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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김창한 선생님께
작성자 안희선     게시물번호 -1663 작성일 2005-08-15 01:31 조회수 1179
 
졸시, '가고 싶다'에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적해 주신, '절망의 깊이'에 대해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삭막한 시대에, 그래도 시의 존재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아마도 삶의 청신감淸新感을 고양하는데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소위, 시를 쓴답시며... 삶이 고단하다는 어설픈 핑계로
그러지 못하는 나 자신을 탓해봅니다.
 
게시판에 올려주신, 관음보살의 따뜻한 미소에서
마리아의 한없는 사랑도 읽혀집니다.

늘, 건안하실 것을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안희선의 "고향론"     - 김창한
 

    
가고 싶다 / 안희선
 
 
깊은 하늘보다 고요해서
차라리 슬픈 침묵
 
낯선 이국(異國)의 풍경 속에
문득, 삶이 외롭다
 
이제는, 그곳에 가고 싶다
내 모든 그리움이 숨쉬는 곳으로
 
너를 떠날 때 왜 그리 마음이 아팠는지,
비로소 알 것 같다
 
남겨둔 너는 참, 환한 빛이었지
 
내 안의 오랜 어둠을 지나,
다시 너에게 가고 싶다
 
내 꿈이 머무는 그리운 빛의 세계,
네가 나를 기다리는 곳으로
  
 

 
이 시에는 해답이 없다. 낯선 공간에 남아 있는 자의 절규다.
그러므로 이 시가 지향하는 것이 표층적으로 보더라도
고향의 향수라고 단정짓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
이 시가 고향의 향수로 표상될 수 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 시를 고향 향수로 보기에는 너무 아깝다.
아마도 그래서 시인이 시제를 “돌아가고 싶다”는 말 대신 “가고 싶다”라는
모호한 표현을 의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하니, 은유의 표층에서 벗어나 상징의 깊이로 들어가 보자.
 
이 시에서 우리는 공간과 시간의 분열처럼, “자아”라고 이름지을 수 있는 존재의 분열을 본다.
1-2연은 철저한 공간의 영역이다. 이 공간은 진공관과도 같다.
왜냐하면 이 공간에는 시간이 없어 텅비어 있기 때문이다.
 

1연: 깊은 하늘보다 고요해서
        차라리 슬픈 침묵
 
2연: 낯선 이국(異國)의 풍경 속에
        문득, 삶이 외롭다
 

결국, 이 두 연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삶이 비역사적 공간 속에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 공간은 우리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무한의 하늘보다 깊다고 표현되는데 절망이다.
그리고 그 절망이 너무 무겁고 깊다.
그런데 그런 공간이 슬픔으로 경험되는 것은 아이러니며 파라독스다. 
 
이러한 텅빈 공간의 경험이 설명되는 곳이 바로 제 2연이다.
독자는 1연의 무거운 시어에 눌려 있다가 2연에서 어느 정도 안도감을 갖는다.
"슬픈 침묵”의 이유가 바로 삶의 소통성이 단절된 공간인 “이국(異國)”의 풍경 속에
시인이 던져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다름” (異國 )이 시인에게는
“낯선” 것으로 강조되는 것은 당연하다.
 
제 3연은 이러한 전반부의 공간 경험에서 시간 경험으로 가는 전이 (transition)다
 
전반부의 비소통성과 소외의 경험은 시간이 결여된 텅빈 공간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면,
후반부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가는 과정, 즉 삶의 회복과정이라고 할 수있다.

 마치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소설에 빠지는 것은 소설 속의 시간을 따라가는 것이듯,
 이러한 시간을 따라가는 것은 바로 내 삶의 경험적 실재로 만들어 가는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3연을 보자.
 
”이제는, 그곳에 가고 싶다
내 모든 그리움이 숨쉬는 곳으로”
 
 
시간이 흐른다. 삶이 흐른다.
도무지 시간의 공기가 흐르지 않은 낯 선 공간을 벗어나서
“내 모든 그리움이 숨쉬는 곳으로” 가기를 갈망한다.
그리움의 숨이 쉬는 곳은 텅빈 공간을 벗어나 삶의 흐름을 경험하는 것,
즉 시간의 단절의 회복이다.
 
그 단절의 회상이 제 4-5연에서 구구절절하다.
 
”너를 떠날 때 왜 그리 마음이 아팠는지,
비로소 알 것 같다
남겨둔 너는 참, 환한 빛이었지”
 
그러므로 제 4-5연은 우리 삶의 존재 방식인 시간과 공간이 어우러지는 곳이다.

제 4연에서의 “이별의 아픔”은 다름아닌 시간의 단절이다.
이것은 우리를 소외 또는 비존재의 삶의 형식으로 빠뜨리고 만다.
 
그래서 제 5연에서 내 삶의 근간이 되었던 “너”라는 존재가 
“환한 빛”으로 표상되는 것은 당연하다. 
 
제 6연의 ”내 안의 오랜 어둠을 지나, 다시 너에게 가고 싶다”는
제 4-5연의 상실을 재확인 하는 작업이다.
낯선 이국 땅에서의 내 삶은 내 삶의 의미를 채우지 못하는 텅빈 공간이었으므로
“환한 빛” 대신 “오랜  어둠”이었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다.
시인이 간직한 삶의 현실성은 기껏해야
”내 꿈이 머무는 그리운 빛의 세계,
네가 나를 기다리는 곳으로”
즉 과거의 회상에서만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시인의 미래의 삶은 떠나기 전의 기억 속에 사는 것이다.
 

그렇다. 어쩌면, 우리는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한다.
마치 미래에 삶의 “실재”가 있다고 착각하고 산다.
정말 그런가?
“문득, 삶이 외롭다!” 이런 실존적 고백이 그대에겐 언제 찾아 올까? 
 

도대체 삶이란 무엇인가?
미래를 향해 직선처럼 달려가는 그대.
그대는 혹시 텅빙 공간 속에 떨어져 허우적거리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돌아갈 곳, 내 삶의 소중한 기억을 간직한 곳이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
 

그것은 낯선 異國 에서 빚어 낸 새로운 회상의 실재.
”내 꿈이 머무는 그리운 빛의 세계, 네가 나를 기다리는 곳으로!”
이것이야 말로 삶의 현상학이 안겨주는 진리일까?
 
 

                                                                                                                       김창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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