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 중의 하나입니다. 제가 죽으면 장송곡으로 틀어 달라는 곡입니다. 영혼은 존재하지 않겠지만 몸은 화장을 하고 영혼은 이 노래처럼 은하계 저 멀리 여행하고 싶군요.
** 하루에 글을 두개 이상 올리면 안되는 줄로 알지만, 제가 요즘에 글을 거의 포스팅하지 않았기 때문에 운영진께서 헤아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래 늘봄님의 권고도 있어서 독자적인 글을 올립니다. 원래는 라일리의 다른 책을 보고 올리려고 했는데 양해를 구합니다. 아프리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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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도들은 39권의 책으로 구성된 유대인의 책을 “구약성서” (Old Testament)라고 하지만, 이것은 보통 “타나크” (Tanak) 또는 “히브리 성서” (Hebrew Bible)라고 부릅니다. 이것을 토라 (Torah)라고 부르기도 하죠. 토라도 협의로는 흔히 모세5경 (five books of Moses;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의미합니다. 광의로는 전체 히브리 성서와 탈무드를 포함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히브리 성서 타나크에는 “영혼” (soul)의 개념이 없고 미드라쉬 (midrash)와 “탈무드”에는 나타난다는 것이죠. 미드라쉬는 유대인 랍비들이 토라를 해석한 것들인데, 이 미드라쉬는 이른바 성문 토라 (written Torah)와 구분되는 “구전토라” (oral Torah 또는 oral Law )를 발전시켰습니다. 이 구전토라의 광범위한 형태가 미쉬나 (Mishnah)이고, 미쉬나에 대한 주석과 토론을 모은 것을 게마라 (Gemara)라고 하며 미쉬나와 게마리를 합친 것을 “탈무드” (Talmud)라고 합니다. 이 탈무드는 두가지 형태로 나눠지는데 바빌로니아에서 발전된 바빌로니아 탈무드와 이에 못미치는 예루살렘 탈무드로 나눠집니다.
성문 토라에 영혼의 개념이 없다는 개념은 예수 당시의 주요한 논쟁거리가 됩니다.
예수 당시 종파들은 크게 네개로 나눠집니다.
사두개파 (Sadducees)
바리새인파 (Pharisees)
에세네파 (Essenes)
젯롯당 (Zealots)
여기서 영혼의 개념과 관해서 한정해야 하므로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에만 한정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두개파 (Sadducees)
사두개인은 쉽게 주변 정치세력과 결탁하게 됩니다. 이들은 페르시아, 프틀레미 이집트, 셀류커스 시리아 그리고 후에 로마와 정치문화를 쉽게 흡수 합니다. 기원전 142년 셀류커스 왕조로부터 유대는 거의 독립을 한 상태였지만, 그들은 헬레니즘 문화를 숭상했습니다. 사두개파의 기원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름은 솔로몬 왕의 고위사제 계급인 사독(Zadok)에서 나왔고 자신들은 아론의 후손들이며 성전예식 (Temple cult)를 거행하였습니다. 결국 이런 예식이 굳혀져 사제직이 세습되었으며 자신들의 사제제도가 유지되는 한 외국의 통치를 받아들였으며 그래서 정치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지나친 민족주의는 위험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스모니안 왕국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의 중앙집권적 형태를 옹호했습니다. 문서로된 토라만을 문자적으로 믿었으며 종교적 혁신을 부정했고 신앙의 의례적(ritual) 측면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렇게 쓰여진 토라에는 영혼(the soul)의 개념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활이나 사후세계를 믿지 않았습니다.
신약성서도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봐야 하지만, 본문 그대로보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차이가 드러나며 예수와 바울, 그리고 바리새인이 공유한 사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2장 18절: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누가복음 20: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 몇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마태복음 22:23절: “그 날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2. 바리새파 (Pharisees)
바리새파의 기원은 분명하지 않지만 기원전 134-104년 정도로 추측되며 점진적으로 발전되다가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서 활발하여 예수 당시는 이미 성숙한 단계에 이른 종교운동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근원을 시내산에서 계시를 받는 모세에 시작해서, 출애굽계약, 예언자들의 가르침, 그리고 남유다의 요시아 (Josiah c. 640–609 BCE) 왕 때 모세 율법의 새발견(rediscovery 이 율법의 근간은 다름아닌 바로 “야훼만 섬기는 신앙”the pure worship of Yahweh alone)으로 인한 신명기 개혁에 연원을 두고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보기에, 예루살렘의 사제들(바리새파가 있긴 했지만 주류권력은 사두개파)은 부패했고 개인적 부귀를 위해서 로마 제국과 타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리새인들이 취한 행동은 정치적 혁명이 아니라 바로 출애급의 모세의 시내산 계약 (the Exodus Covenant)에 나타난 메시지의 재평가였습니다. 바리새파라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분리된 자들” (the separated ones)이라고 하며 처음에는 주로 작은 평신도 집단이었습니다. 이들은 영적으로는 예언자 이사야와 에즈라의 서기관(scribe) 전통, 그리고 셀류커스 하시디 운동 (anti-Seleucid Hasidic movement)에 연원을 두고 있습니다. 처음에 바리새인들은 하스모니안 왕조를 지지했지만, 나중에는 돌아섰습니다.
바리새인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은 그들이 구전 토라 (Oral Torah)를 강조했다는 것과, 랍비(예언자시대가 끝나고 대를 이음)라고 하고 유대선생들의 발전, 그리고 회당의 출현을 가능하게 한 집단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성문토라(written Torah 쓰여진 토라)만 믿는데 반해서, 바리새인들은 “구전율법”(Oral law) 을 모두 믿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믿는 신에 대한 전적인 헌신을 위하여 율법을 발전시켰는데, 이러한 발전의 결과물이 바로 구전 율법입니다. 이 구전율법은 시나이산 (Mt. Sinai)에 모세에게 전했졌다고 믿었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성문율법 (the written Law of Mosses)와 구전 율법은 함께 병행하는 중요한 전통이었고, 이런 전통을 굳건히 지키는 것이야 말로 종교의 순수성 (purity)를 유지한다고 보았습니다.
예수:
성서에 보면, 예수와 바리새인들이 사사건건 부딪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예수와 계급이 높은 사두개인들이 만날 확률보다 예수와 바리새인들이 만날 확률이 높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신약성서는 당시 초대교회의 신념체계를 반영하는 것이므로 이들에 대해서 편향적이었으며, 결과적으로는 반셈족주의 (Anti-Semitism)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은 “위선”의 대명사였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7절에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겉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썩은 것이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다.”라고 예수는 비난하고, 누가복음 11장 44절에서는 “너희는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다. 사람들은 무덤인 줄도 모르고 그 위를 밟고 지나다닌다."라고 비판합니다.
누가복음 13장 35절에서는 “바로 그 때에 몇몇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가까이 와서 "어서 이 곳을 떠나시오. 헤로데가 당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라고 하는데 서로 관계가 좋다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7장 36절에서는 “예수께서 어떤 바리사이파 사람의 초대를 받으시고 그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다.” 11장 37절에서는 “예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어느 바리사이파 사람의 저녁 초대를 받아 그 집에 들어가 식탁에 앉으셨다.11장 1절에서는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바리사이파의 한 지도자 집에 들어가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를 지켜보고 있었다.”라고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식사초대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최근에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예수를 유대교 (Jesus within Judaism) 내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또 예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문헌도 발굴하고 있어서 기독교와 유대교에 대한 이해를 더 깊이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제 2 성전이 파괴된 70년 이전을 연구해야 예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죠. (Charlesworth). 즉 예수는 독실한 유대인이었다는 것과 사두개인과 달리 바리새인과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에 학자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잠정적 결론:
지금까지의 저의 결론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보하면서 로마제국과 타협한 사제집단인 사두개파보다는 비주류면서도 평신도운동인 바리새파들이 예수와 공유된 점이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영혼의 개념과 죽은자의 부활의 개념은 예수가 바리새인들과 공유한 점이 많다는 점에서 그들이 공통적으로 구전토라 (Oral Torah)를 공유했을 가능성이 컵니다.
그런데 아래 제가 지적한 라일리의 글에서 예수의 영혼불멸과 부활사상을 더 균형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즉 단순히 구전토라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영혼개념의 지평을 더 넓게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영혼과 사후세계에 대한 신념은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였다는 것인데, 그래도 이집트의 종교사상, 조로아스트교의 영향, 그리고 그리스 사상의 전통에서 주류를 뚫고 비주류의 영혼 개념을 발전시킨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영혼개념의 세 전통을 예수는 자신의 독특한 예지로 발전시켰다는 것이 라일리의 논지입니다. 그동안 무엇인가 허전했는데, 라일리의 책을 다시 보면서 당시의 종교지형 이해에 제가 균형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는 영혼불멸 사상 때문에 죽은 사람입니다. 다음에 라일리의 예수의 영혼관을 요약해 올리겠습니다.
사족: 요즘 digital soul 이라는 말이 있듯이 전통적인 영혼불멸이 아니라 몸을 떠난 디지털 영혼에 대한 관심을 저는 갖게 되었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책 [Homo Deus]에서 영감을 받은 면도 있습니다. 그의 책 후반부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