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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부하기, 은유로 살기, 그리고 정치적으로...
작성자 내사랑아프리카     게시물번호 5124 작성일 2012-01-24 07:50 조회수 3804

저는 사람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책만나는 것도 좋아합니다. 저는 매주일 교회에 나가니 최소한 사람을 열심히 만나는 것은 분명하고, 헌책방이나 thrift store에 돌아다니는 이유가 책 땜에  그렇게 하는 것이니 책도  좋아합니다. 신문기사를 읽는 것은 최신 소식을 업데이트 하는데 좋고, 책을 읽는 것은 세상을 체계적으로 보는데 좋고,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은 현실을 이해하는데 좋습니다. 

정말 최근에 저의 눈을 확 뜨게 만든 것은 바로 죠지 레이코프 (George Lafoff)의 책입니다. 이것은 두어 주 전 어느 thrift store에서 만난 The Political Mind (정치적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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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코프는 인지과학자이면서 언어학자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타이틀만 생각하면 그의 책이 엄청 어려울 것같지만, 그는 정말 글을 쉽게 쓰면서 어려운 과학적, 문학적, 언어학적 주제를 쉽게 설명합니다. 시간 있으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합니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람과 진보적인 사람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 책의 가치를 이해할 것입니다. 왜 보수적인 사람은 종교적으로 근본주의자가 되며, 신자유주의적인 경제구조를 지지하며, 전쟁을 지지하며, 왜 진보적인 사람은 종교적으로 열려있으며, 전쟁을 반대하며,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하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우리의 뇌에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frame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레이코프는 설명합니다. 그래서 첨예한 정치적 현장에서 진보적인 사람조차 보수적인 프레임에 말려들면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미국의 민주당이 부쉬와 공화당의 이라크 전쟁 레토릭에 말려든 경우입니다. 한국에서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것도 바로 경제적으로 부자된다는 수사에 말려든 사람들이 그를 압도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에, 즉 그의 보수 프레임에 한국 국민들이 말려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점점 진보적 프레임으로 바뀌고 있으니 진보적인 사람에게는 희망의 서광이 비치는 것이죠.  

다음의 동영상은 위의 책에 대한 인터뷰인데 이 책에 대한 대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그의 성  Lakoff가 제게 익숙했지만, 제가 알고 있던 사람과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위의 책의 한 항목에서 Narratives We Live By라는 것을 보았는데, 이것은 제가 알고 있는 책의 내용과 너무나 흡사해서 부랴부랴 어느 책을 확인해 보았는데 같은 사람이군요.  

그 책은 다름 아닌 [삶으로서의 은유] (Metaphors We Live be)라는 번역된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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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캐나다에 올 때, 영어를 잘 못해서 번역된 책은 몇 권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영어를 잘 못하니 번역된 책에 시간을 보내지 말자. 한글 책은 한국인 저자들이 쓴 책만 읽자는 것이었는데, 위의 책은 제가 너무나 소중히 생각해서 당연히 가져 왔습니다. 

"삶으로서의 은유"는 "은유"에 대한 언어학적 철학적 책이지만, 일상적으로 표현된 은유적 표현을 모아서 쓴 책으로서 영어공부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훌륭한 책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제가 아쉬웠던 것은 은유에 대한 분석이 종교담론이나 정치담론에 대한 분석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쉬움에 대한 해소를 위의 [정치적 마음]이 완전히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삶으로서의 은유]는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개념체계가 단순히 지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지각과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구조화하는 데에, 즉 이러한 개념 체계에 은유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거의 모든 정치적 표현이나 종교적 표현도 은유적이며 심지어 공학개론까지 은유적으로 설명됩니다. 이러한 은유적 사고의 구조화의 예를 들면 우리가 인터넷에서 논쟁하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논쟁은 전쟁이다" (Argument is War]라는 은유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Your claims are indefensible / 너의 주장은 방어될 수 없다
He attacked every weak point in my argument/ 그는 나의 논증의 모든 약점을 공격했다.
I demolished his argument /나는 그의 주장을 분쇄했다. 
If you use that strategy, he'll wipe you out./ 네가 그 전략을 사용한다면, 그가 너를 쓸어버릴 것이다. 
You disagree? Okay, shoot! (동의하지 않는다고? (그럼 나를) 해치워 봐!


우리의 생각을 구조화는 데 시간의 은유는 어떨까요? 현대 사회의 모습을 "시간은 돈이다" (Time is Money)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You're wasting my time/ 너는 나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I don't have the time to give you/ 나는 너에게 내줄 시간이 없다.
That flat tire cost me an hour/ 저 터진 타이어 때문에 한 시간이 걸렸다.
I've invested a lot of time in her/ 나는 그녀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You don't use your time profitably. / 너는 시간을 유익하게 쓰지 않는다. 

이렇게 "시간은 돈이다"라는 은유는 우리의 일상어에서 얼마든지 찾아 낼 수 있습니다. 

이런 은유들을 우리가 잘 사용할수록 우리의 표현들은 풍부해지고 또 재밌어집니다. 이 런 은유들이 모여서 내러티브 (narrative)가 되면, 우리의 사고는 더 복잡해지겠죠? 그리고 작은 이야기들은 모여서 더 복잡한 이야기로 발전됩니다. 우리가 어떤 핵심 내러티브를 갖느냐에 따라 우리의 사고와 행동은 상당히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 게시판 글들을 한 번 분석비교해 보십시오.  여기 게시판에 정기적으로 글 올리거나 퍼올리시는 분들이 사용하는 개념, 은유, 그리고 내러티브는 상당히 일관성이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몇 분들을 거명하겠습니다. 

보수적 프레임을 가지신 분들, 즉 민초님, roktank님, pamoramas님, lakeside님, 지란지교님 등의 글들은 보수적 프레임을 상당히 일관성있게 유지하십니다. 특히 흥미를 끄는 분은 lakeside님입니다. 어떤 때는 상당히 진보적인 표현을 하지만 이분의 기본적 뇌활동의 프레임은 보수적입니다. 

반대로 진보적 프레임을 가진분들, clipboard님, philby님, 토마님, 내마음의 평화님들 역시 상당히 일관성 있게 기본적 뇌활동의 프레임은 진보적입니다. 아무래도 저는 이쪽 프레임에 속하겠죠. 

혹시 제 생각에 반박하실 분들은 이분들이 동성애, 낙태, 사회복지, 미국관, 한국관, 종교관, 정치관 등등의 이슈들에 대해서 쓴 글이나 펌글들을 비교해 보십시오.  특히 천안함 사태에 대한 토론을 비교해 보면 이 분들의 뇌활동이 어떻게 확연히 다른지 알 수 없습니다. 

제 생각에 이렇게 다른 프레임을 가진 사람들은 개종 (conversion)과 같은 급격한 변화를 갖지 않은 이상 앞으로도 일관된 보수적 진보적 프레임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일단 어떤 사람이 다른 한 쪽으로 프레임을 바꾸면 뇌활동도 달라지고 또 표현되는 은유나 이야기 구조도 확연히 달라집니다. 

가령, 아래에서 파모라마스님께서 퍼오신 두 글을 분석해 보십시오. 하나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미국과의 FTA를 인정했다는 조선일보 기사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조선일보는 한미 FTA를 어느 신문보다도 열렬히 환영하는 신문사이기 때문에 전후 맥락없이 박원순 시장에 대해서 자기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썼습니다. 파모라마스님 역시 이러한 신자유주의적인 경제 프레임에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에 당신의 생각을 지지하는 신문기사를 선택적으로 퍼오셨을 것입니다. 또 하나의 기사는 한국이 캐나다 쇠고기 수입허용했다는 기사입니다. 이 수입은 캐나다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고, 또 캐나다에 사는 교민의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신자유주의적 프레임과 연관됩니다. 저같은 사람이나 필비님 같은 분은 한국의 캐나다 쇠고기 수입재개를 한국농민의 생존과 복지 프레임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별로 기뻐할 것같지는 않습니다. 한미 FTA 비준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레이코프는 이야기의 배타성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When you accept a particular narrative, you ignore or hide realities that contrast it."  (당신이 어느 특정한 이야기를 수용하면, 당신은 그 이야기와 맞지 않은 실재들을 무시하거나 숨기게 된다). 

네러티브 또는 이야기를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수천 수백만권의 책을 읽을 수도 없고 또는 완벽한 사유체계나 행위 이론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삶의 이야기나 사회적 이슈들을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퍼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위의 내용이 잘 이해안되면 소설이나 드라마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소설이나 드라마는 주인공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다른 인물들이나 배경은 그 영웅을 빛내는 조연역할을 하게 됩니다. 정치적 논증이나 사회적 담론도 이러한 내러티브 구조를 따르게 됩니다.  저는 내러티브의 배타성을 자주 생각했었는데, 레이코프의 위의 말을 보면서 제 생각과 일치한 것을 알고 매우 기뻤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이것은 제 생각이지만, 사람들은 자기만의 고유한 세계관 또는 상징적 세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의미가 있으려면 그 세계가 일관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진보주의자는 진보적 프레임에 살므로 진보적 논의를 일관성있게 하고 보수주의자는 보수적인 프레임에 살므로 보수적 논의에 거의 항상 일관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각자가 지식이 풍부하거나 논리가 튼튼하거나 체계가 잡혀있는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도 논리가 없는 사람도 일관성의 프레임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 것입니다. 

다시 천안함 사태로 돌아가겠습니다. 저는 여기서 누누히 천안함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진보적 프레임 속에 사는 분들도 그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보수적 프레임 속에 사는 분들은 이러한 철저 조사를 친북주의적 생각이라고 비판하셨죠. 왜냐햐면 보수적인 프레임에 갇힌 한국인들은 반공이라는 핵심 프레임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레이코프 책을 소개하는 것은 생각의 차이들을 양극화하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틀들을 한 번 레이코프를 빌어 응시해 보자는 것입니다. 영어공부도 할겸, 또 일상을 분석하는 틀도 가질 겸, 레이코프와 마크 존슨이 쓴 [삶으로서의 은유]를 강추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언어가 주는 실재 이해를 기호학적 분석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김경용의 [기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함께 추천합니다. 문학과 시를 쓰시는 분이라면 [삶으로서의 은유]와 [기호학이란 무엇인가]를 강추합니다. 시도 객관적으로 바라 볼 수 있을 때 비평이라는 것이 허용되겠죠.  

아, 그런데 사족하나 붙입니다. 시인에 대해서 한 말씀드립니다.
은유가 모이면, 작은 이야기(시 포함)가 되고, 작은 이야기가 모이면, 복잡한 이야기가 되고, 이 복잡한 이야기가 마음 또는 뇌에 각인되면(instantiated), 나의 세계관이 된다는 것입니다. 시는 독자의 몫이라는 것은 하나의 허구입니다. 그 시의 생산자는 자신이 일차적인 독자가 되는 나르시스트입니다. 자기가 쓴 시를 읽고 또 읽어 만족하고, 또 만족하면 그런 시를 생산하고, 그래서 하나의 독자적인 자기만의 세상을 생산합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당연히 이데올로그입니당~ 시평은 덕담하는 감상문이 아니라  그 이데올로그의 마음을 분석하는 이데오로기 바판에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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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의 평화  |  2012-01-24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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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님 안녕하세요?
오랫동안 못뵈었습니다. 2월 잡담회때 한 번 뵈었으면 좋겠네요.

삶으로서의 은유 라는 책은 한 번 읽어 보고 싶은데요.
비유와 은유는 깨달음의 세계에 필수적인 장치인 것 같습니다.
종교가 대표적인 깨달음의 세계이며 우리의 삶이 종교로부터 바르게 inspired 될 때 우리 사는 세상은 더욱 살만한 곳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기에
이와같이 삶으로서의 은유와 비유는 참으로 소중한 테제인 듯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타락하고 세속화된 근저에는 이러한 비유와 은유로서의
깨달음을 맹목적인 순종과 무조건적인 믿음이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교리화 한데 그 원인의 하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를 나가는 사람들이 더이상 은유 비유로서의 삶에 대해 치열한 고민
따위를 더이상 하지 않는 거죠. 예수께서 남기신 깨달음의 세계를 사장 시켜버렸죠.

그런 잘못된 문화와 전통이 일반적인 삶 가운데서도 동일하게 유포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더이상 근본에 대해 알려고하지도 않고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고 다양하며 깊이있게 만들어주는 삶의 메타포어들은 점점 그 위치를 잃어가고 말았습니다.

천안함 사건은 결국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배금주의적 가치관이 만들어 낸 최악의 부조리였습니다.그리고 동시에 아프리카님이 지적하신대로 우리 사는 세상과 우리의 삶을 풍성하고 다양하게 만들어줄 은유와 비유를 도외시한 결과 참으로 무시무시한 조작이 가능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기독교가 개혁되는 길은 모든 기독교인들이 교리를 기계적으로 암송하고 말하는 인형처럼 반복하는 데서 벗어나 은유와 비유로 말씀하신 예수의 가르침에서 깨달음을 구할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아프리카님의 글을 아침에 읽고 들었던 생각입니다.

댓글이 길어져서 송구합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2-01-2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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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은 신약성서에서 가장 인기있는 책 중의 하나로서 예수는 여러가지 은유적 표현을 사용해서 자신을 드러냅니다. 예수는 “생명의 빵”이며, 예수는 “세상의 빛”이며, 예수는 “선한 목자”이며, 예수는 “길과 진리요 생명”이며,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 예수는 "포도나무" 등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문자적으로 읽으면 큰일 나죠. 은유란 물리적으로 상관이 없는 것이 연결되므로써 다양한 의미생산을 합니다. "예수=길"은 등식은 불가능합니다. "예수=포도나무"라는 등식은 더욱 불가능합니다. 사람이 길이 될 수 없고 나무가 아니지 않습니까? 더우기 언어는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중립적인 것이란 없습니다. 나는 "길"라고 했을 때, 오솔길인지, 아스팔트 길인지, 황톳길인지 그 길을 경험한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며, "나"로 표현한 예수가 보수주의자인지 진보주의자인지, 예언자인지, 혁명가인지, 랍비인지, 종말론자인지에 예수를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나는 길이다"라는 의미가 달라집니다. 시한부 종말론자가 "예수는 길"이라고 했을 때, 그 길은 종말을 향한 길이 되겠죠. 사회운동가가 그렇게 했을 때, 그 길은 사회변혁의 길이 됩니다. 예수의 비유는 은유들로 묶여 있기 때문에 의미는 더욱 다양해지겠죠.

이런 맥락에서 은유는 의미론적 혁신을 일으키므로 제가 시인예찬을 했던 것이죠. 여기서 말하는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가 "기존/기성" (conventinonality)으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은유가 더 이상 우리에게 감흥을 주지 않으면 상투어 (cliché)가 되어 버립니다. 즉 "그대는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요, 앙꼬없는 찐빵이다"라는 은유가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은유가 집단적으로 공유되고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의미를 주는 것을 "상징" (symbol)이라고 합니다. 종교가 혁신이 되기 위해서는 상징은 변화될 수 있고 새로운 은유로 대체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둬야 합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2-01-24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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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서의 은유]는 철학책이나 언어학책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은유적 표현들을 분류하며 설명을 하고 있는데, 결국 철학적이며 언어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이 빠졌는데, 책은 돌려보라고 있는 것이니 언제든지 빌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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