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때 아내와 같이 3박 4일간 제주도 자전거 일주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제주 시내에서 두 대의 자전거를 렌트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다. 중간 중간 만장굴도 가고 우도도 들리고 성산 일출봉이니 섭지코지니 하는 관광 명소를 둘러 봤다.
이 일은 이것 대로 행복한 추억이지만 나에게는 심오한 자전거의 세계를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도 자전거를 잃어버려서 비싼 자전거는 전혀 사지 않았다. 어차피 두 바퀴가 굴러가는 것일진대, 비싼 자전거는 뭐 특별나게 다를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그래서 항상 도둑맞아도 아깝지 않을 만한 10만원대 자전거만 타고 다녔다.
싼 가격의 자전거라도 보통 12단에서 21단 정도의 기어가 달렸었다. 유사 MTB 다. 핸들바에 기어 조정을 하는 노브가 있었는데 이를 잘 조정하여 달리면서 기어를 조절할 수 있었다. 조금만 부주의하면 기어를 변경하다가 체인이 빠지곤 했다. 그래서 기어 변경은 최대한 자제하며 자전거를 탔다.
어쩔 수 없이 기어를 변경해야 할 때는 아주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절대 큰 힘이 체인에 가해져서는 안된다. 달리고 있는 속도보다 천천히 페달을 밟으면서 기어를 조정해야 했다. 그러니까 오르막에서 낑낑거릴때는 절대 기어를 조절해선 안된다. 해서 오르막 오르기 전에 기어를 미리 조정해 놔야 한다. 안 그러면 체인이 빠져버려서 손에 기름때를 묻히며 다시 체인을 걸어야 한다. 특히 체인이 뒷바퀴 스프라켓 사이에 끼어 버리면 낑낑 용을 쓰며 빼내야 했다.
제주도에서 빌린 자전거는 신세계였다. 기어 변경 노브가 디지털 식이였다. 딸깍 딸깍 이쪽 레버를 누르면 기어가 올라가고 딸깍 딸깍 저쪽을 누르면 기어가 부드럽게 내려가는 것이었다. 와! 자전거 기어 변경이 이렇게나 쾌적할 수 있는 것이라니. 어떤 상황에서도 기어 변경이 가능했다. 그리고 절대 체인이 빠지지 않았다. 아! 이래서 비싼 자전거를 사는 거였구나,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 후 자전거에 대해서 좀 공부했다. 생각보다 자전거의 세계는 심오했다.
먼저 프레임 소재. 하이텐강을 쓰느냐 크로몰리를 쓰느냐 알루미늄 합금을 쓰느냐 혹은 카본 소재를 쓰느냐에 따라서 가격이 하늘로 솟구쳤다. 비쌀수록 프레임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벼워 진다.
구동계의 부품도 등급이 있었다. 제주도에서 빌린 자전거에는 시마노의 초보적인 등급이 사용됐었다. 그런데 이게 알투스니 투어니니 알리비오니 데오레니 XTR 이니 여러 등급이 있고 높은 등급은 엄청난 가격이 형성 된다. 등급이 높을수록 보다 가볍고 튼튼하며 정밀하다.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 왔으면서 전혀 몰랐던 세계였다. 드디어 자동차 한 대 값의 자전거가 존재하는 이유를 알게 됐다.
여튼 나는 아직도 도난 걱정 때문에 비싼 자전거를 사지는 못한다. 하지만 구동계는 최소한 시마노 혹은 그에 준하는 부품을 쓰는 자전거를 사게 됐다. 그래서 자전거 구매 가격이 과거보다 몇 배나 올라가 버렸다.
모르는게 약일 때가 있다. 나는 쌀가게 배달용 짐자전거를 타면서도 행복할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시마노 구동계가 달린 자전거를 한번 맛본 뒤로는 이제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 싸구려 자전거로는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하는 몸이 돼버렸다. 타락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