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서 타이베이로 가는 AC017 편
비행시간은 이륙 후 12 시간 5 분, 항적도에 표기된 비행거리는 9,984 km
프리미엄 이코노미석 (이하 프리미엄 일반석)은 비싼만큼 가치가 있는 것일까?
비행시간 네 시간 이하의 단거리라면 좌석 클래스의 차이는 별로 의미가 없다.
적어도 나라면 한국에서 일본가는데 돈을 더 주거나 마일리지를 소비해가며 상위 클래스를 타고 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10 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좁은 일반석에 끼어 앉아 장거리 비행 (특히 eastbound 비행)을 했을 때 얼마나 컨디션이 안 좋아지는지 여행자라면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은 semi-비즈니스석이 아니다. 말 그대로 일반석이다. 일반석은 일반석인데 보통 일반석보다는 넓고 편안한 일반석일 뿐이다.
일부 후기를 보면 '비즈니스석에 버금가는 시설과 서비스' 운운하는 과장된 구라를 늘어놓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반대로 어떤 후기를 보면 일반석과 다른 점이 없다는 식으로 인색한 평가를 하고 있는데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
장거리 기준 편도 100 달러 정도만 더 내면 선택할 수 있는 preferred seats 과는 달리, 많게는 일반석 요금의 두 배 가까운 돈을 지불해야 하는 프리미엄 일반석의 경우 남의 말만 듣고 덜렁 표를 사면 후회할 수도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장거리 비행을 하는 승객의 90 퍼센트는 비즈니스든 프리미엄 일반석이든 교통수단에 돈을 더 지불할 의사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통계라고 하지 않고 '이야기'라고 한 이유는 그런 통계가 있다는 말만 들었지 내가 실제로 그런 통계자료를 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렇다면 10 퍼센트는 좀 더 편한 좌석을 구하기 위해 돈을 더 낼 의향이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그 10 퍼센트 중 90 퍼센트는 여전히 일반석의 네 배나 비싼 비즈니스석을 자기 돈 주고 구입할 의사는 없는 사람들이다.
일반석이 만석인데도 비행기 전체 면적의 3 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비즈니스석이 텅텅 비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리미엄 일반석은 바로 이 10 퍼센트의 승객들 중에서, 네 배까지는 아니더라도 두 배 정도까지라면 편안한 좌석을 위해 자기 돈을 더 낼 의향이 있는 사람들을 겨냥해서 항공사들의 마케팅부서가 고안해 낸 상품이다.
내가 알고 있기로 대한항공은 아직 프리미엄 일반석을 운용하지 않고 있다. 델타항공은 좌석간 피치를 조금 넓힌 앞좌석을 프리미엄석이라는 이름으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델타항공의 프리미엄석은 프리미엄석이라기보다는 그저 preffered seats에 가까운 개념이다.
에어캐나다는 772, 77W, 787 기종에 21 석의 프리미엄 일반석을 운영하고 있다. 위치는 비즈니스석과 일반석 중간에 자리잡고 있다. 비행기가 이륙하면 커튼으로 각 클래스간 공간이 차단된다.
대한항공은 일반석 승객이 다른 클래스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데 비해 에어캐나다는 화장실 사용에 있어서만큼은 그런 제지를 하지 않는 것 같다. 따라서 상위 클래스의 객실 분위기가 조금 산만한 느낌은 있다.
프리미엄 일반석 요금은 에드먼튼-인천 기준으로 일반석에 비해 편도 약 CN400 달러 왕복 약 CN800 달러 정도 비싸다고 보면 된다.
프리미엄 일반석의 좌석은 모두 3 열로 구성되어 있다.
앞에서 언급한 세 기종의 경우 일반석이 3-3-3- 배열인데 비해 2-3-2 배열이므로 그만큼 좌석과 통로가 넓다.
좌석폭은 일반석에 비해 5 cm 가량 넓고 좌석간 피치는 일반석에 비해 약 18 cm 정도 넓다. 발받침대가 있지만 사용하지 않는게 더 편하다. 더 넓은 레그룸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는 항목은 좌석의 착석감이다. 탄력성 높은 재질의 고급소파에 앉아 있을 때 비숫한 느낌의 안정되고 안락한 착석감을 느낄 수 있다. 옆 좌석과 구분된 경계감이 확실한 것도 장점이다. 대신 고정된 암레스트 차단벽 때문에 옆 좌석이 비었다고 두 자리를 차지하고 눕거나 할 수는 없다.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벌크헤드 (맨 앞열) 보다는 두 번 째나 세 번 째 열을 추천한다. 벌크헤드석은 발받침대가 없고 이착륙시 캐리온을 바닥에 놓아둘 수 없는 단점이 있다. 벌크헤드석의 다른 단점은 이착륙시 모니터를 사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화면 크기도 다른 좌석에 장착된 AVOD 모니터에 비해 1 인치 정도 작다는 점이다.
프리미엄 일반석의 트레이는 팔걸이에서 꺼내게 되어 있다. 따라서 식사시간에 뒷사람을 위해 좌석을 바로 세울 필요가 없다.
많은 후기들이 프리미엄 이코노미식의 기내식에 대해 잘못 기술하고 있다. 두 번의 기내식 중 한 번은 비즈니스 클래스 기내식이 나온다는 오해가 그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비즈니스 클래스 기내식이 나오는 게 아니라, 일반석 기내식 메뉴가 비즈니스 클래스 처럼 도자기에 담겨져 나온다고 해야 맞는 표현이다.
와인잔도 플라스틱컵이 아닌 유리잔이 제공된다.
비즈니스 클래스 기내식은 전채-메인-디저트가 각각 따로 나오지만 프리미엄 일반석 기내식은 한 트레이에 한꺼번에 담아져 제공된다.
위 사진은 프리미엄 일반석 기내식
아래는 전형적인 비즈니스 클래스 전채와 메인요리
전혀 다른 종류의 기내식이므로 혼동하면 안된다.
'프리미엄 일반석에서 비즈니스 기내식 나오더라'는 후기는 혼동에서 비롯된 가짜정보라고 할 수 있다.
프리미엄 일반석 탑승객은 비즈니스 클래스 카운터에서 체크인한다. 따라서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다.
요즘은 온라인으로 사전 체크인을 하고 공항에서는 위탁수하물만 수하물 카운터에 드롭하기 때문에 사실 우선 체크인 혜택은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먼저 탑승하고 먼저 내릴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장점이다.
캐리온은 공중화장실보다 더 더럽다는 비행기 바닥에 놓지않고 가급적 오버헤드빈에 넣어야 하는데, 그려려면 먼저 탑승해 오버헤드빈의 공간을 선점하는 게 중요하다.
우선탑승혜택은 이런 면에서 매력적이다.
오버헤드빈에 빈자리가 없다면 캐리온을 바닥에 놓아야 한다. 이럴 땐 반드시 바닥깔개나 하라고 승무원들이 나눠 준 조선일보나 Wall Street Journal 을 두 겹 이상 바닥에 깐다. 기내용 담요나 항공잡지를 바닥에 깔아서는 안된다.
(비행기 카핏바닥은 각종 오물들로 범벅이 되어 있다는 게 정설이다. 팝과 같은 끈끈한 설탕음료를 필두로, 터뷸런스 때 엎어진 식판에서 떨어진 음식물, 과자 부스러기, 플라스틱이나 유리조각이 곳곳에 널려 있다. 여기에 멀미승객들이 쏟아낸 토사물에서 부터 생리혈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bodily fluids 가 화룡점정을 찍는다. 빡빡한 스케줄로 끊임없이 뺑뺑이를 도는 비행기의 카핏바닥을 완벽하게 청소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도착 후 두 시간 정도만에 다시 돌아가는 인바운드 비행기(본국도시 출발 외항기 외국도시 출발 국적기)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다. (싸르니아 어록 중에서)
위탁수하물을 빨리 찾을 수 있다는 것도 여러 모로 좋은 점이 있다. 연결편 접속시간 간격이 짧은 경우 이 서비스는 특히 유용하다.
프리미엄 일반석 탑승객의 위탁수하물에는 비즈니스 클래스 위틱수하물처럼 'Priority' 스티커가 붙는다.
비행기표를 구입하기 전에 분명하게 알아야 할 점은,
프리미엄 일반석은 비즈니스 클래스처럼 180 도 펼쳐진 침대 위에서 이불 덮고 누워갈 수 있는 좌석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반석에 비해 좌석의 착석감이 좀 더 편안하고 레그룸이 넓다는 점, 좌석 등받이를 마음껏 뒤로 제껴도 뒷사람 눈치 볼 필요 없다는 점, 뒤집어 말하면 앞 사람이 좌석 등받이를 뒤로 제껴도 별로 불편하지 않다는 점, 체크인, 탑승, 위탁수하물을 찾을 때 기다리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 정도가 일반석과 다를 뿐이다. 화장실도 좀 더 여유가 있다. In-seat power/USB port 는 프리미엄 뿐 아니라 일반석을 포함한 모든 좌석에 장착되어 있다.
Dump classy in a sky-view lavatory!
787-9 기종의 풍경이 있는 화장실 (밴쿠버-타이베이 AC017, 인천-밴쿠버 AC064)
원래 이 기종의 창문에는 창문가리개가 없다. 버튼으로 채도를 조절하게 되어있다.
화장실 창문에 만큼은 채도조절버튼과 창문가리개가 함께 설치되어 있다(관찰력이 참 뛰어나죠?)
에어캐나다의 장점 중 하나는 기내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우수하다는 것이다.
로딩되어 있는 영화 수를 세어보니 약 180 개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영화에 따라 다르지만 27 개국 언어로 더빙되어 있는 점도 다문화다인종국가의 국적기다운 서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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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캐나다를 비롯한 상당수 항공사들은 퍼스트 클래스를 운용하지 않는다.
이미 비즈니스 클래스가 충분히 안락하게 업글되었기 때문에 퍼스트 클래스 존재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텅텅 비어가지 않으면 폼이나 잡고 갑질로 말썽이나 일으키는, 질이 별로 좋지 않은 탑승객들이 다수 출몰하는 퍼스트 클래스를 아예 기내에서 퇴출시키고, 여유가 생긴 공간을 PE(프리미엄 일반석) 클래스로 활용하는 것이다.
PE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내 계층간 갈등과 불균형을 완화하는 역할도 한다.
5 퍼센트에 불과한 비즈니스 클래스 승객이 전체 기내공간의 40 퍼센트를 점유하고 고급 서비스를 독점하고 있는 현상은 기내 분위기 안정을 위해서 좋은 일이 아니다.
PE는 비즈니스와 이코노미 사이 공간에서 이 두 계층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갈등을 차단하는 완충지 역할을 하는 것이다.
프리미엄 일반석은 수요자 반응도 좋고, 항공사 입장에서도 투자대비 수익성이 가장 좋은 좌석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앞으로 기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점점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Fly classy and stay strong on your journe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