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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줌누러 간 신랑놈 기다리며
작성자 내사랑아프리카     게시물번호 4952 작성일 2011-12-16 04:05 조회수 2971
오줌누러 간 신랑놈 기다리며
-내사랑 아프리카

가슴이 타 들어가 재가 된 이야기
우리나라 전설 중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옛날에 한 처녀 총각이 결혼을 하였는데, 첫날밤 신랑이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에 가려는데 옷자락이 문고리에 걸렸습니다. 신랑은 옷자락이 문고리에 걸린 것을 신부가 붙잡은 줄 알고, 괘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랑은 신부가 음탕하여 금새를 못 참아 신랑을 붙잡은 것으로 오해를 하였습니다. 신랑은 그 길로 색시 곁을 멀리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몇 십 년이 지났을까? 어느 날 신랑은 젊은 시절 결혼한 색시가 생각나서 옛 집을 찾게 되었습니다. 집은 그대로 있어서 혹시나 싶어 그가 문을 열고 보니 신부는 신랑과 결혼한 첫날밤의 단정하고 다소곳하게 앉은 모습이었습니다. 신랑은 너무나 놀랍고 감동한 나머지 신부를 붙들려는 순간 신부는 한 줌의 재로 변하여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기다림으로 얼마나 애간장이 타고 속이 상했으면 이제 탈 것이 없어서 한 줌의 재로 변했을까요.


신부의 속이 그렇게 타 들어가도 그나마 다소곳한 형체를 유지했던 것은 언젠가는 신랑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실낱 같은 하나의 희망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실낱 같은 희망이 이뤄진 순간 그녀가 버텨온 모든 힘은 이미 다 소진되어 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줍니다. 신랑의 오해, 신부의 기약없는 기다림, 소통불능,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남자로서의 지위 남용. 하지만 이야기에서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신부의 한()입니다. 한은 두고 기다리는 기다림의 미학이 아니라 마음의 절규이자 깊은 마음의 상처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신부의 속이 타 들어가서 텅비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녀는 다른 것으로 채웠습니다. 거기에는 배신감, 그리움, 외로움, 미움, 증오 등 혼자 남겨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이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인격은 비운만큼 채워야 유지되니까요. 그녀와 우리와 다른 점은 그녀는 조선시대라는 여필종부의 시대에 살고 있고 우리는 좀 더 자유롭고 열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이야기지만 그 시대를 산 모든 여성이 경험했을 그런 가슴 아픈 이야기는 바로 재로 상징됩니다

나에게 주는 위안을 주는 공간이 있어도
우리의 삶은 항상 즐거움으로 채워지고, 또 성공하게 되는 것일까요? 우리가 가슴이 타들어가는 그런 기억이 없이 이 세상을 끝낼 수 있다면 행복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이 여인은 그렇게 외롭고 무작정 철없는 남편을 기다려야만 했을까요? 여인이 음탕한 것이 아니라 남편이 여인을 버려두고 진탕 바람만 피우는 자였을터인데 그것도 남자라고 기다리고 기다려야만 했을까요? 가부장적 사회에서 그녀의 출구는 그녀를 버린 남편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재혼을 할 수도 없고, 자기 아들이 떠난 것은 며느리 탓이라고 시어미의 구박은 지속되었을 것이고, 동네 사람들은 남편없는 여인이라고 놀려댔을 것입니다. 사람이 갖는 삶의 지평은 한정되어 그 이상을 보기가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 지평선 안에 우리는 삶의 성을 쌓고 그것을 통해 희망의 별을 막연히 바라봅니다.  

이렇게 모든 사회적 관계가 차단된 이 여인이 살아가는 방식은 자기 속을 끓이면서 사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여인의 한을 마을 사람들은 몰랐을 것입니다. 겉모습은 멀쩡해서 그냥 저 여자는 착하고, 참하며, 청순하며, 얌전한 여자일 것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청상과부와 같은 신세를 이겨내고 모든 곤경을 꿋꿋하게 참고 견뎠을 것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녀는 언제나 결혼식 예식 때 입은 모습 그대로 항상 청초하고 다소곳하며 그리고 얌전한 여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녀 역시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심적으로 건강한 사람인척 행동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정신적 상처(trauma)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마음에는 누구보다도 견딜 수 없는 애간장이 타서 겉만 멀쩡하지 속은 완전히 재가 되어갑니다. 그녀의 내적 마음은 혼란스럽고(turmoil) 자기를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그리고선 누구도 모르는 자기만의 내적 세계 (world) 또는 공간 (space)을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세계가 바로 누구도 모르고 또 안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그녀만의 세계 또는 공간이 되어 버립니다.

있슴에로의 용기
인간의 마음이란 무엇인가를 채워서 의미를 만들어 가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채움이 무엇이 될 수 있을까요? 분노와 좌절, 상처와 증오도 사람이 생존하는데는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 감정조차 없다면 어떻게 있슴에로의 용기(courage to be)를 가질 수 있을까요? 여인은 이렇게 자기를 학대하는 고통으로 자기를 확인하고 자기 자신됨을 인식합니다. 이것이 그녀가 살 수 있는 마지막 삶의 끈이었습니다. 이렇게 살면 우리의 가슴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의 저장소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으니까요. 이것은 인간이 자기 방어와 생존을 하는 최선의 방식일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자기 안에 바로 자기를 버리고 떠난 남자가 고문자처럼 꽉 채워져 있습니다. 그 채워진 감정은 어떠한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녀는 자기를 버린 신랑 대신 그녀의 마음의 공간에 자기의 마음을 갉아먹고 태우는 것으로 채워 넣습니다. 그래야 자기가 강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나약한 인간인 것을 이렇게 통합적인 인격체인 인간은 무엇인가 부족하면 반드시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그렇게 채우지 않으면 살 수가 없으니까요.

이 여인에게 안타까운 것은 모든 것을 자기 속에 삭혀서 해결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수십년 동안 이 여인의 마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처음엔 배신감이 생겨서, 자기를 버린 남편을 미워하다가, 이 마음이 계속 내화되면서 신랑이 자기곁을 떠난 것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결국 이 여인은 자기 비하, 자기 열등감, 자기 죄책감으로 평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자기 혼자 모든 것을 극복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강하고 독립심이 강한 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에 남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고백하고 심지어 울부짖는 일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의미없슴의 내적 공간
이런 자기 방어와 독립적인 마음 때문에, 그녀는 모든 것을 자기가 짊어지고 가면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자기만의 고립된 공간을 만들어 그곳에 새로움을 채웠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녀의 내적 공간(inner space)은 의미없이 텅 빈 마음(a sense of emptiness)일 뿐입니다. 이것은 신부가 교만하거나 열등하다는 문제가 아니라 자기에게 부과된 모든 짐을 자기가 짊어지고 가려는데 있었습니다. 왜 이런 마음은 가질 수 밖에 없었을까요? 즉 모든 것을 이제 내려놓자. 한과 슬픔, 외로움, 수없이 삭여진 답답한 가슴, 내와 강을 이룰 눈물들, 하늘을 덮어도 충분한 낙심의 구름들과 하염없이 내리는 빗물. 그녀는 진정으로 쉼이 필요했습니다. 자신이 강하다고 여길 필요도 없고, 사랑이 필요하고 대화가 필요하고, 마음의 치료가 필요한 그저 평범한 한 여인에 불과하다는 자기 인정이 필요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버리고 간 시댁식구를 자기가 모두 책임져야 될 필요도 없고, 또 영원히 수절해야 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결국 한줌의 재로 스러지니
그러나 그녀는 끝내 그렇게 하지 못하고 한을 가슴에 품고 태워서 재가 된 체로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신부에게 자기를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구조나 대상이 있었다면 자기 속이 그렇게 타들어갔을까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에 그녀가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그것은 그녀에게 샘솟는 희망이자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 버려졌다는 두려움(fear of abandonment) 대신에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대상 또는 님이 있었다면 그렇게 한이 맺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중에 돌아온 신랑에게 남긴 것은 한과 절망, 그리고 외로움으로 타들어간 한 줌의 재였습니다. 그리고 겉은 멀쩡한 결혼 당시의 신부옷이었습니다끝내 그녀는 그 옷만 남기고 자신은 한 줌의 재로 마지막 만남의 추억만 간직한채...이렇듯 만남의 인연은 이별보다 질긴 것일지언정, 한이 서린 삶, 잃어버린 기억, 되새길 수 없는 회상은 시간의 황혼에 다시 이별의 자리를 내어 줄 수밖에 없습니다. 

빈 집
-내사랑아프리카

님 떠나 
세상 풍랑에
몸실어
 
폭풍처럼
정처없이 떠돌다
머물 곳 없어
다시 찾은 집엔
하얀 눈만
기억처럼 쌓이고 
님 생각에
고개숙이니
회한으로
방울져 
옷깃에 스미네.


1           0
 
0525  |  2011-12-16 12:56         
0     0    

찰라의 착각과 오해는 바라지 않는 결과물로 우리 앞에 나타날수 있씀을
깨닭게 합니다.
사람의 인격을 무엇으로 채우며 살고 있는지 ?
죽음의 종착지에 다달을 때까지 채워진 내용물에 따라
행과 불행이 삶의 개체와 더불어 가는 것이라 생각 되어 집니다.
신부의 한은 지금 이 시대에도 어느 지붕 아래선가 아픈 신음을 참으며
암 덩어리처럼 커져 가고 있는 한의 무게는 가련한 여인들의 눈물로 뜨겁게 볼을 적시고 있겠지요.
평등사회인 지금, 가까운 곳에서 부터 소통이 시작 되고 멈추어서는 우를
범하지 말기로 해야 겠네요.
마음을 표현하고 .나누고 ,섬기고, 배려하고,이해하려 애쓰면 ,
한을 베고 숨을 멎는 처자는 없겠지요.
귀소 본능을 갖고 사는 사람들 !
" 빈집" 의 시가 애잔하게 가슴에 저립니다.
좋은 글 잘 감상 했슴니다

philby  |  2011-12-16 13:01         
0     0    

소통과 불통... 행여 등잔 밑이 어둡지 않은지.

내사랑아프리카  |  2011-12-16 17:16         
0     0    

삶이 고달프고 마음이 아프면, 누구든지 자기 세계에 자기를 가둬서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통하는 한사람이라도 있으면 그래도 낫게죠. depression/distress는 누구나 안고 삽니다. 이 때 진짜 comming out이 필요합니다. 0525님, philby님, 감사합니다.

내마음의 평화  |  2011-12-16 19:00         
0     0    

아프리카님,
시 비평만 잘하시는 줄 알았더니 시도 참 잘 쓰십니다 그려.
음악 선곡도 그러하고 사진도 좋은데요..

공감 만땅입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1-12-16 22:53         
0     0    

평화님, 댓글감사합니다.

저는 이소정의 "사랑의 인사"를 우연히 투도우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검색해보니 영화 "봄날은 간다"에 나온다고 하는데 저는 이 영화속에서의 이 노래기억이 전혀 안나는군요. 가사가 좋아서 가사도 올립니다.

"나를 찾아왔네 약속한 듯 이 가슴에
환한 빛을 안고 인사하네 기다려온 나를 향해
이 사랑을 받아도 되는걸까
그대 목소리 그대 향기가 꿈을 꾸듯이 내게 안기네

나를 찾아왔네 약속한듯 이가슴에
환한 빛을 안고 인사하네 기다려온 나를 향해
고단한 지난얘기 잊으라하네 손내밀며
그대목소리 그대향기가 꿈을 꾸듯이 내게 안기네

애써돌아서 나를 찾았나요
이제 만났어요 그대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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