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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비님께, 제 생각을 몇개 담아 봤습니다
작성자 내사랑아프리카     게시물번호 4939 작성일 2011-12-13 16:53 조회수 4017


필비님, 안녕하세요. 아래 어떤 분께 질문하신 것에 대해서 제가 답변을 드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것의 배경에 대해서 저의 의견을 덧붙이고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우선 하신 문제 제기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전에 성서를 보는 두가 지 눈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군요. 제 생각에 종교 경전에서 두가지 해석 방법이 있는데, 첫째는 주석학(exegesis)입니다. 주석은 텍스트 본문의 청자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냐 (What it meant to them)를 지향합니다. 즉 성서의 텍스트가 생산한 자리에서 그 당시의 청자의 의미를 묻는 것입니다. 둘째 해석학 (hermeneutics)입니다. 이것은 과거의 역사적 텍스트가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What it means to us)를 묻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석과 해석학은 분리되기 보다는 상호 보완관계에 있으며, 주석학 역시 해석자의 입장에 따라서 다르게 주석될 수 있기 때문에 주석과 해석의 이분법은 편의상 구분되는 것이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과거의 역사적 텍스트로서의 성서는 주석 주체로도 제대로 이해될 수 없고 해석 자체로도 완전히 이해될 수 없는 한계를 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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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있습니다. 이사야서에는 "하나님 은혜는 값없이 주어진다, 돈 없는 자도 와서 먹어라" 그렇다고 싸구려라는 의미는 아니겠지요. 그런데 은혜는 값없이 주어진다고 하는데 때로는 쟁취하고 침노하는 자가 얻는다 합니다. 야곱이 에서 장자권 빼앗듯 그렇게 얻는거라는거지요. 어떤게 맞는겁니까? 상황에 따라 둘 다 맞는겁니까? 믿는자에게 능치 못합이 없다라고 했으니 믿으면 얻어지는 겁니까? 쟁취하고 침노해야 얻어지는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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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의 필비님, 질문에서 먼저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를 꺼내야 될 것같습니다. 야곱과 에서의 장자권 문제는 창세기 이야기이며, 이 이야기는 거의 전적으로 J 문서 계열이고, E 문서에는 전혀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P 문서에 약간 나오긴 하죠. 히브리 성서의 전승은 단일 전승이 아니라 J 전승, E, 전승, D 전승, P 전승이 있습니다. 나중에 최종 편집자가 JEDP를 편집자의 신학적 의도에 따라 최종편집을 하게 됩니다. D와 P는 후대의 것이니까 여기서는 생략하고 J와 E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jepd.jpg
J와 E의 기록연대는 학자들이 비교적 같은 견해를 갖습니다. 솔로몬이 죽고 (기원전930) 난 다음, 북 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졌습니다. J와 E는 유다와 이스라엘이 갈라진 초기에 쓰여졌다고 합니다. J는 남유다와 관련된 사람이 썼고, E는 북 이스라엘과 관련된 사람이 썼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이것을 분리하지 않고 양 전승 주체를 고려하며 편집했습니다. 그러나 JE를 묶은 편집자가 누구인지 또 언제 기록되었는지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습니다.

창세기 25장 23절의 "너의 태에는 두 민족이 들어 있다. 태에서 나오기도 전에 두 부족으로 갈라졌는데, 한 부족이 다른 부족을 억누를 것이다.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는 J 문서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이것은 남유다에서 생산된 것입니다. 여기서 두 민족은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쪽의 유다가 아니라 남쪽의 유다와 근처의 부족인 에돔 족속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에서는 에돔의 선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 두 형제냐 하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유다 모두 에돔을 민족적으로(ethnically), 언어적으로 같은 혈통을 가진 친족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또한 에돔이 약 2백년간 다윗 왕조 치하에서 있었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그러던 이 에돔 족이 유다의 왕 여러보암 (848-842 B.C.E) 때 독립했기 때문에 본문에 두 민족이 갈라지는 내용으로 반영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다와 에돔이 인접했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했듯이 북 이스라엘의 E 문서에는 나오지 않고 남 유다의 J 문서에만 나오게 된 것이죠. 그러므로 에서와 야곱의 갈등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알고 있는 사람이 그 상황을 반영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당시의 맥락에서 보면 부족간의 갈등으로 보이며, 야곱이 주가 된 것은 야곱이 이스라엘 유다의 조상이며 에돔의 조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해석학이나 설교학에 적용시키려면 이런 역사적 맥락을 거친 다음에 가능하겠지요.

2. 둘째, 이사야 55장 1절의 "하나님 은혜는 값없이 주어진다, 돈 없는 자도 와서 먹어라"도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사야 서는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최소한 3명의 저자가 존재하며, 저자들의 시대도 완전히 다릅니다. 후대에 최종편집이 된 것입니다. 보통 1-39장은 제 1 이사야 (예루살렘의 이사야), 40-55장은 제 2 이사야, 나머지 제 3 이사야에 의해 56-66장은 더 후대에 작성된 것입니다. 55장이 포함된 제 2 이사야의 저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익명적 존재라서 학자들이 편의상 Second Isaiah (Deutero-Isaiah)라고 합니다.

dr0imapbabylon.gif

제 2 이사야는 바벨론 포로기 때 쓰여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남쪽의 유다가 바벨론의 의해 망하고 일부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는데 이것은 유대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신학적 전환기였습니다. 이 기간을 바빌론 포로기 (Babylonian captivity/ Babylonian exile; 587–538 BCE) 라고 하는데, 유일신론 (Monotheism)이 확실히 정립된 시기이기도 합니다. 바빌로니아 제국은 유대인들을 바빌론으로 포로로 잡아가기는 했지만 대우를 잘해서 얼마되지 않은 기간에 상당수의 유대인들이 바빌론 문화에 흡수되어 버립니다. 제국의 초창기는 악랄하기도 하지만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는 필수죠. 심지어 이런 다문화 및 다인종 상황에서 유대인 중에는 바빌론식 성과 이름으로 개명까지 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 가운데 이사야는 자기들의 팔레스틴 귀환을 꿈꾸기 시작하는데 55장은 바로 그런 꿈을 반영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제 1 이사야가 주는 염세적인 내용에서 제 2 이사야는 희망과 낙관주의를 표방합니다. 즉 포로가 귀환될 수 있을 것이란 낙관이죠.

* 참고로, 바빌로니아 제국이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멸망하고, 페르시아의 왕 싸이러스의 칙령으로 나중에 포로 귀환이 일어났을 때, 실은 많은 유대인들이 바빌론에 눌러 앉아 팔레스틴으로 안돌아갑니다. 포로귀환의 신학적 이데올로기를 제공한 두 중요한 인물은 에즈라(Ezra)와 느헤미아(Nehemiah)입니다. 제 2세들이 바빌론처럼 살기 좋은 곳을 버려두고 왜 척박한 팔레스틴으로 돌아가고 싶어했겠습니까? 이는 캐나다 살다가 북한으로 되돌아가는 정도의 수준이었을 것입니다.  역이민 한사람들은 대단한 겁니다. 가서 그들이 한 일이 뭐겠습니까? 바빌론 제국에 의해 파괴된 성전을 재건측하는 것이며, 철저한 민족주의적 국가를 재건하는 것이었습니다. 좀 설명이 필요하지만 바리새파는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율법주의자가 아니라 철저한 민족주의자들이었습니다. 더 극단적으로 간 예수 당시의 에세네파나 젤롯당도 바로 이런 역사적 전승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제와 헬레니즘, 마카베오 독립운동과 하스모니안 왕조의 창조, 로마 제국의 식민지 문제는 생략했습니다.  

Ancient+City+of+Sana-Arabia.jpg

그러면 위의 두 구절을 어떻게 쉽게 섞어서 신학적 진술을 할 수 있겠습니까? 거의 불가능하죠. 성서 텍스트도 진화하고 역사도 발전하는데 그 맥락을 무시하면 안되겠죠. 즉 다시 말해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각기 다른 역사적 기간 동안에서 각각의 성서 텍스트는 어떤 기능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종 편집자의 신학적 의도나 입장은 어떠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3. 셋째는 믿음과 관련되는 것인데 마태복음 11장 11절 등은 역시 그 텍스트가 생산된 자리를 고려해봐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등은 전혀 별개의 공동체에서 형성된 것이고 이 텍스트가 생산된 자리를 무시하고 성서구절을 뚝 떼어내어 한다면 많은 의미를 잃게 됩니다. 기호학적으로 보면, 단어는 연합체와 계열체 안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지 그것을 떠나면 의미를 거의 잃게 됩니다. 위의 구절은 최소한 혼란스런 팔레스틴의 정치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요한이나 예수 모두 묵시론적 비전 (apocalyptic vision)을 갖고 있었던 것이 일반적 해석인데 단순히 지혜자 예수로 본다면, 위의 구절 역시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성서 텍스트의 주석학적 기초가 없이 해석된 것은 귀걸이 코걸이 해석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보수 기독교인들, 여호와증인, 안식일 교회 등등 대부분 그렇게 성서를 보고 있습니다. 이것을 “proof-texting”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성서로부터 몇 구절이나 단락을 여기 저기에서 취합해서 자기의 관점을 입증하는 (prove) 데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식의 성서 읽기는 여러분이 원하는 방식대로 어떠한 결론으로 이를 수 있습니다. 어느 텍스트든 해석의 여지는 무한히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텍스트 자체는 이런 무한히 열림을 규제하는 힘이 있습니다. 말도 안되는 황당무개한 해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런 구절 따먹기 식이 아니라 성서의 역사적 비평적 방법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탄절이 가까운데 동화적 경험을 위해서 마태와 누가복음의 탄생 설화를 섞어서 nativity scene을 건설하는 용기도 좋지만 성서 해석의 성인이 되려면, 마태와 누가는 자체의 매락에서 봐야 할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답변이 아니라 성서에 대한 제 나름의 이해를 적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제가 월권을 했다면 죄송합니다. 아프리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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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by  |  2011-12-13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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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노아의 홍수는 실제 홍수가 있었다는 것은 화석이나 고고학적 발견으로 입증이 되었고 동방 설화를 근거로 고대 히브리인들이 홍수에 신학적 의미를 부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신이 인간의 죄를 참고 참다 홍수로 멸망 시켰다."고.

창세기의 문서비평적 해설은 오래전 천주교에서 발행한 "보시니 참 좋았더라"를 읽었는데 창세기 각종 설화를 전승 문서별로 나눠 설명한 좋은 책이었습니다. 기본 바탕이 자유주의 신학인데 남침례교 다니려니 여러가지로 어렵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1-12-13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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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괜해 객기를 부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책을 저도 갖고 있었는데 한국에 두고 왔습니다. 평신도들이 창세기 공부하는데 좋은 책이죠.

성서비평학은 자유주의 신학과 연과는 되는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그런 이념적인 틀에 넣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성서 비평학은 이념 이전에 텍스트 이해의 이론적 가설이지 신학적 투사는 아니니까요. 성서비평학이 계몽주의적 토양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학자들에 따라 의견은 다르지만 요즘은 가장 신빙성있는 방법론으로 수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해석에 따라 극단적으로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다윗도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고, 바울도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Philp Davies 등).

제 생각에 아브라함 이전의 사건은 원역사로서 역사적 사실로 입증하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홍수이야기야 노아 이야기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을 나타나는 신화적 이야기라고 봅니다. 창세기 이야기가 고대 근동이나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것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요. 신학적으로는 저는 자유주의자 아닙니다. 좀 보수적인 면이 많죠. 감사합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1-12-13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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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회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제 2 바티칸 공의회 (The Second Vatican Council; 1962-1965년)가 가톨릭의 성서 발전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아주아주 보수적이었죠. [보시니 참 좋았다]라는 책은 바로 그 공의회의 후속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가톨릭이 성서 비평학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가톨릭 성서학자들이 자유주의자들은 다 아니죠. 가톨릭에서는 요한 23세를 교황으로 뽑은 이유가 비교적 보수적이고 온화한 사람으로 보았는데 결과적으로는 덤탱이 쓴 것이죠. 그 여파로 진짜 보수적인 요한 바오르 2세와 현재 베네딕트 16세를 연이어 뽑은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역사적 아이러니는 이렇게 흘러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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