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 등록일: 2026-02-22
소설 세여자.. 를 연속으로 두번째 읽고 있는데요 (다 끝내면 마지막으로 한번 더 읽으려고 해요)
2권에서는 해방이후의 상황이 펼쳐지는데, 일제치하에서는 노선이 다르고 사상이 달라고 항일운동 하나로 뭉쳤는데 일제가 떠나고 나서 독립 운동하던 사람들이 사분오열 분열되고 신탁통치안에 대해 찬탁, 반탁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감정적으로 나서면서 일제치하보다 상황이 더욱 안타깝게 흘려갑니다.
항일운동하던 송진우씨가 1950년 12월 암살당하고 조금 지나 한민족의 영원한 지도자 여운형 선생도 테러로 세상을 뜨면서 독자의 마음을 너무 아프게 만듭니다. 이후 김구 선생도 암살로 죽고 남북전쟁으로 치닫게 되는데요
2권 124쪽에서 여운형 선생의 말이 많이 맘에 와 닿아 이곳에 옮깁니다
"3상회의 발표문에서 다들 신탁통치 문구만 가지고 흥분하지만 남과 북을 임시정부 만들자는게 핵심이야. 신탁통치 기간이 5년이라고 되어 있고 더 짧아질수도 있다고 했어. 만약 이것을 소박한 민족감정으로 배격하면 한반도가 갈라지고 30년 가도 통일되기 어려울수도 있네 또 남북내전으로 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나" 라고 했더니 옆에서 듣던 사람이 "설마 전쟁까지 가려구요"라고 했지만 설마가 사람을 잡게 되었죠.
몽양 여운형 선생은 김용옥 교수의 책 <새 시대 새 지도자 몽양 여운형>책에서 자세히 다루어 지고 있는데 이것도 한민족 필독서입니다.
해방이후 한민족으로 여러파로 갈라지면서 사분오열되고. 특히나 좌파우파로 나뉘어 민족의 미래, 대의를 생각지 않고 다들 짧은 생각을 자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이 전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면서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과거 항일운동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던 민족 지도자급 영웅들이 동포의 손에 의해 목슴을 잃는데요
여운형 선생은 좌우 모두 극단으로 치닫는것이 안타까워 중도를 외치며 이를 바로 잡으려 했으나 이런 상황에서 중도라는 건 결국 좌에서도 우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역적이 될뿐 여운형 선생은 해방이 되었으나 정작 설자리를 잃고 테러로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어요
2026년 대한민국 사회도 해방직후의 대립과 갈등, 혼돈과 다를바 없고 모두 좌우익으로 나뉘어 감정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작년에는 정치인 테러까지 발생했는데 한국전쟁이후 처음 있었던 정치인 테러라서 한국사회가 얼마나 심각하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가늠해 보수 있는 상황입니다. 부디 과거 역사를 되돌아 보고 반성하고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할것 같아요. 비극적인 역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말이죠.
위에서도 썼지만 무용가 최승희씨가 해방이후 월북해서 예술가로 큰 업적을 남겼으나 얼마못가 1959년 남편 안막이 종파분자로 숙청당하면서 최승희도 활동에 큰 제약을 받았어요.
김일성 유일체제, 신성한 존재로 부각시키면서 맘에 안드는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처단, 숙청했는데요..
종군기자 이인모 노인. 소개글
https://cndreams.com/cnboard/board_read.php?bIdx=1&idx=8237
전쟁때 인민군 종군기자로 참가했다가 휴전후 포로로 잡혀 평생을 감옥에서 지낸분들이 많은데 남한품에 안기겠다는 전향서에 서명만 하면 출감되는데, 끝내 신념과 의지를 굽히지 않고 감옥에서 평생 살았던 분들이 있는게 그중 한분이 이인모 노인이예요..
87항쟁 이후 민주화가 되면서 이분이 출감이 되었고 (전향서는 끝내 쓰지 않음) 이후 북으로 송환되어 올라가서 영웅대접을 받았어요.
그런데 말이죠. 자신이 평생 감옥에서 썩으면서 지켰던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의 신념과 지조가 막상 북에 가보니 김일성을 신격화 하고 인민들은 고통에 빠진 모습을 보고 이를 강하게 질타했다가 이분마저도 숙청당했다는 정말 씁쓸한 뒷 이야기도 있어요.
21세기에 삼대세습왕국이라니.. 이제 그의 딸을 왕으로 시켜 4대 세습으로 가려고 한다는데... 어찌하오리까. 한민족의 이 절반땅을..
혹시 궁금해 이인모 노인에 대해 AI에게 물어보았더니 숙청된건 사실이 아니며, 돌아가실때까지 북에서 영웅으로 대접받으며 생을 마감했다고 하네요
답변입니다.
비전향 장기수로 34년 동안 한국에서 수감 생활을 하다 1993년 북한으로 송환된 **이인모 씨가 북한에서 바른 소리를 하다가 숙청당했다는 소문**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북한 체제 선전의 핵심 인물로 대우받으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정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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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북한에서의 극진한 대우
이인모 씨는 송환 직후 북한에서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추앙받으며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습니다.
* **김일성의 직접 방문:** 송환 직후 입원 중이던 병원에 김일성 주석이 직접 찾아가 위문했습니다.
* **영웅 칭호 수여:** '공화국 영웅' 칭호와 함께 금별메달, 국기훈장 제1급 등 북한 최고의 영예를 얻었습니다.
* **사회적 위상:** 그의 이름을 딴 학교가 생기고,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와 소설이 제작되는 등 체제 우월성을 홍보하는 상징적 인물로 활용되었습니다.
### 2. 숙청 루머가 생긴 배경
질문하신 '숙청설'이 돌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추측 가능한 배경이 있습니다.
* **외부와의 접촉 차단:** 고령과 지병(뇌질환 등)으로 인해 실제 활동량이 적었고, 북한 당국이 철저히 관리했기 때문에 "보이지 않으니 숙청된 것 아니냐"는 외부의 추측이 있었습니다.
* **남한 출신에 대한 편견:** 과거 월북 인사들이나 남로당 계열이 숙청된 역사적 전례(최승희, 박헌영 등) 때문에 이인모 씨 역시 비슷한 길을 걸을 것이라는 막연한 예상이 돌기도 했습니다.
* **가짜 뉴스나 와전:** 송환 이후 북한 체제의 실상에 실망했을 것이라는 남한 내 시각이 결합되어 "바른 소리를 하다가 미움을 샀다"는 식의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 3. 실제 최후
이인모 씨는 숙청이 아니라 **2007년 6월 16일, 89세의 나이로 노환에 의해 사망**했습니다.
* **사회장(葬) 거행:** 북한은 그의 사망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평양 서장클럽에서 성대한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 **애국열사릉 안치:** 현재 그의 유해는 앞서 언급하신 무용가 최승희와 마찬가지로 평양의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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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하자면:** 이인모 씨는 북한 체제에 의해 끝까지 **'성공한 영웅'**으로 관리되었으며, 숙청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그를 숙청하는 것보다 살아있는 '충성의 상징'으로 두는 것이 정치적으로 훨씬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혹시 이인모 씨 외에도 당시 함께 거론되었던 다른 비전향 장기수들의 송환 이후 삶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신가요?
이 책은 한국전쟁 직전, 전쟁중에 그리고 전쟁 끝난후의 북조선에 대한 상세 상황이 잘 그려져 있어요. 남한에 소설중 이런 상황을 다룬건 없었던것 같은데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정말 잘 그려냈어요전쟁 발발 2년정도 지나서의 북조선(조선국)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서술이 되고 있어요. 책을 읽는동안 너무너무 속상하고 마음 아픕니다.
2권 267쪽에서 발췌했구요 (괄호는 제가 쓴 내용입니다)
김일성이 말한 사흘간의 속전속결은 이미 물건너 갔고 압록강, 두만강 이북으로 축출당하는 처지를 간신히 면했지만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인민군들이 퇴각해 쫒기다가 중공중의 참여로 다시 남하하고 있는 중..) 중국과 미군(유엔군)이 붙어버렸으니 전쟁은 어느 세월에 끝날지 예측불허가 되었다. (중공군에서는 마우쩌둥의 아들도 참전했다가 미군폭격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무수한 인민을 희생시키고 북반부 도시들을 잿더미로 만든 책임을 북조선에 누군가는 저야 했다. (원래는 김일성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걸 남로당 박헌영및 몇몇사람에게 전가해서 추출하는것으로 추후 마무리 함.. 인민군이 남하했을때 남조선의 남로당이 적극 후원을 못해서 전쟁에 졌다고 발뺌하는것을 처리함. 눈가리고 아웅식인데. 여기에 대해 항의했다마는 쥐도새로 모르게 숙청을 당하므로 아무도 끽소리 못하게 됨)
전쟁을 발의한 것도, 밀어붙인것도 김일성이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또한 전쟁은 단기간에 끝날것이며 미국은 개입하지 않을것이라고 스탈린과 마우쩌뚱을 설득했지만 일성의 예측은 빗나갔다. 스탈린이 시골청년 하나를 발탁해 북조선에 권력을 안겨놓았더니 이 청년이 기고만장한 나머지 전쟁을 벌여 파국을 자초한 셈이다. 허정숙은.. 일성이 마흔살만 넘었어도 (당시 30세)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했다.
2권 310쪽에 내용입니다. 괄호는 제가 넣은 코멘트입니다
한국전쟁은 3년 1개월만에 끝났다. 이 전쟁의 단초는 1945년 2월 얄타에서 루스벨트가 스탈린에게 태평양전쟁 참전을 요청한 일이었다.
미국은 태평양전쟁이 한참 더 갈거라 보아 소련을 끌어 들었지만 전쟁은 소련이 파병한지 일주일만에 끝났다.
(만약 소련을 끌어들이지 않았으면 한반도는 해방후 반으로 나뉠 일도 없었고 분단, 전쟁도 겪지 않아도 되었는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었던가.. 책을 읽는 동안 애석함을 누를수가 없네요. )
사실상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미국 핵폭탄 때문에 전쟁이 끝났으니 소련은 다된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셈이 되었다.
한반도에 대한 권한을 갖게 된 두 나라 미국과 소련을 38선을 기준으로 임시 분할점령하기로 했고 미군 대위 둘이서 38선 아이디어를 짜내는데는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2권 358쪽에서 발췌.. (괄호 내용은 제가 기입한거구요)
허정숙이 생각하는 장면입니다 중국혁명이 몇년만 빨랐어도 어떻게 되었을까? 1943년 11월 카이로의 회의 테이블에서 루스벨트, 처칠과 함께 장개석 대신 모택동이 앉았다면 어땠을까?스탈린이 아니라 모택동(마우쩌둥)이 북조선 건국의 산파역활을 맡았다면 어떻게 달랐을까? 김일성이 아니라 최창익이 수상이 되었을까? (소련은 30대 젊은 소련장교인 김일성을 북조선 수령으로 앉혔는데 이게 한민족 비극의 시작인거였죠,
최창익을 전쟁이후 박헌영과 더불어 숙청당했어요)정숙이 마지막으로 창익의 소재를 탐문했을때, 그는 이미 돼지농장에 있었다. 다른 곳으로 재배치도 되지 않았다. 정숙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는 조용히 처리된 것이다
2권 259쪽..허정숙 앞에서 최창익이 숙청전에 했던 말...1955년 전쟁이 끝난후 김일성이 정적을 숙청해 나갈 당시.."조선에서 우리는 공산주의 시작의 시작과 끝을 모두 보았구요. 이제 북조선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사회가 아니요..
그것은 어쩌면 김일성이나 스탈린 같은 특정한 개인의 문제만은 아닐지도 모르겠오.이상적인 제도를 감당하기에 우리 인간이 너무나 이기적인 존재인지도, 또한 우리가 유물론이라 믿었던 것이 어쩌면 일개 관념론이었을지도. 우리는 결국 미국을 보지 못한 콜럼버스들이었소."(이 말은 미국 대륙은 발견했으나 이상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땅만 밟었던 사람으로 남았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끝으로.. 어제밤 세여자를 다 읽었어요. 연속으로 두번 읽었는데요. 추후 기회 닿으면 한번 더 읽으려구요. 책은 두번 세번 반복해 읽을수록 책속의 내용과 의미가 제대로 확실히 전달이 됩니다. 한민족의 가장 비극적이었던 시기중 하나인 해방, 분단, 전쟁의 내용을 한번더 되짚어보고, 세여자 소설속의 분위기에 좀더 취해보고 싶어.
조정래님의 태백산맥을 꺼내 어제부터 시작했어요. 이번이 8번째 읽는것 같은데 가장 최근이 2019년도에 읽은거니까 7년만에 다시 잡은거네요. 1999년 이민올때. 이 책이 낡아서 10권짜리 한질을 새로 사가지고 왔는데 이것도 30년이 흐르고 여러번 읽으면서 다시 낡아가네요.
2권. 352쪽에서
방학세, 최창익이 대화 나누는 장면.. 둘다 나중에 일성으로부터 처형당했다.
"개인숭배 정도가 아니라 아버지 할아버지 아내까지 가족 숭배아닌가, 완전 봉건왕조시대 판박이야. 이러나 나중에 김일성이가 아들 정일이한테 북조선을 물려주겠다는 거 아냐? "
(당시 공산주의를 숭배했던 사람들 조차도 아들에게 물려줄꺼라고는 상상도 못했답니다. 주변 공산국가들조차도 자식에게 나라를 승계한 건 북조선밖에 없었구요)
"에끼, 이 사람 농담도!! 천하의 스탈린도 그런짓은 안했네. 크게 될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정일이 그 아이를 좀 봐. 어디 큰 인물 되게 생겼냐고? 까불까불해가지고서 "
"까불거리는 거야 애들이 다 그렇지, 정일이는 둘째치고 김일성 수상이 저렇게 손에 피를 많이 묻혀서 어디 제명에 죽겠어"..
(이렇 대화가 오고 갔으나 김일성은 제명에 죽었고, 아들, 또 그 아들까지 3대 세습이 이어지고 있는 지구상에 희귀한, 해괴망칙한 일이 벌어있고 있는게 바로 이 한반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