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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지간 _ 최우일 컬럼_23
 
그때, 내가 왜 우리 것을 업신여기며 살았는지 지금 돌이켜보면 난 참으로 한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우리의 고유한 타령이나 춤, 인사치례나 격식까지도 번거로운 것으로 여겼었습니다. 영화속에서나 보는 서양흉내를 내며 우쭐대기라니…..이건 나 뿐만아니라 내가 알던 당시의 꽤 많은 젊은이들이, 어쩌면 답답하고 힘들던 내 땅을 훌훌 벗어나서 “대한미국”인으로 살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지 않았나 합니다.
내가 우리 것을 탐탁히 보지않았던 것은 무엇보다 서양인의 자유분방함이나 풍요함에 혹해 버린데 있었습니다. 그들의 것은 상큼하여 홀가분한 것만큼이나, 우리것은 내게 지지리도 못나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여코 선망하던 곳에와서 무분별하게 그들을 모방하면서 한층 우리것을 깔보는 정도가 심해지고 내게는 풍요나 분방한 그들의 생활방식은 하나의 신앙처럼 깊어만 갔습니다. 허기사 정신 잃고 푹 빠져버렸을 때 무슨 냉철한 사려분별이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거리와 시간의 격차가, 나의 정신적 성숙이 서서히 눈을뜨게 하여 주었습니다. 면면한 전통과 가치와 그 정수, 그것은 수천년을 두고 다져진 가통에 비해 불과 몇백년 가문의 차이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이곳의 모든 문물은, 자신들을 위해 그들이 이루어 놓은 것이란 사실은, 내가 아무리 흉내를 낸다해도 결코 내것으로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은 아직까지도 미국바람에 한껏 들떠 있으니까 그들의 말에대한 매력도 떨치기 어려운 것일지는 모르지만….영어를 아주 거부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버젓이 있는 우리말을 밀처두는 것이 거슬린다는 것입니다. 영어로 딱지 붙인 내의는 더욱 남자답게하는 것이랍니까? 상업광고의 효과는 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아니, 광고가 대중하는 대중심리를 모르겠다고 해야 옳을런지요.
그 옛날 어려운 한문 익히기에 고심하던 시절을 기억해 보십시요. 지금 영어 좀 잘 해보려고 기를쓰는 모습에 한편으로 우리말 우습게 보는 풍조가 있다고 하면, 우린 정말이지 우리 것 소중히 생각지 않고 산다고 비난받아도 변명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좋은 아침’만 해도 그렇습니다. ‘굿 모닝’이 얼른 머릿 속에 떠오르지 않습니까? 이따위 억지 흉내보다야 진지 잡수셨는지 또는 안녕히 주무셨는지, 먹고자는 안부 따지는 일이 한층 그럴싸 한 것은 바로 우리의 일상과 직결된 발상이어서 그렇다고 나는 봅니다.
혹여 어떤 이들에게는 인사하는데까지 먹고자는 일을 점검하는 것이 그리도 구차한 것으로 생각이든다면, 그렇다면 무턱대고 남을 따라 하는것이 창피한 일은 아닌가 모를 일입니다. 우리는 그리도 자신없는 국민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난 이런 우리나라가 안스럽습니다. 내겐 뒤늦게 나마 우리것에의 소중함이 이제는 가슴에 와 닿기 때문입니다. 남의 것에 대한 호기심이나 모험심을 나무랄 뜻은 추호도 없습니다. 남의 것만 좋다고 따르는 그 멋없는 멋부림을 힐책하고 있을 뿐입니다.
동서지간은 아주 특별한 관계입니다. 동서지간(同壻之間)은 쉽사리 가까울 수 있는 사이이면서도, 배경다른 남남이 시집이란 형편속에서 잘못 얽힐 때 자칫 고까운 관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동서지간(東西之間)이 바로 이러할 수가 있습니다.
세계화가 진정 어떤 것인지…., 한가지 아주 분명한 것은 더는 대문에 빗장 지르고 담장 높이 처둘르고 살 수만은 없는 지금의 동서지간이라면, 남의 것도 수용할 수있는 아량에서부터 시작이되어야함에는 틀림이 없겠지만, 그렇다고해도 내것 마구 버려가면서까지 남을 따라야하는 것인가 걱정입니다.
그러나 곰곰히 해보면, 동서라는 두 세계를 이질적으로 가르려는 것은 서양의 양분법 사고일 뿐입니다. 쪼개기(分析的 科學) 시작할 때에는 양극(兩極)이 두드러져 독립된 두개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서양의 물리(物理)라는 ‘칼의 과학’이거나 동양의 정리(情理)라는 ‘길의 지혜’이거나 출발지점이 다를뿐 순환과 통일이라는 원융의 세계속에서는 단지 하나인 전체의 양극일 뿐입니다.
마치 아름다움(美)의 대비에는 빛과 그림자가 어울려야 하듯이, 쉬바신(神)이 동시에 창조와 파괴의신일 수 있듯이, 동과서도 세계안에서는 어짜피 하나이어야 합니다. 이 둘은 단지 양극일 뿐 서로 다른 두개의 독립된 개개가 아닙니다. 하나라는 전체의 부분입니다. 이들은 개개의 특성을 지닌채 전체를 이루어 갑니다. 하찮아 보이는 미미한 부품이 제 가치를 포기해서는 않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고, 우리가 우리의 고유가치를 지녀야하는 까닭이 있는 것입니다.
종래의 가치를 거부하고 새로워보이는 것을 선호함으로서 우리들의 것에서 눈을 돌리고 그 소중함을 소홀이 할 때 나중에 올 환멸감을 지금 모른체하며 살아서는 안됩니다. 내것을 모두 잃은 나는 전체의 일부로 남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맥이 끊기어 혼란 할 때 흔들거리는 위험을 모른체하며 살아간다면 이건 정말 서글픈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외국것에 도사가 다 되어 있다고 합시다. 마구버려 바탕없는 땅에 서있는 우리는 대체 누구라 해야 할 것입니까?
지금은 잘 거들떠 보지도 않던 뒤울안 구덩이의 호박꽃을, 눈 한번 제대로 주지 않던 우리들의 무궁화를 다시 새겨보아야 할 때입니다. 이미 잃었던 것을 되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더는 잃지 말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세계화의 난무속에서 우리의 문화나 전통, 그리고 가치가 어떻게 전체인 하나 안에서 어우러지며 빛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볼 때 입니다.

편집자 주 : 본 기사는 CN드림 8/27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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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일: 2004-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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