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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릴까 말까 망설였던 이야기 한 개......
작성자 clipboard     게시물번호 4655 작성일 2011-10-23 22:29 조회수 2496

유튜브는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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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Cebu) 시내 길거리에는 아이들이 많다. 어른과 함께 있는 아이들보다는 그들끼리, 또는 혼자 있는 경우를 더 많이 보았다. 

 

열 살 남짓한 소녀가 세 명의 어린 동생들을 돌보고 있는 것 같았다.

 

부모들은 일하러 간 것일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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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든 구걸하는 아이들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원 페소 플리즈> 라는 입에 달고 다닌다. 섣부르게 한 아이에게 돈을 주는 순간 당신은 어디선가 몰려 온 아이들에게 둘러싸이게 될 것이다. 돈을 주는 것 보다는 먹을 것을 사 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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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세로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앉아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 가서 말을 걸어 보았다.

 

햇볕에 화상을 입은 것 같은데 가까이 다가가자 찌는듯한 더위에 상처가 부패하는지 악취가 진동한다. 아무도 거들떠 보는 사람은 없다. 나이는 종잡을 수 없지만 얼굴이 앳돼 보인다. 열 다섯 살은 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제대로 보도블럭이 깔린 이 곳, 저 철조망너머로는 교회(성당) 건물이 우뚝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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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맑다. 그런데 왠지 힘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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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 노점상 청년은 만사가 귀찮다는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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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n 재래시장 부근 거리에서 만난 이모와 조카다. 온 가족이 함께 노천식당을 운영하고 있단다.

 

모녀인 줄 알았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모와 조카 사이다. 

 

조카는 나에게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다. 어디서 왔는지? 몇 살인지? 직업은 무엇인지? 어디에서 묵고 있는지? 별 걸 다 물어본다. 성격이 밝고 적극적이다.   

 

세부는 작은 도시인데도 지역에 따라 주민들이 외국인 대하는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 당신이 구 시가지나 거주지역에 들어갔다면 따가운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따가운>이라는 말은 <적대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사람들은 순박하고 친절하며 호기심이 넘친다.

 

먼저 웃어주자.

 

그럼 그들도 당신을 향해 활짝 웃어 줄 것이다. 어린 아이가 있다면 아이 엄마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이를 한 번 안아줘도 좋다.

 

친구가 되는 것과 적이 되는 것은 첫 만남 30 초 동안 당신이 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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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짧은 머리는 이 거리에서 처음 본 외국인이다. 이 거리에 외국인은 거의 없다. 아마 올 일이 없을 것이다.

 

거리를 걸어가다가 소매치기나 날치기를 당했다면 그건 당신이 잘못이다.

 

명심하자.

 

그들이 당신의 소지품을 노리고 있는 게 아니라 당신이 지금 그들의 구역을 침범한 것이다.

 

이 거리에는 당신의 목걸이나 지갑 따위를 지켜 줄 경찰은 존재하지 않는다. 필리핀의 치안개념은 <1 % 의 재산에 대한 경비> 개념이지 민생치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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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초라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이 곳은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 된 유서 깊은 거리들이다. 멀리 산토니뇨 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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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는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다. 그래서 그런지 작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대학들이 많다. 내가 아는 세부 처자 (에드먼튼 거주)도 이 도시에 있는 St. Carlos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했다. 대학들은 주로 구 시가지 빈민가에 자리잡고 있다.

 

빈민가? 하긴 세부에 빈민가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경찰과 무장경비들의 철통같은 저지선 뒤에 숨어있는 리조트와 특급호텔, 라훅-비버리힐즈 지역의 <1 %> 거주지를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이 판자촌이고 빈민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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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시가지에서 한참을 걸어나오면 거주지역이 시작된다, 대충 이런 모습이다. 도대체 어디가 거주지역이고 어디가 상업지역인지 잘 구분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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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보편적인 세부의 주상복합...... 이런 곳이 널리고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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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시간이다. 주민들이 지프니 정류장을 향해 가고 있다. 아침부터 웃통을 벗어부친 사람들도 많다.

 

<No Shirt No Service> 이런 말이 세부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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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이번에는 조수석에 누군가가 미리 앉아있다. 할 수 없이 뒷 자리 맨 앞에 앉았다.

 

자, 모두 주목해 봐요~~ 내릴 때 차비는 나한테 주세요. 잔돈 준비해서, OK?

 

지프니가 태국 쏭태우와 다른 점이 있다. 소통을 시작할 수 있는 매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매개란 다름아닌 승객들간의 요금 전달이다. 요금과 거스름돈을 서로 전달하면서 현지인 승객들과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치고 인사하고 대화할 수 있다. 더구나 태국과는 달리 이 나라에서는 영어가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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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 한 가운데로 신문과 생수, 까치담배등을 파는 행상들이 몰려다닌다. 그들 대부분은 이 시간에 학교에 가 있어야 할 소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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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숙소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SM Mall 이다. 세부에는 두 개의 몰이 있다. SM 과 아얄라가 그 곳이다.

 

세부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름아닌 Security Guards 다. 이들은 모두 권총과 테이저건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1 % 와 99 % 를 가르는 최전선은 바로 이 무장 경비원들이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희한하게도 세부에서는 정작 경찰을 보기가 어려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복경찰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곳곳에 깔려 있는 무장경비 (armed security guards)들이 출입자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진짜 세부를 보고 싶으면 저 계층 경계선을 넘어 바깥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샹그릴라나 힐튼 리조트는 세부가 아니다. 그곳들은 그냥...... 외국인 수용소라고 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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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할 것인가?

 

니꼴라이 쩨르니셰프스키의 책 제목도 아니고, 레닌이 했던 유명한 질문도 아니다. 세부 (정확한 발음은 씨부에 가깝다)에서 첫날 밤을 보낸 담날 아침 숙소 침대에서 잠을 깨자마자 스스로에게 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모법답안은 이미 귀가 아프도록 들었다.

 

첫 날 호핑투어를 하고, 마르코폴로 호텔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은 버페를 즐기고, 탑스힐 전망대에서 칵테일을 한 잔 하며 멋진 야경을 감상하고, 담날 아침에는 고속페리를 타고 보홀 아일랜드로 건너가 초콜릿 힐과 타르시어 원숭이를 구경한 다음, 이국적인 정취 물씬 흐르는 로복강 리버크루즈에 참가하고 관광객들을 위해 꽃단장한 채 미리 기다리고 있는 원주민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마지막 날에는 스파에서 황제마사지를 받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공항으로 간다……

 

떠나기 전, 세부에 대한 정보들을 검색했을 때 sarnia 는 이 모범답안 이외의 다른 대안이 있다는 이야기를 읽어 본 적이 없었다. 온라인에 차고 넘치는 세부 이야기는 거의 모두 호핑투어와 리조트 라이프, 보홀 투어에 관한 것뿐이었고, 시간이 남으면 마지막 날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시내에 있는 산토니뇨 성당이나 한 번 들러 보라는 조언이 전부였다.           

 

여행 안내서들마다 한결같이 하는 조언이 있었는데, 시내 유적지를 갈 때는 개별행동을 해서는 안 되며, 지프니 같은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 등 이었다.

 

내가 접한 정보들의 의하면 세부 길거리는 소매치기와 강도, 걸인들이 우글거리며 외국인 여행자들의 호주머니나 노리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캐나다 외무성 홈페이지에서는 아예 <반드시 가야 할 일이 없으면 가지 말라>는 충고를 친절하게 하고 있었다. 출발 며칠을 앞두고 세부에서 한국 국적의 30 대 사내가 납치됐다가 풀려났다.    

 

의문과 함께 강한 호기심이 들었다.

 

<과연 그게 전부일까? > 

 

창문 블라인더를 걷었다. 세부섬과 막탄섬 사이의 해협이 한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 망망대해 너머 어렴풋이 다른 섬이 보였다. 보홀섬이었다.

 

벽에 걸린 TV를 켜자 BBC News가 나왔다. 이 나라의 수도 마닐라에서 태풍으로 십 수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창 밖을 바라보았다. 바다는 잔잔했지만 짙은 잿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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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지? 하고 딱 5 분 정도 생각하다가 결심했다.

 

다른 사람들이 해 보라고 추천한 것은 하나도 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것만 전부 해 보기로 한 것이다.

 

내가 청개구리여서가 아니다. <모범답안>에 나와 있는 일정과 장소에 대해서는 똑 같은 이야기를 하도 많이 읽어서 굳이 가 보지 않아도 그 스토리의 전개와 결말이 뻔히 보였다.

 

모든 행동에는 동기유발이 중요한데 뻔한 스토리와 결말을 예고하고 있는 행동에 동기유발이 일어날 리 없었다.  더구나……호핑투어 같은 걸 하려고 스무 시간이 넘게 비행기타고 날아오지는 않았다.

 

그래. 그냥 여기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나 보고 돌아가자.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거 같아......

 

sarnia

 

추신: 올해 여름 동남아를 휩쓴 홍수와 태풍으로 필리핀에서만 400 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경작지의 6 % 가 침수됐다. 곡물가격 폭등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는데, 국제곡물독점자본은 또다시 대규모 매점과 투매행위를 반복할 것이다. 올해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까...... 세부에서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무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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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pboard  |  2011-10-23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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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에 스티커를 만들어 붙이세요

&lt;We Are The 99 Percent&gt;

말탄건달  |  2011-10-23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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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리된 가장큰 이유가 마르코스의 독재, 10대가문의 싹쓸이....지들만 편하면 되니까 나라, 국민 같으건 신경 안쓰고....말그대로 국가가 수익 창출이 수단이였죠...지금도 그렇고....먹고 살기 힘드니 부패가 만연하고....한국이 슬슬 저쪽으로 가고 있는거 같은데....웃기는건 대부분 무식한 것들이 자기들은 99%에 안들어 가고 1%에 들어갈줄 안다는 겁니다....실제 깨어있는 사람들은.... 국민 대부분이 99% 로 들어가야 되는현실을 막으려고 하는데....그걸 오히려 방해나 하고 앉았고....ㅎㅎㅎㅎ 정말 병신들 육갑 한다고 저절로 욕이 나옵니다....과격한 표현을 이정도로 쓰지는 않았는데....참 하도 어이없는 꼴을 많이 보니....이리 됐습니다.

clipboard  |  2011-10-24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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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탄건달님이 정확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늦게나마 세계 곳곳에서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은 불행중 다행이지요. 지금도 뉴욕에서 런던에서 전 세계 80 여개국에서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는 99 % 운동이 세계사를 바꾸는 동력이 되기를 바랍니다. 전지구적인 폭력지배를 하고 있는 국제금융독점자본의 숨통을 끊어놓지 않는 한 인류의 불행이 끝나지 않을 것 입니다.

리비아 사태를 간단히 내전 문제로 몰고 가는 것도 무지의 소치이지요. 이미 카다피가 1969 년 집권 당시부터 낫세르주의(아랍민족주의)를 표방하고 유전을 국유화할 때부터 이를갈던 영-미 에너지자본을 비롯한 서방 정부들의 40 년에 걸친 리비아 정부 전복 공작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지요. 저 불쌍한 리비아는 들판에 홀로 버려진 산양 신세가 되어 석유를 탈취하려는 하이에나떼의 먹이로 전락하고 말 것 입니다.

본문 장르가 여행기라 긴 말하기는 그렇고,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교민사회에도 자신을 마치 1 % 인 줄 착각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마당쇠 멘탈리티 또는 마름 멘탈리티에 불과한 것 인데요. 1 % 방패노릇 열심히 자원봉사 하시는 이런 계층이 하루빨리 자기 주제를 알고 정신을 차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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