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Canmore 에 왔습니다.
K 형!
잔설이 드문 드문 남아 있는 높은 산이 보이는 창가에서
형에게 씁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로키의 거대한 침묵을 바라보다가
멀리 고국에서 보내온 책 한 권을 가만히 쓸어내립니다.
『채광석 전집 3』, 하얀 속지 위에 꾹꾹 눌러쓴 형의
친필 메모를 발견한 순간 제 안의 둑이 터져버렸습니다.
“오래전, 쇠창살 사이로 한 뼘의 하늘만 허락되던 감옥에서 읽었던 너의 편지가 생각나 이 책을 보낸다”
오래된 저의 치기 어린 편지들을 여전히 가슴에 품고 계셨던가요?
먹먹한 그리움에 눈시울이 뜨거워져 무작정 차를 몰아 이곳 캔모어까지 왔습니다.
기억하시나요, 형
최루탄 가루 자욱한 스무 살의 우리교정, 채광석 시인의 평론을 복사해 숨죽여 읽으며 문학과 역사를 뜨겁게 끓여내던 그 밤들을 말입니다.
서로의 어깨를 걸치고 부르던 노래 하나면 세상 그 어떤 장벽도 다 무너뜨릴 것 같았던
우리의 지난날이 큰 산 여기저기 남아 있는 잔설 위로 환영처럼 피어오릅니다.
시간은 어쩌면 이리도 사정없이 흘러갔는지요.
계절이 가고 오는 줄도 모른 채 서울의 혼잡한 지하철역 속에서,
혹은 거대한 빌딩 숲에서
오늘도 숨 가쁘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을 형의 뒷모습이
창가에 비친 저의 반백의 머리 위로 겹쳐 흐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날의 열정은 세월속으로 사라진 것이 아님을 믿습니다.
저 산의 다 녹지 못한 눈은 이윽고 차가운 계곡물이 되어 대지를 적시고
메마른 바위 구멍마다 다시 푸른 이끼를 키워낼 것입니다.
머나먼 이국땅, 로키산 자락에 앉아 이 고요하고 사치스러운 한가로움 속에서
내가 아는 가장 의로웠고, 가장 따뜻했던 청년,
K형의 안녕을 손 모아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부디 숨 가쁜 생업 속에서도 건강을 잃지 마시고
빌딩 숲 사이로 부는 바람 속에서
제가 이 책을 읽으며 보낸 캔모어의 맑은 공기가
잠시나마 형의 지친 어깨를 토닥여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살아낸 세월을 안주 삼아 밤새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형, 부디 그때까지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