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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민초 해외 문학상 심사평
작성자 민초    지역 Calgary 게시물번호 3076 작성일 2010-09-06 06:38 조회수 1742
<제3회 민초 해외문학상 수상작>

심사위원장 : 김 봉군 문학박사 (전 카돌릭대학교 문과대학장, 전 한국 문학평론가협회회장)
심사위원  :   이 양우 시인 (자선 사업가 충남 육필시공원 재단 이사장) 안 혜숙 소설가 시인 (문학과 의식 발행인)
                  조 성국 시인 (시조보급 창작 교실 운영)  정 세봉 소설가 (중국 소설가 협회 회장)


심   사   평

낯선 여행길에서 쉬이 곁을 주는 사람과 자리를 같이하면 천릿길도 지루하지 않다. 수필은 비교적 쉬이, 품위 있게 곁을 주는 문학 장르다. 다른 글에서도 썼듯이, 낯설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수필은 옛 철길의 기적 소리처럼 여운을 남긴다. 수필의 담론이 깊은 감동을 품고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문학의 궁극적 기능은 감동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동은 기쁨에서도, 슬픔에서도 온다. 수필의 소재가 평범한데도, 주제가 참신하여 감동을 주는 수가 있다. 이 때 수필 작가의 독창적인 관점이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적절한 상관물들이나 짜임새 있는 구성 때문에 감동적인 수필도 있다. 서정 수필의 서정이 향맑아서, 중수필(重隨筆)의 지식 덕목과 예지(叡智)가 따사롭고 깊이가 있어서 감동적인 수필은 더 귀하다. 문체가 산뜻하고 감칠맛나며 다채로우면서도 내용이 허하지 않아서 정이 가는 수필도 있다. 이 경우 속 빈 말의 성찬(盛饌)은 금물이다.

  이 모든 요건에 앞서 중요한 것은 글의 통일성(unity)과 알찬 내용이다. 동원된 여러 화제나 상관물들을 모아 한 가지 주제로 통일시키는 일이야말로 글쓰기의 제일 과제다. 담론이 옆길로 빠져 나가는 듯하다가도, 재우쳐 수습하여 본래의 화제에로 귀환시키는 재치가 수필가에게는 요청된다.

2.도천(陶泉) 이동렬 사백(詞伯)의 에세이집 ≪청고개를 넘으면≫에 실린 71편의 작품을 감명 깊게 읽었다. 에세이집을 8권이나 세상에 내어 높은 평판을 확보한 분의  글이라서 71편의 글을 두고 우열을 가린다는 게 의미가 없어 보인다. 무작위로 5편만 골라 정독해 보기로 한다.

  제1부의 <운명의 심술>은 마치 사마천의 ≪사기≫와 닮았다. ≪사기≫의 일관된 정신은 천도(天道)에 있었다. 하늘은 선한 사람 편이냐 악한 사람 편이냐 하는 것이었다. 사마천은 후자 편에서 역사를 보았다. <운명의 심술>에는 두 가지 실화와 한 가지 허구가 예시되어 있다. 강간, 살인죄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트러스콧과 죄를 지었으면서도 용케 법망을 빠져 나온 심슨의 경우는 실화다. 세 번째 예는 톨스토이의 단편 <신(神)은 진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기다려야 한다>의 슬픈 주인공 이야기다. 착한 상인 아시오노프는 살인 누명을 쓰고 억울한 감옥살이를 하다 죽어 간다. 진범이 나타나 무죄가 인정되었으나, 때는 늦었다. 정의(正義)나 선(善)이 이긴다는 ‘사필귀정’이란 대체로 현실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이 � �글의 주제다. 작가의 세속사관이 반영된 글이다. 서정적, 서사적 수필이 아닌 비평적 수필이다. 문체가 중후하되 간결하며, 적합한 자료(상관물)의 수집과 통일성이 있는 내용 전개에 성공했다. ‘천도’의 역설적 진리에 감동하는 도천 선생의 글을 기대하기로 한다.

  제2부의 <청고개를 넘으면>은 작가의 고향 얘기다. 작가는 우탁의 호에서 유래한 고향 역동(易東)과 퇴계의 역동 서원 이야기로 말문을 연다. 고향의 청고개에서 바라다보이는 청량산과 도산서원, 수몰 지구가 된 역동의 빈집, 아스팔트 자동차 길이 된 옛 쉼터가 모두 청고개에 서린 고금(古今)의 인간사(人間事)와 결부되어 있다. 이 글에 인용된 퇴계 이황의 시조 ‘청량산 육륙봉을’의 동아시아적 자연 낙원(Greentopia) 이미지와 진달래에 얽힌 어린 시절의 기억이 향수(鄕愁)를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이중환의 풍수지리서 ≪택지리≫에서 청량산 대목까지 찾아낸 작가의 학자다운 고증의 자세는 글쓰는 이의 귀감이 된다. 그의 문체는 군더더기가 없고 간결하면서도 품격이 있어 허하지 않다.

청고개 마루에 오르면 두세 평 크기의 편편한 풀밭이 있고, 저 멀리 왼쪽으로는 조선 명종 때 퇴계(退溪) 이황이 강론하고 시상(詩想)에 잠기던 도산서원이 보인다. 서원 밑으로는 강원도 태백 황지(黃池)에서 발원하여 수많은 산모퉁이를 비

집고 돌아돌아 내려온 물줄기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그 물줄기는 조선 중종 때의 명신 농암(聾巖) 이현보가 애일당이라는 정자를 짓고 늙은 부모를 봉양하며 살던 분천(汾川)이라는 마을 앞에 이르러서는 물살이 조용해졌다가, 퇴계의 수제자 월천(月川) 조목이 살던 동네 다래[月川] 앞에 이르러서는 다시 여울을 이루며 흘러간다.

  도천 선생의 글쓰기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대목이다. 풍경의 묘사가 적실(適實)하고, 그 속에 풍부한 고사(古史), 일화(逸話)를 담고 있는 것이 도천 선생의 수필이다. 이러다 보면 문체가 심히 건조해질까 하여 도천 선생은 스스로 쓴 서정시(가곡) 한 편을 곁들이며 글을 마무른다.

  제3부의 <변절>은 역사적 변절 얘기다. 계유정란 때 세조를 왕위에 앉히고자 단종을 몰아낸 변절자 신숙주, 정인지 등의 배신을 다룬 글이다. 세종과 문종의 총신(寵臣)이었던 이들의 변절 행위를 작가는 신랄하게 질책한다. 그는 그들의 널리 드러나지 않은 악행들을 일일이 열거한다. 백팽년의 아내 옥금(玉今)은 정인지가, 김종서의 측근 조완근의 아내 소사(召史)는 신숙주가, 유성원의 아내 미치(未致)와 그 딸은 한명회가 차지했다는 것을 이덕일의 글에서 인용한다. 성삼문 등과 함께 세종대왕의 고명 대신(顧命大臣)이었던 신숙주가 단종비 송씨를 첩으로 데려가려 했던 사실을 윤근수의 ≪월정만필(月汀漫筆)≫에서 찾아내기까지 한다. 신숙주의 손자 신광한이 대제학, 우‧좌찬성까지 지낸 걸로 보아, 하늘이 악인을 징벌한다! 는 ‘천도론’을 작가는 믿지 않는다. 대한제국을 일본에 통째로 바친 을사 오적 얘기도 마찬가지다.

  도천 선생은 역사적 진보주의자들의 상대주의적 사실사관(史實史觀)에 동조할 수 없는 인물사관(人物史觀)의 신봉자다. 그에게 건국대 신복룡 교수의 신숙주 옹호론은 한갓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는 수필을 여기(餘技)로만 쓰는 것 같지 않다. 가붓한 유머나 위트를 요구하기에는 그의 어조(tone)가 너무나 진지하다. 그렇다고 그가 마냥 엄숙주의자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글이 절도(節度)를 잃지 않는다는 말이다.

제6부의 <꽃바구니>는 사제 간 정(情)의 문제를 제재로 한 수필이다.
   아침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우리가 사는 콘도미니엄의 수위 아저씨로부터 누가 내 앞으로 꽃을 보내 왔다는 전갈이 왔다. 받아보니 7년인가 8년 전에 한국 E여자대학교에 나가 있을 때 내 강의를 들었던 학생 두 사람이 함께 보낸 꽃바구니였다. 놀랍고 감격스러웠다.

한국에서는 크게 관심을 끌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 ‘사건’화한 것이 이 글의 내용이다. 작가는 캐나다 W대학교에서 23년, 한국의 E여자대학교에서 6년 반을 근무했다. 그런데 캐나다 W대학교 졸업생 가운데 전화나 편지로 안부를 묻거나 ‘우정 방문’을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 E여자대학교 학생의 경우와 다른 까닭이 무엇이냐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관심을 끈다.

  대체로 동양 문화의 모체(母體)가 된 중국은 예부터 농사를 짓고 사는 농경 사회였다. 땅을 개간하고 물길을 내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데는 대부분이 핏줄로 연결된 마을 사람들과 서로 도와 주며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절대 필요한 생존책이었다. 사람이 한곳에서 오랜 세월 화목하게 살다 보면, 쌓이는 정(情)은 두터워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서양 문화가 발원(發源)한 그리스(Greece)는 바다를 옆에 끼고 있는 나라다. 그러니 농사를 짓기보다는 사냥과 목축, 그리고 무역을 주 생활 수단으로 삼았다. 농경 국가보다는 도시 국가 형태의 정치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식인들은 이곳저곳 자기들이 좋아하는 도시에 가서 살 수 있었으니, 동양 사회에 비하여 거주 이전이 더 빈번했다. (중략) 다른 태도와 가치, 다른 정치 체제와 접촉할 기회가 많았던 이유로 사람들에게 자기 생각을 아무 주저 없이 솔직하게 털어 놓기가 쉬웠다. 즉 개인은 자기 주위 사람들과 화목한 관계 유지에 신경을 쓸 필요가 적었다는 말이다.

문화 소론(文化小論)이다. 작가의 학자적 분석력과 문장 구성력이 여느 수필가의 그것보다 탁월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글이다. 여기서는 생략되었으나, 인지심리학자 니스벳(R. Nisbett)의 견해까지 개입했으니, 객관성과 완결성이 돋보이는 글임에 틀림없다. 그는 독서가다. 구양수의 삼다설(三多說)이 허언(虛言)이 아니다. 또한 추상적 진술과 구체적 사항을 결합하여 글의 완결성을 높이는 것이 도천 선생 글쓰기의 특성이다. 그런 까닭에 그가 그의 글을 ‘수필’이 아닌 ‘에세이’라고 했을 법하다. 논리와 정감의 화학적 융합에 실패하고 논리 일변도로 치달을 때, 중수필은 에세이가 아닌 논설이나 논문으로 패착(敗着)하기 쉽다. 도천 선생은 그걸 아는 노련한 문장가다.

꽃바구니에서 은은한 향기가 퍼진다. 향기여, 오래 가거라.

  도천 선생은 문학 전공자가 아니면서도, 문학 작품이 감수성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아는 작가다. 이 끝맺음이 그걸 보여준다.

  제7부의 <아내여 건강하소서>는 부부간의 배려와 사랑을 깨우치는 글이다. 구조가 탄탄하다기보다 자료의 활용력이 돋보이는 노작(勞作)이다. 도천 선생은 만사(輓詞)‧만시(輓詩)집 한 권과 안동대학교 박물관에서 본 조선 여인의 애절한 편지 한 통을 자료로 얻어 한 편의 수필을 썼다. 이 수필이 관심을 끄는 것은 흔히 알려지지 않은 낯선 글들 때문이다. 아내를 위한 도망시(悼亡詩), 친구를 위한 도붕시(悼朋詩), 참척(慘慽)의 슬픔을 적은 곡자시(哭子詩),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는 자만시(自輓詩)는 구하여 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더욱이 남편의 죽음을 애도한 옛 여인의 글은 안동의 것이 유일하다.

  이 글의 주제가 아내의 건강, 장수를 기원하는 것인바, 도천 선생이 우선 인용한 것은 조선 숙종 때의 문신 채팽윤의 만사다. 인용문 두 편만으로도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채팽윤의 진정이 짚인다. “오직 두 눈 뜬 채 이 긴 밤을 지내며 평생에 고생한 당신에 보답하네.”란 당나라 원진의 시가 심금을 울린다. 도천 선생은 채팽윤뿐 아니라 김정희, 이달, 백광훈, 강세황, 이건창, 신위, 채제공 등 ‘기라성 같은 문장가들’이 아내를 잃고 쓴 도망시가 있음도 알린다. 독서의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남편의 관 속에 넣은 애절한 아내의 글은 보조 자료로 활용된 것이면서도! , 그 희귀성으로 하여 관심을 끈다.

  이 글의 핵심은 종결부에 있다. 아내의 건강 장수와 부부간의 정의(情誼) 말이다. 남성 중심의 옛 시절에 대한 반성과 아내를 배려하는 마음결은 여심(女心)을 흔들고, 부부애를 새삼 곱새기게 하는 글이다. ‘세월’이란 분류 항목 중에 들어 있는 것이기에 데면데면히 읽고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3.도천 이동렬 박사의 수필(에세이)들은 크게 낯설지 않으면서도 독자들에게 곁을 주는 여유가 있고, 담론의 품격이 높다. 안동 출신 선비의 풍모가 반영된 결과라 여겨진다. 전통 한시문(漢詩文)에 조예가 깊고, 동서양 일화와 지식을 섭렵한 광범위한 독서력에 경탄이 인다. 한마디로 말하여 박학다식한 학자요 중수필의 대가다.

  도천 선생의 수필은 문체가 간결하면서도 중후하며 의미의 충전도가 높다. 지식인뿐 아니라 대중을 아우르는 포용력도 갖추었다. 가령, 그가 인용한 대중 가요의 가사 같은 것이 글의 품격을 훼손하기보다 지식인과 일반 대중을 정감(情感)의 공간으로 끌어들여 포용한다. 독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여, 문학 현상론적 요청에 부응한다는 뜻이다.

  모처럼 내용이 충실하고 통일성이 있으며, 구조가 탄탄한 품격 높은 중수필을 읽게 된 것은 독자들에게 기쁨 이상의 감동을 줄 것이다. 도천 선생의 수필집 ≪청고개를 넘으면≫의 작품들이 민초 해외 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된 것에, 심사 위원들과 독자들 모두에겐 이견(異見)이 없을 것이다. 수상을 축하하며 건필(健筆)을빈다.

  
제3회 민초 해외 문학상 운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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