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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이민 2세들의 "소란한 탈출"을 염려하면서. . .
작성자 늘봄     게시물번호 10786 작성일 2018-04-06 09:33 조회수 1698
이번 주 씨엔드림 신문에서 이민 2세들의 교회로부터 "조용한 탈출"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저의 목회경험으로 보아 이것은 "조용한 탈츨"이 아니라, 대단히 소란한 탈출입니다. 

제가 10년간 서양교회에서, 10년간 한인교회에서 직접 체험한 2세들의 탈출현상은 한인사회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독교 교회들의 노령화는 전 세계적으로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소란한 탈출"의 가장 큰 원인은 교회가 젊은 세대들을 포용할 수 있을만큼 그릇이 크지 못합니다. 예를 들자면, 교회는 고대인들의 삼층 세계관을 고집하면서, 젊은이들에게 과학이 발견한 우주진화 세계관은 거짓말이며 가짜이며, 초자연적인 하느님만이 절대적인 권위와 능력이 있다고 억지 부리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거기에다 교회 나오지 않으면 죽은 후에 지옥에 떨어지고, 오늘 불행한 일을 당하는 하느님의 진노가 있을 것이라고 위협하기 때문에 이러한 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교회를 떠납니다. 

이밖에도 많은 원인들이 있지만, 성공회 신부인 존 쉘비 스퐁의 말대로, 교회는 변하지 않으면 죽고 맙니다. 

가장 먼저 한인교회 1세들은 스스로 거듭나고 변화되어야 2세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습니다. 보따리 신앙을 아낌없이 버려야 합니다. 경건하체 하는 위선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을 탈피해야 합니다. 1세들은 생존의 두려움과 부족적 이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2세들에게 민족주의를 가르치기 보다 세계시민으로 살아가는 길을 가르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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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san1  |  2018-04-06 10:42     

쓰신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민 2세인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신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아주 어릴때 한국교회를 몇년 다녔고, 이민와서는 서양교회를 35년 다니고 있습니다.
사이사이에 잠깐씩 한인교회에도 다녀봤고요. 요즘 한 1년 반은, 35년 다니던 서양교회도 부정규적으로 다니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하신 대로 교회가 새로운 긍정적인 변화를 꺼려하고 거부합니다. 경건한 척 하면서 너무 위선적이고 권위적입니다. 저희보고는 세상적인 돈, 명예, 권력 다 필요없다고, 영적인 것만 추구하라고 하면서, 본인들은 정 반대의 행동과 삺을 살고 있습니다. 너무 싫습니다. 자신들의 privilege와 status quo 를 지켜나가기 위해 거짓말도 합니다. 얼굴도 두껍고, 창피한 줄도 모릅니다.
요즘은 조용히 성경이나 읽고, 훌륭하신 목사님들이나 모범이 되시는 삶을 살아 오신 분들의 글을 매일 시간내서 집에서 읽고 영적인 면과 신앙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어쩌다 가서 헌금이나 내고 오고요. 교회사람들이 저희가 아쉬운 소리 안하고 여러모로 작게나마 도움을 드리고, 나름대로 나이를 먹어 가면서, 신을 믿는 사람으로서 신실, 성실하고 열심인 삶을 살려고 노력하니 계속 귀찮게 괴롭히면서, 제 개인과 가족의 생계와 기본 삶을 방해하는 정도의 완전 harass 까지 하는 정도였습니다.
강경하게 선을 그었더니 조금 그냥 놔두더라고요.
물론 많은 훌륭한 신앙인들도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완벽한 사람과 신앙인 없습니다. 저와 제 가족도 불완전하고 약점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쪼금씩 앞으로 발전해 나가는 긍정적인 변화를 하지 않고, 고인 물로써 머물고 썩을때 악취가 심하게 나고, 결국은 망하고 맙니다. 항상 온고지신을 기억하고 좋은 변화를 수용하려고 항상 노력해야 합니다. 온고지신을 항상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써주신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봄  |  2018-04-06 11:05     

저의 생각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8-04-06 18:33     

위에 늘봄님이 언급하신 것은 삼층세계관의 문제가 아니라 다문화의 문제입니다.

캐나다의 다문화 정책은 문화적 모자이크를 기반한 다양한 색의 조합이고 미국의 경우는 주류문화에 소수 문화가 용광로에 들어와 녹아들어가는 기조를 깔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껑을 열고 보니 미국의 경우는 흑인사회라는 어마어마한 게토가 있어서 용광로는 아닌 것 같구요. 캐나다는 아직 특정 종교나 소수민족이 가시적이지 않아서 모자이크라기 보다는 용광로에 가깝습니다. 앞으로 무슬림, 힌두, 그리고 가톨릭 필리핀 인구가 늘면 다른 이야기가 되죠. 글자 그대로 모자이크 사회가 될 것입니다.

캐나다 다문화 사회에서 소수민족공동체의 규모가 적지만, 이민공동체는 이민 1세대와 2세대가 주류문화로 전이해 가는데 심리적, 물질적, 문화적 resources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한국 교민사회의 경우, 캐나다와 미국을 막론하고 한인사회는 주류사회에 비교해서 압도적으로 기독교인 비율이 높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기독교문화에 기반한 북미에서 또 기독교 enclave를 형성하는 교민교회가 그런 중간 역할을 잘 한다는 것이죠. 오래 전에 이 게시판에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민사회에서 한국문화를 그나마 보존하는 곳은 교회입니다. 이것은 긍정적 부정적 평가와 상관없는 실재입니다.

한인교회는 중간 기착지지 최종역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민2세대가 주류문화로 진입해 가는 과정에서 자기 정체성을 가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민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의 문제는 이민 2세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민 1세대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비록 이민 1세대가 한국문화의 기억을 압도적으로 갖고 있지만 여전히 여기 오래 산 사람들은 Hyphenated Canadian로서의 도전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하이퍼네이트라는 것은 Korean-Canadian이라는 말처럼 완전히 한국인도 아니고 완전히 캐나다인도 아니라는 어중간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을 liminal situation이라고 합니다. 이민 2세대는 이런 어중간한 상태를 더 심각하게 느낄 것입니다. 비록 한인교회가 있지만, 영어목회나 주류 캐나다 문화를 이어줄 씨니어들이라는 resources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민 2세대들이 혼란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에 더하여 inter-marriage 가 가속되면 한인사회 일반 뿐아니라 교회 역시 심각한 쇠퇴를 겪을 것입니다.

이 문제가 심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한인이민자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어가 주 언어로 사용되는 한인사회나 한인 교회는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이민자가 끊임없이 유입되지 않으면 축소될 수 밖에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캐나다에서의 한인이민사회는 일본의 사례를 따라갈 것입니다. 레쓰브릿지에 제법 큰 일본인 공동체가 있었는데 일본이민자가 거의 없고 세대를 거듭하면서 불교가 주류인 일본인 사회에서 조차 불교법당의 문을 닫았고 캐나다 연합교회소속 일본연합교회도 몇 노인만 남고 문을 닫을 상태에 있습니다. 앞으로 몇 세대가 지나면 한인사회도 그럴 것입니다.

한인사회와 상관없이 세대별로 캐나다 종교인의 비유을 보면, 주류교회보다 보수복음주의교회의 교인의 나이가 젊고, 무슬림들이 가장 젊습니다. 캐나다에서 보수복음주의의 비율이 적었던 것은 장로교회, 회중교회, 감리교회를 합쳐서 형성된 연합교회와 성공회, 중도적 침례교회가 주류를 형성한 상태에서 빛을 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세기말 캐나다 보수복음주의 비율은 8%였는데 2011년 11%로 교두보를 형성했습니다. 주류교회는 1931년 48%를 형성했다가 2011년에 15%로 추락했습니다. 이슬람의 경우, 캐나다 전체 인구 중 무슬림 인구는 1981년에 0.4 %, 2011년에 2%가 되었는데 앞으로도 계속 늘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이렇게 무슬림, 시크, 힌두 이민자가 늘면서 캐나다는 앞으로 기독교 단독 문화를 형성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다문화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이상적인 공동체는 어쩌면 단일문화입니다. 하지만 다문화사회가 부정할 수 없는 실재, 즉 현실이라면 우리는 단일문화의 경계를 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 경계는 문화적 차이, 종교적 차이, 언어적 차이의 경계입니다. 그 경계선을 넘는 것은 쉽지는 않지만 신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저는 제 생각을 이해해주는 것도 고맙지만 제 글에 딴지걸고, 말꼬리잡고, 토론해 주는 글들에 고마움을 깊이 느낍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8-04-06 22:22     

용산님, 그냥 궁금해서 그런데요. 님께서 가끔 가시는 서양인 교회라면 어떤 종류의 교회인가요? 짐작컨대, 보수복음주의적인 교회에 다니신 것 같은데요. 그러면 서양인 교회나 한인교회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캘거리의 연합교회 중 힐허스트 연합교회라고 있는데 동성애 인정 등 여러모로 진보적이며 상당히 성공적이고 활발합니다. 아래 링크 참조하시구요. 거기 John Pentland (Lead Minister) 목사는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그분의 세미나에 참석한 적 있고 이 교회에 가 본 적도 있습니다. 홈페이지 들어가 보시면 무지개 빛 로고가 나오는데 성적 소수자를 받아들이는 affirming church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성적 소수자는 누구든지 부담없이 참여할 수 있는 교회, 즉 환영한다는 의미죠. https://www.hillhurstunited.com/

그리고 용산님께서 "훌륭하신 목사님들"의 글이 어떤 것인지 그분들이 누군지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저는 보수복음주의나 진보적인 분들을 좀 알거든요.

저는 보수교회를 존중하지만 제가 보수복음주의자가 될 가능성은 0%입니다.

yongsan1  |  2018-04-06 23:43     

내사랑아프리카님, 좀 더 넓고, 깊이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 성소수자나, 옹호 이런 소셜 이슈라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너무나 평범한 신자이며, 평범한 사람입니다. 또한 인종이나 문화적인 정체성에 대해서는 국제화된 성숙한 한 세계 시민이며, 또한 한국인으로서 뿌리를 아는 안정된 자아의식과 관용성을 겸비한 사람이라고 자랑스럽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보수, 진보 이런 교회의 구분없이, 교회의 복음을 중심으로한 순수한 영성과 신앙 실천에 관한 너무나도 근원적인 이슈에 관한 저의 기대치와 경험입니다. 넘 그렇게 좁게, 한 사람의 코멘트에 신경쓰지 마시고, 단 한문제인 동성애 이런거 물어 보실 필요없고요, 기독교 신앙과 실천의 근원적이고 전체적인 문제에 대한 의견이었습니다. 전 두루두루 교파나 종교에 상관없이 여러분들의 말씀을 들어보는 편입니다. 너무 문화와 성문제 쪽으로만 치우쳐서 본인의 관점을 표명하신 것 같습니다. 전 내사랑 아프리카님의 의견도 읽고 다른 여러 면으로 생각을 해 보는 중입니다. 제 한 사람 의견과 경험에 넘 신경쓰시며 bother 하시지 마시고, 행복하고 즐겁게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8-04-07 02:50     

나이테가 있어서 나무의 나이를 알 수 있고 껍질에도 바람과 서리라는 풍상을 읽어낼 수 있듯, 우리가 쓰는 단어 하나 하나에도 우리의 삶의 마디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납니다. 그 글에는 자기만의 혼잣말도 있고, 특정 지역의 사상적 사투리도 있고, 재야의 언어도 있습니다. 용산님의 글에도 그런 흔적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용산님, 답글 감사합니다.

늘봄  |  2018-04-07 07:30     

한인 이민 2세들이 교회를 떠나고, 떠난 젊은이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지 않고 있는 교회기독교는 마치 양로원처럼 하얀 머리의 노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물론 이 노인들은 아직 재정적인 힘이 있어 교회가 생존하고 있지만, 이런 교회들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이성적으로 이미 죽은 상태입니다.

특히 과학과 종교,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는 노인들의 교회는 설득력과 영향력을 잃고 사회에서 발디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2세들은 무엇을 믿는 교회, 무작정 믿어야 하는 교회, 내세지향적인 교회, 과학을 무시하는 원시적인 교회에 식상해서 떠났습니다. 또한 다양한 언어들과 문화들 속에서 마음껏 자유분망하게 사는 젊은이들은 좁은 우물 안에 갇혀 명령에 순종하며 엄마 치마폭에 감싸여 숨쉬고 살 수 없어 넓은 세상을 향해 교회를 떠났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우주진화 세계관에 기초한 새로운 기독교, 새로운 교회, 새로운 하나님의 의미, 새로운 신앙 만이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교리를 암송하고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관념적인 믿음을 버리고, 지금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실천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교회가 젊은이들을 포용할 수 있습니다.

Utata  |  2018-04-07 08:19     

어떤 사람의 인격을 보면, 그 사람의 과거를 알 수 있단 말이시군요.

아이러니 하게 거울앞에 지금 추한 모습을 보면서,
미래 모습 또한 뻔히 보이는가 보죠.

어떤 선배님이 저에게 하신 말씀이 기억나네요.
"가식으로라도 열심히 선한척을 하면, 언젠가는 그게 인격이 된다고요."

저도 거울 앞모습이 추하지만, 어색하게 인자한척 꾸밉니다.
언젠가 인격으로 변할때 까지요.

yongsan1  |  2018-04-07 08:43     

Utata 선배님께서 하신 말씀 "가식으로라도 열심히 선한척을 하면, 언젠가는 그게 인격이 된다고요."
이 말씀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이 말씀을 저희 가족들에게도 전해주고, 명심하고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분들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즐겁게 생활하시기 바랍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8-04-07 11:16     

늘봄님, 댓글 감사합니다. 누구한테 했는지는 모르지만요. 제가 누누히 말씀드렸지만, 늘봄님의 dogmatism (이것은 신학적 의미가 아니라 사회과학자들이 사용할 때의 의미)이 실재에 대한 바른 이해를 압도하다보니, 사태를 제대로 못보시는 것 같습니다.

“지적 정직성” (Intellectual honesty)라는 말은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종교적, 철학적, 신학적, 인종적, 문화적 편견을 극복하고 사태 자체를 객관적으로 본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다른 포스트에서 스티븐 프로쎄로 이야기 했듯이, 신학자들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이런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겁니다. 제가 하비 콕스를 찬양한 것은 그가 신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지적 왜곡에 잘 빠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의 유명한 [Fire from Heaven: The Rise of Pentecostal Spirituality and the Reshaping of Religion in the Twenty-First Century]은 신학자의 책이긴 하지만 종교학 과목에서 교과서로 사용될 정도로 “지적으로 정직한”(intellectually honest) 책입니다. 즉 그의 진보적 신학 이념이 근본주의와 오순절 현상을 이해하는데 압도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님께서 옛날에 비교종교학 공부를 하셨다고 했지만, 제가 아니라고 했었죠? 기분 더럽게 나쁘실 수 있겠지만 늘봄님의 그동안의 톤으로 보면, 종교학 개론 과목 에세이에서 거의 점수를 못받을 겁니다. 제가 종교학개론 거론을 하는 이유는 세속대학의 인문학에서 종교라는 현상을 이해하는 101 또는 ABC 또는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제가 말씀드린 통계적 자료는 Reninald Bibby의 최근책 [Resilient Gods: Being Pro-Religious, Low Religious, or No Religious in Canada] , Vancouver: UBC Press, 2017에 근거한 것입니다. 제가 이 책을 입수하게 된 경위는 지난 3월 15일 캘거리대학교에서 행한 그의 강연 “Toward Enhancing Social Life: The Current Contributions of the Pro Religious, Low Religious, and No Religious”에 참석하고 저자에게서 직접 선물로 받은 책입니다.
https://www.ucalgary.ca/events/calendar/pluralism-week-dr-reginald-bibby
여러번 말씀드렸지만, 캐나다 종교를 말할 때 사회학자 비비의 연구를 외면하고는 거의 논할 수 없습니다. 지난 30여년간 캐나다 종교의 통계학적 연구는 비비가 거의 독점적으로 해 오고 있습니다. 저는 그의 통계학적 연구를 지난 20년간 거의 따라 왔습니다. 그가 얼마나 신뢰받느냐 하면, 지난 강연 때 사회를 맡은 종교학자가 그를 소개하면서 “national treasure”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가 얼마나 캐나다종교라는 현상을 사회학적으로 평생을 바쳐 연구해 왔는지를 말해주는 방증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Reginald_Bibby

한인이민자 2세와 교회 상황을 이야기 할 때, 이것은 종교신념체계와의 상관성도 중요할 수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오히려 사회적, 문화적 요인이 더 큽니다. 이민사회에서 진보교회는 거의 말할 정도가 되지 못합니다. 문익환 목사님의 동생인 민중신학자 문동환 목사님이 캘거리에 오셔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분이 시무하셨던 미국의 한인 교회는 교인이 몇명 되지 못했었습니다. 그 때 제가 사회를 봤었죠. 장준하 선생인지 함석한 선생인지 잘 기억이 안나는데 이분의 자제가 하는 미국의 한인교회도 50명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이민사회에서 진보교회의 역할은 그 규모가 아니라 작지만 사회정의나 사회참여에 관해서 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죠.

하지만 통계적 진실은 어쩔 수 없이 이민자 교회를 압도하는 것은 보수복음주의 교회입니다. 북미에서 서양인사회보다 한인사회의 한인기독교인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는 이민지에서 복음주의 교회가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북미에서 한인교회 비중이 워낙 크니까 사회학자나 종교학자들의 큰 관심거리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책만 해도 (실은 관심이 많아서), Ho-Youn Kwon, Kang Chung Kim, R. Stephen Warner 편집 [Korean Americans and their Religions: Pilgrims and Missionaries from a Different Shore. University Park: The Pennsylvania State University Press, 2001 있구요. 한인복음주의자에 대한 연구로는 Elaine Howard Ecklund. [Korean American Evangelicals: New Models for Civic Lif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6가 있는데 이것은 바로 사회학적 연구서입니다. 한인복음주의 교회에 대해 이런 인문사회학적 연구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이민사회에서 보수복음주의가 압도적인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이 보수복음주의에 끌려들까요? 이것이 단지 신학적인 문제입니까? 한국에서 불교인 비율이 개신교 와 천주교를 분리하면 가장 수가 많은데 왜 북미에서는 한인 불교인 수가 압도적으로 적을까요? 불교인들이 삼층세계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불교법당을 떠나고 개신교도들은 삼층세계관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압도적으로 많은가요? 이민자 사회도 싸이클이 있어서 고령화는 어쩔 수 없습니다. 어떤 유명한 교회도 30년의 싸이클을 거의 견디지 못합니다. 한국의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열기가 만민중앙교회의 열기보다 훨씬 식은 것은 바로 이런 싸이클 때문입니다. 이것은 제가 10여년전 한국을 방문해서 두 교회를 방문하면서 비교해서 느꼈던 경웁니다. 이 게시판에도 정치적으로 극우적인 한인들이 발을 제대로 붙이지 못한 이유도 바로 이민자 사회의 구성원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지난 20년간 석유산업과 관련해서 젊고 개방적인 한인이민자들이 알버타로 대거 들어왔습니다. 이 세대가 지나면 또 알버타에서 한인 이민자들의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죠.

그리고요. 그럼 지난 1992년에 있었던 LA 흑인 폭동 사건은 한인들이 순전히 인종차별주의자들이었기 때문에 흑인들이 한인상가를 불태우고 약탈했나요? 당시 가장 피해를 많이 본 민족은 한인들이었습니다. LA 폭동의 원인이 바로 한인들의 인종차별적 태도 때문이었다는 세간의 어림짐작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쓴 책이 바로 정치학자 Patrick D. Joyce의 [No Fire Next Time: Black-Korean Conflicts and the Future of America’s Cities]. Ihaca & London: Cornell University Press, 2003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한인 교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뉴욕과 LA 를 비교하면서 흑인폭동의 원인이 한인들의 인종차별적 태도가 주요변수가 아니라 바로 각 도시의 정책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추적해 내고 있습니다. 이 책은 몇년 전 제가 발의해서 제 집에서 캘거리의 여러분들과 함께 영어강독회에서 여러번에 걸쳐 읽으면서 토론한 것입니다. 하나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한인교회나 사회를 이해하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바로 늘봄님의 비현실적인 신학적 이상(ideals)입니다. 제 스스로를 항상 경계하는 것이 이른바 저의 개인적 신앙, 즉 진보적 신앙 이념이 현실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경계입니다. 개인의 주관적 경험도 중요할 수 있지만 인문사회과학적 연구의 결과물에 귀를 기울일 때 한인사회도 더 깊이 이해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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