성립된다면 돈많이 벌었다고 으시대지 말고 남의 아픔을 돌아보고 돌아볼 줄 아는 교양있는 국민이 다수가 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아래에 pioneer님께서 이런 글 쓰는 사람 정체를 밝혀라고 하셨는데, 문자를 쓴다면 저의 사회철학은 바로 이것입니다. 약자나 강자나, 돈많은 이나 없는 이가 서로 포옹할 수 있는 사랑과 정의가 포옹하는 그런 날을 꿈꾸는 (until justice and love embrace), 즉 바른 인간성이 구현되는 날을 기다리며…
아프리카 올림










그리고 긴 글은 나쁜 글이라 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