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여러분, 그리고 백만학도 여러분! 전대협이 드디어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노래 때문에 새 창을 열었습니다. NL –PD 논쟁은 1985 년 본격화한 사회구성체논쟁에서 촉발됐습니다. PD 계열은 남한의 사회 기본모순을 국가독점자본주의로 보고 주적을 남한내의 군사정권과 독점재벌로 정의한데 반해 NL 계열은 남한의 기본모순을 국가자주권의 부재로 보고 미국을 주적으로 선포합니다. 논쟁은 PD 계열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대항해서 반봉건식민지론을 전개한 NL 계열의 승리로 귀착됐지요. 여기서 승리라는 개념은 이론적 정당성이 확인되었다기보다는 조직대결에서 승리했다는 말 입니다.
NL 계열은 1986 년경부터 전국 학생운동조직을 거의 모두 장악하고 이듬해인 1987 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를 출범시킵니다. 지금 나오는 이 노래가 이 단체의 주제가입니다. 초대 의장이 아마 이인영 씨였고, 그 다음 해 의장이 임종석 씨였을 겁니다. 1987 년 NL 은 전두환 정권을 박살내면서 그 조직 위상을 확고하게 굳힌데 이어 이듬해 반전반핵-남북학생회담 추진 그리고 1989 년 평양 청년학생축전 투쟁을 전개하지요. 학생운동은 사회운동의 한 부분에 불과하지만 당시 사정은 달랐습니다. 지금처럼 시민운동 노동운동이 광범위하게 조직되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에 가장 막강한 전투부대를 확보하고 있는 학생조직이야말로 명실상부한 야전군이었지요.
NL-PD 논쟁 내용의 디테일들은 별로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암튼 1986 년 NL 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학계-문화-예술계 등에서는1987 년 대선에서 비판적 지지계열로 그 계보와 인맥을 형성하게 됩니다. 당시 (1986 년) 장세동이 지휘하던 국가안전기획부는 NL 이 사구체 논쟁에서 승리하고 공개조직을 대부분 장악했다는 판단이 서자마자 이념총공세의 첫 작품을 하나 만듭니다. 기억나시나요? 1986 년 10 월 30 일 건대사태......
1989 년 시민운동 (당시에는 재야라고 불림) 총연합조직인 전민련 본부에는 왕년의 PD 계열과 NL 계열의 이론가들이 모두 집합했지만 더 이상 사구체를 둘러싼 이론갈등 같은 것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정당 (party) 등 제도권 진입을 위한 노선이 갈라지게 되는데 87 당시 비판적 지지입장 (DJ에 대한)을 가졌던 NL 계열은 평민당-국민회의-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을 발판으로 삼아 상당수가 제도권으로 진입합니다.
NL 이고 PD 고 기릴 것 없이, 당시 주역들은 지금도 정당-시민단체는 물론이고 각계각층에 넓게 퍼져 있지요. 저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이 세대처럼 광범위한 연대를 오랜 세월 지속하면서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관용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집단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또래집단이야말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으킨 가장 위대한 세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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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1986 년 당시 학생운동의 NL 지도부를 주사파가 장악하게 된 배경에 빠질 수 없는 인물이 하나 있습니다. 남들 열라 박 터지게 싸울 때 골방에 처 박혀서 강철서신인가 뭔가 하는 줄기찬 편지질을 했던 작자인데 이 사람은 25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골방에 처 박혀서 ‘극우반동서신’을 날려대고 있지요. 1995 년 어느 날 하루아침에 주사에서 극우로 180 도 전향한 경우인데 후세 심리학자들의 연구대상 중 하나인 듯……
'NL 지도부를 주사가 장악했다고 했을 때 장악이라는 의미는 당시 SM 지도부가 주사이론을 받아들였다기보다는86~89까지 분위기상 하나의 경향성으로 자리잡았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게시판에서 종북 타령하고 있는 분들, 불만 있으면 이 작자한테 가서 따지시구요.
참고로 저는 사구체 논쟁이 본격화 되기 전인 1985 년 졸업을 했기 때문에 NL 과는 관계가 없지만 이후 전국단위단체본부에서 문익환 목사와 김근태 씨 라인에 있었기에 굳이 출신 계보를 따지자면 NL 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