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부호를 사용했듯이 이건 제 표현은 아닙니다. 오늘 아침 한국에 사는 어느 분이 제게 메일을 보내 질문한 내용입니다.

저는 종교나 서양고대사를 공부한 사람이 아닙니다. 한마디로 문외한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의견을 취합하고자 이 글을 올립니다.

그 분이 제게 보낸 메일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1.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참 그 시대에 놀라울 정도로 합리적인 사회체제를 구성했구나 느꼈다는 것
2. 특히 종교문제와 관련한 각종 칙령을 읽고 감동 받았다는 것.
3. 적어도 그 칙령들에서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가져야 할 보편적인 자유와 존엄을 최대한 인정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는 것
4. 거기 비하면 그 뒤에 도래한 중세시대는 야만적인 암흑시대가 맞구나 싶었다는 것
5. 합리적인 로마에서 기독교도 수가 왜 그렇게 늘어났는지 이해가 안 갔다는 것
6. 차라리 로마가 그 따위 “야만적”인 기독교가 아닌 로마시대의 유산을 그대로 계승했더라면 오늘 이 세계가 지금보다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는 것

등등 아주 소박하고 진솔한 고백이었습니다. 아마 질문하신 분이 읽었다는 로마인이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문가가 자료를 토대로 하는 말이 아닌, 한 아마추어가 주어들은 말들을 통밥으로 엮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견임을 전제’한 뒤 다음과 같은 내용의 답신을 보냈습니다.  

1. 미국 사회학자 Rodney Stark 의 The Rise of Christianity 라는 책이 기독교의 초기성장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AD40 년 경부터 매년 평균 3.5 % 정도씩 기독교도들이 늘어나 콘스탄티누스 시대인 AD 300년 경에는 전체 인구의 10 % 인 6 백 만 명 정도로 늘어났을 거라는 추정 한다는 것.
2. 모든 종교 문화에 관대하고 다원주의 색채가 강한 로마제국에서 이 정도면 대주주(?) 이고, 더구나 충성도와 결집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한 이 정도 인구집단은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을 거라는 것.
3. 초기 기독교도들의 사상은 로마인들에 비해 합리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언행이 중세 유럽이나 21 세기 한국의 상당수 기독교인들처럼 야만적이지도 않았다는 것
4. 내가 로마황제였다면 이 막무가내 유일신교를 국교로 삼아 거추장스러운 공화제를 집어치우고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행세하고 싶은 강한 유혹을 느꼈을 거라는 것.
5. 초기 기독교에 대한 로마의 박해는 후에 기독교 권력에 의해 과장돼서 잘못 알려져 왔다는 것

등등을 일단 써 내려 갔습니다. 그런데 써 놓고 읽어보니 그 분의 가장 중요한 질문인 ‘합리적인 로마에서 “야만적”인 기독교도 수가 왜 그렇게 많이 늘어났는가? 즉 “왜” 에 대한 질문이 빠져 있었습니다.    

참 막막했습니다. 문제는 왜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기독교 인구가 꾸준히 늘어왔느냐는 건데, 2000 년 전 그 당시의 기독교 전파와 사회현상의 관계를 해석하고 설명한다는 건 주어들은 말들을 통밥으로 엮어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2-3 분,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치며 생각에 잠겨있는데 번개 같은 힌트가 하나 떠 올랐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어느 종교학자가 한 말이 생각난 것입니다. 그래서 즉시 이렇게 또 써 내려갔습니다.

1. 다만 당시의 이런 현상이 로마시대 못지 않은(?) 다원성과 합리성 거기다 과학 기술까지 겸비한 21 세기 개명천지에 과학적 세계관 보다는 근본주의 유일신교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한국에서도 진보교단 보다는 보수교회들이 빠르게 성장해 온 이유들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추측할 뿐 이라는 것
2. 그러구 보니까 21 세기의 인류문화도 “야만적”이고 독선적인 종교나 이데올로기에 주도권을 내 줄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것
3. 그러고 보니 로마에서 1700 년 전에 벌어졌던 일들이 남에게 일어났던 옛날 일이 아니라는 것
4. 이런 중요한 문제를 일깨워 줘서 대단히 감사하다는 것

등을 첨가해 답신을 보냈습니다.

제가 이 사적인 메일을 게시판에 올리는 이유는 질문하신 분에게 이런 약속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분야에 대해 좀 더 공부하거나 고민하신 분들의 진지하고 체계적인 견해들을 모아서 다시 답변 드리겠노라고……  

이 분의 진솔한 느낌과 질문에 대한 여러분의 다양한 답변을 기대합니다.

추신 “야만적” 기독교라는 말은 질문하신 분이 느낀 ‘합리적’ 고대 로마의 상대개념으로서 중세 기독교를 의미합니다(인용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