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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방울 수류탄, 가랑잎 타고 강 건너기
작성자 philby     게시물번호 6217 작성일 2013-02-21 12:58 조회수 3793

시대가 인물을 만든다. 1930년대가 그랬다. 1930년 대 일본은 문자 그대로 욱일승천의 기세로 그 기세는 세계를 제패할 것 같았다. 만주를 침략한 일본 제국주의는 만주에 괴뢰정부를 수립하고 만주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대륙 침략을 생각했다. 만주사변에 이어 1937년 지나사변(중일전쟁)이 시작 되었다.

조국 독립을 염원하던 조선 민중들은 낙심천만이었다. 독립운동을 주도하던 민족주의자들도 낙심했다. 이러다 조국 독립은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꿈이 되는 것이 아닐까?

윌슨의 민족자결주의로 독립을 이룰것 같던 꿈은 만주사변, 지나사변으로 좌절되었다. 이 때 수 많은 민족주의자들이 친일파로 전향했다. 이제라도 일본 통치를 인정하고 순응하자, 2등국민으로 인정해주는 천황폐하의 은혜를 잊지 말고 혈서 쓰고 멸사봉공하자.

인간이 가장 비참한 때가 언제일까? 사업 망했을 때? 믿었던 친구에게 돈 빌려 주었다 떼었을 때? 애인에게 배반 당했을 때? 정리해고 당해 실업자 되었을 때? 아니다, 인간이 가장 비참한 때는 희망을 잃었을 때다. 희망을 잃었을 때 인간은 좌절하고 자포자기 한다.

해방 후 반민특위에 끌려나온 친일파들이 늘어 놓는 변명은 대개 “일본이 이렇게 빨리 망할 줄 몰랐다.” 빨리 망할 줄 알았으면 친일파 노릇 안했겠지. 일본이 영원무궁 까지는 몰라도 몇백년은 갈줄 알았으니 친일파로 변절을 했지.

삼천리 반도가 독립의 꿈을 잃고 망연자실 할 때 동북항일연군(조선인민 혁명군)1로군 2군 6사(지휘관 김일성) 이 함경북도 보천보에 들어와 일본 순경들을 제압했다. 지나사변 일어나기 한달 전이다.

보천보 전투는 군사적으로 볼 때 전투라고 볼 수 없는 전투로 술에 취해 곯아 떨어져 저항능력을 잃은 일본 순경 몇명을 무장한 항일 유격대 청년 수십명이 제압한 싱겁기 짝이 없는 전투였다.

보천보 전투가 동아일보를 통해 알려지자 민중들은 희망이 소생하는 기쁨을 느꼈다. “아직 죽지 않았구나, 독립의 꿈은 살아 있구나.” 일본 순경은 제국주의를 유지하는 치안력의 상징인데 일본 순경을 제압했다는 것은 비록 그들이 술에 취해 곯아 떨어졌다 해도 일본 제국주의를 제압했다는 것 아니겠는가.

보천보 전투를 전후해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에 대해 “둔갑술” “축지법” “솔방울 수류탄” “가랑잎 탁 강 건너기” 등등 전설따라 삼천리에나 나오는 괴담류의 이야기들이 퍼지기 시작했다.

둔갑술의 진원지 소덕수 전투에 대해 김일성 회고록은 이렇게 쓰고 있다.

<<소덕수등판에서 숙영한 이튿날 우리는 부대를 마등창수림 속에 이동시키고 대원들을 휴식시켰다. 나도 풀밭에 누워 책을 보다가 곧잠이 들었는데 총소리가 났다. 15도구방향과 이도강방향에서 밀려온 적들이 남북 양쪽에서 거의 동시에 달려들었다. 무성한 숲은 적아를 구분하기 어렵게 하였다. 만일 우리가 감쪽같이 빠져나가면 적들의 협공을 저들끼리의 골육상쟁으로 역전시킬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우리는 마등창수림에서 슬쩍 빠져나와 15도구골등판으로 올라갔다. 그 등판에서 적들끼리 싸우는 꼴을 구경하였다. 그것이 세칭 소덕수전투라고 하는 마등창망원전투이다. 그날 적들끼리의 맹렬한 싸움이 서너시간쯤 실히 걸렸던것 같다. 구경군들이 지루할 정도였다. 적들은 이렇게 장시간 싸우다가 이도강쪽패가 정 못 견디겠던지 먼저 퇴각나팔을 불었다. 그 나팔소리를 듣고서야 15도구쪽패도 제편끼리 싸운줄 알았는지 사격을 중지하였다.》

《수백명의 유격대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가? 온데간데없으니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노릇이 아닌가? 이 불가사의한 문제에 대한 해명을 적들은 우리의 <둔갑술>에서 찾은것 같다. 우리가 <둔갑술>을 써서 <승천입지>하고 <신출귀몰>한다는 소문이 국경지대에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한것이 이 소덕수전투가 있은 때부터였던것 같다.》

축지법의 진원지 “갑무 경비도로 주파”도 병법에서 말하는 허허실실 전법의 표본이다. 일제는 독립군 토벌을 목적으로 갑산-무산을 잇는 총연장 120Km의 경비도로를 건설했다.

그 때 김일성의 2군 6사(북한에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라고 한다)는 백두산 기슭에서 일본군에 포위 당했다. 포위망을 뚫고 무산까지 가야는데 김일성은 대담하게 독립군 토벌하기 위해 건설한 갑무 경비도로를 타고 무산까지 간 것이었다. 일본군도 “설마…” 했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볼 때 조선 민중들이 어리석었지만 아무리 어리석어도 일본 군대가 최강인 것은 알았다. 무기도 열세고 병력도 열세고 보급도 열세고 모든 것이 일본군에 비해 열세였지만 최강 일본군을 상대로 전투를 할 때마다 민중들은 독립의 소망을 품었다.

나는 이 방면 전문가가 아니라서 동북항일연군이 일본군을 상대로 벌린 전투가 군사적으로 어떤 성과가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일제가 만주를 점령하고 지나를 점령해 독립의 꿈을 포기했던 민중들에게 다시 희망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일개 잡범 신창원이 탈옥 했을 때도 신출귀몰 하다고 전국이 떠들썩 했고 “잡히지 말았으면”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1930년대 동네마다 몇 대 있는 라디오와 몇 집에 한 부씩 배달되는 신문을 통해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이 전해질 때 민중들이 어떤 생각을 했겠는가.

일제는 비적이나 공비라고 표현 했지만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이 전해질 때 마다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확대 재생산되면서 둔갑술, 축지법,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가랑잎으로 군사를 건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삼천리 강산에 퍼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북한에서 김일성 우상화에 이용하기도 했지만 이런 전설이 나온 것은 독립을 소망하는 조선 민중에게서 실낱 같은 희망에서 시작되었다.

소덕수 전투에서 가장 큰 피해을 본 감자밭 주인의 말이 당시 민중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 “감자밭은 결단 났지만 악귀 같은 왜적 군대들이 지들끼리 싸우다 저렇게 죽어 나뒹구는 것을 보니 풍년든 것 보다 더 기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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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팔라  |  2013-02-26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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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항일투쟁일화네요...카다피도 젊을적에는 미국영국등 외세세력을 나라밖으로 몰아내고 리비아의 국민적 영웅이었드랬죠...

philby  |  2013-02-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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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체 게바라가 남미 밀림속에서 죽지 않고 카스트로 대신 쿠바 1인자가 되어 늙어 꼬부라질 때 까지 살아 있다면 지금 처럼 대중의 인기와 관심을 끌수 있었을까요?

혁명이 권력으로 이어져야 이상을 실현한다지만 권력 오래 잡고 있어봐야 결과는 참으로 신통치 않습니다. 정치인이고 연예인이고 혁명가고 간에 박수 칠 때 물러나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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