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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지난 주말에 막내가 타는 차의 브레이크를 바꾸었다. 뒷 바퀴를 들어 올리고 막내와 같이 브레이크를 바꾸면서 문뜩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야, 요거 보라. 요거이 양쪽이 똑~같애.” “네~….” “기리니까니, 한쪽씩 차례로 바꾸면 걱정할거이 하나도 없어!” “네~….” “만약에 니지삐리문, 반대켠에 가서 보구와서 하문 돼!” ”네….” “오늘은 내가 할꺼니, 다음엔 네레 해보라” “알가시요” 처음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주시던 아버지 덕분에, 요즘 내가 아이들에게 목에 힘주면서 큰 소리를 친다. 하기사 브레이크를 내 손으로 고친 것도 이젠 20년이 넘었으니, 웬간한 자동차 브레이크 수리공 빰치는 수준이다. 막내에게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주셨던 것과 똑같이 했다. 브레이크를 바꾼 후에 시운전을 했다. 아버지 생각이 더 났다. 세월이 참 빠르다!. 벌써 20년이 넘었으니…. ‘아~! 아버지가 보고싶다! 다음 주말엔 아버지 한테 가야겠다!’ 아버지는 참 가정적인 분이셨다. 1960년도를 전후해서 자식들을 데리고 등산을 가는 아버지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산에 가면 버너 피우는 법, 밥짖는 법, 찌개 끓이는법, 산에서 지켜야 할 규칙들을 자세히 가르쳐 주셨다. 아버지가 그러셔서 그런지 우리 아이들도 친구들이랑 캠프를 가게되면, 캠프장 예약에서 부터 계획, 쇼핑, 진행을 모두 맡아서 한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구나!’ 하고 느낄 때가 많다.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전해 주셨고, 알게 모르게 아이들에게 까지 전해진 것 같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나는 요즘도 가끔 아버지가 어머니랑 맷돌질을 하시던 모습을 떠 올리면서 미소를 짓곤 한다. 콩을 불쿼서 맷돌에 갈고, 큰 가마솥에 넣어서 돼지 뼉다귀와 함께 푹~ 끓이면, 구수한 냄새와 함께 김이 무럭무럭 나던 콩비지! 거기에다 어머니가 갖은 양념 넣고 만드신 양념간장을 쳐서 먹으면, 정말 둘이 먹다 하나 돌아가셔도 모를 정도였다! 요즘 말로 하면 고맛이 가히 “환상적”이였다. 어머니가 만드시던 별미인 녹두지짐, 콩비지, 콩두부, 콩나물밥, 김치밥 등등…. 어머니의 별미에는 항상 아버지가 보조 요리사로 옆에 계셨다. 사진틀에 성탄절에 받으신 장갑을 끼시고, 활짝 웃으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내가 아버지를 이렇게 많아 닮았어?” 아내에게 물어 보았다. “꼭이야! 꼭~!” “정말~?” “다 좋은데… 아버님 머리숫은 닮지 말았어야 하는데…” “요~ 여자~, 시아버지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사실은 사실이니까~ ㅋㅋㅋ.” “이거 보라우, 대머리가 부부정이 좋다는걸 몰라?” “하기사, 그렇게라도 위로받아야지… 호호호” ‘얼굴만 아버지를 닮지 말고 마음도, 삶의 태도도 아버지를 닮아야지’ 다짐해 보곤한다. 아버지가 떠나시고 비석을 세울 때, ‘비석에 어떤 글을 써 넣을까?’ 곰곰이 생각했었다. ‘아버지의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무엇일까?’ 생각하고 생각하다가 만들어 낸 문구가 “참되게 살려고 애쓰시던 아버님!” 이였다. 아버지께 딱 맞는 문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막히는 문구인 것 같았다. ‘어떻게 그런 문구가 내 머리 속에서 나왔을까!’ 감탄했다. 아버지를 뵈려 갈때마다 ‘나도 아버지처럼 살아야지!’ 다짐하곤 한다. 나는 아직도 피난민으로 북적거리던 서소문동의 집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우리집은 피난민 수용소였다. 아버지의 친인척은 물론이고 아버지의 이름만 아는 사람들도 우리집의 귀한 손님이였습니다. 아버지는 그 많은 사람들을 자리잡아 나갈 때까지, 재우시고 먹이셨다. 아버지 보다 어머니가 더 많은 고생을 하셨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이 싫은 내색을 하시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항상 남들을 생각하셨는데, 사실은 그게 우리들에게는 커다란 불만이기도 했다. 항상 우리들의 몫이 쪼개져 나가는걸 보면서 투덜거렸으니까! 이제 나이가 들어 가가니까 ‘사람이 산다는게 무언가?’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언젠가는 나도 세상을 떠날텐데…. ‘나의 아들들은 내 비석위에 무엇이라고 쓸까?’ 걱정이다! 아버지처럼 “참되게 살려고 애쓰시던 아버님!” 이라고 써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열심히 참되게 살아야겠다, 나의 아버지처럼…. 꼬리글: 아버지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카나다에서 살기에 아버지날이라고 선물도 받고 정성스레 차린 저녁상도 받고...... 한국에서 사는 아버지들에게는 미안한 생각이드네요.

기사 등록일: 2004-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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