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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땅에 뿌리를 내리며 (17번째)
1976년 4월

아침에 출근을 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D박사의 책상 주변이 어수선했다. 나를 쳐다보는 동료들의 눈초리도 심상치 않았다. 내 책상위에 메모지가 한장 있었다. D박사가 내게 쓴 짤막한 편지였다.

“어진아, 그 동안 고마웠어. 이렇게 너에게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떠난다. 자세한 이야기는 할수 없고 언젠가 기회가 있으면 만날수 있겠지…… Thanks again.”

‘아니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거야!’
우리가 하던 일이 생각처럼 잘 안됐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D박사가 이렇게 떠나리라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어제 퇴근할 때까지도 아무말이 없었는데……

Director가 나를 찾는다는 전갈이 왔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Director의 사무실에 들어섰다. 의자에 앉라고 한다음 짤막하게 이야기했다. D박사는 어제 저녁으로 연구소를 떠났고, 나의 거취는 일주일 안에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난 주눅이 들어서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어 보지도 못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직장생활 7개월만에 실업자가 되겠구나!’

D박사는 아주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자랐다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9학년 때 부모를 떠나서 Foster parents(양부모)밑에서 자랐다고 했다. 양아버지가 아주 좋은 분이었단다. 양아버지는 고등학교 화학 선생이였고 그의 영향을 받아서 화학을 공부했다고 했다. D박사는 어려서 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총명한 학생이였지만, 대인관계가 원만치 못했던 것 같았다. 특히 아래사람보다는 윗사람들과 더 심한 것 같았다. 그래서 실력은 있었지만 한 직장에서 오래 있질 못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Director와 대판 싸웠다고 했다. 연구소에서는 Security guard를 대동시켰고, D박사는 자기 물건만 챙겨가지고 연구소를 떠났다고 했다. 난 하루 아침에 부모잃은 고아신세가 됐다. 아무리 연구소의 기밀이 관계돼 있다고는 하지만 5년 가까이 일한 사람을 몇 시간의 시간을 주고 자기 물건을 챙겨 나간 후에 다시는 연구소 건물에 못 들어 오게 하다니…… 카나다 사회라는 곳이 이렇게 매몰찬 곳이로구나! 생각했다.

Security guard가 열어주는 문을 통해 상자 하나를 달랑들고 나가는 D박사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꼬리글:난 아주 후회되는 일이 있다. D박사가 떠날 때, 함께 인사도 못한 것이다. 같이 점심식사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때만 해도 난 카나다 물정을 잘 몰랐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질 몰랐다. 돌이켜 보면 D박사는 내 이민의 삶 속에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었다. D박사가 그때 나를 채용해 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끔 D박사가 생각나서 수소문을 해보지만, 이젠 거의 30년 전의 일이라 D박사를 찾을 길이 없다. 이젠 D박사도 70이 넘었겠지…… 어디선가 건강하게 잘 살고있길 바랄뿐이다.

기사 등록일: 2004-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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