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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여름 닐 다이아몬드 공연 확정
배리 매니로우와 더불어 감미로운 목소리의 대명사 , 캘거리와 에드몬톤 각각 7월 16, 18일 공연
70~80년대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했고 특히 감미로운 목소리로 한국인들에게 특히 사랑 받았던 닐 다이아몬드가 순회공연에 나선다.
캐나다는 몬트리올 6월 21일을 필두로 토론토 6월 26일 SK주 사스카툰 7월 13일 에드몬톤 7월 16일, 캘거리 7월 18일 그리고 밴쿠버 7월 21일 일정이다.
닐 다이아몬드는 팝 역사상 가장 성공한 싱어 송 라이터 중 한 명으로 그의 작품들은 ‘대중음악의 클래식’이며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애청되는 올 타임 스테디 송들이다. 그의 세련되고 온화한 노래들은 시대를 초월한 대중음악의 교과서이자 히트 곡의 견본으로 불리운다.
2005년을 기준으로 닐 다이아몬드의 음반은 미국에서만 4,800만 장이 바코드에 찍혔고 전 세계적으로는 1억 6천만 장이 소비되었다. 음반 판매량으로 본다면 역사상 10위 내에 들어가는 엄청난 기록이다. 3곡의 1위 곡과 10곡의 탑 텐 싱글 그리고 25곡의 탑 40라는 방대한 히트 리스트는 그의 음악이 그만큼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고, 또 갖고 싶어 하는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의 주요 히트곡들로는 Solitary Man, Song Sung blue, Love on the Rocks Girl you’ll be a Woman soon, Kentucky Woman등이 있다.
1941년 1월 24일 뉴욕 브룩클린에서 닐 레슬리 다이아몬드라는 본명으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 때 펜싱을 시작해 펜싱 장학금으로 뉴욕대학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생물학자의 꿈을 키우던 젊은 학도는 졸업을 앞두고 그의 재능을 알아본 음반사로부터 주 50달러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고 음악 산업계에 들어섰지만 발표하는 싱글마다 빠지지 않고 꾸준하게 실패하자 전업 작곡가로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이때가 바로 유명한 브릴빌딩 작곡가로 등재되는 순간이다.
그가 작곡한 제이 & 더 아메리칸스(Jay & The Americans)의 ‘Sunday and me’가 1965년에 싱글차트 18위를 차지하면서 빛이 들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66년에는 몽키스(Monkees)가 불러 무려 7주 동안 전미 차트 1위를 호령한 ‘I'm a believer’와 2위까지 오른 ‘A little bit me, a little bit you’의 작곡자가 닐 다이아몬드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신의 음악활동에 다시 한번 탄력을 받는다. ‘I'm a believer’는 애니메이션 < 슈렉 > 1편에서 스매시 마우스(Smash Mouth)가 리메이크해서 알려진 바로 그 곡.
1966년에 절치부심해서 만든 노래가 바로 그의 이름을 처음 알린 ‘Solitary man’. 이 노래는 미국에서 55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했지만 국내에서는 그의 대표곡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이어서 발표한 ‘Cherry, cherry’는 6위를 기록해 닐 다이아몬드의 첫 탑 텐 싱글로 입적되었고 1967년에 공개한 ‘Girl, you'll be a woman soon’은 두 번째로 10위권에 올랐다. 이 노래는 1990년대 중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 펄프 픽션 >에서 어지 오버킬(Urge Overkill)이 멋지게 재해석해 다시 한번 닐 다이아몬드의 작곡 실력을 입증해 보였다.
1967년에 릴리스해서 22위를 차지한 싱글 ‘Kentucky woman’은 딥 퍼플(Deep Purple)이 1년 뒤인 1968년에 리메이크해 38위를, ‘Red red wine(62위)’은 1980년대에 레게 그룹 유비40(UB40)가 다시 불러서 1위에 랭크시키는 등 그의 노래들은 수많은 동료, 후배들에 의해 꾸준히 환기되고 있다. 1969년에는 그의 가장 큰 히트곡 중 하나인 ‘Sweet Caroline(Good times never seemed so bad)’가 4위에 올랐는데 이 노래는 드루 배리모어와 지미 팔론이 주연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 날 미치게 하는 남자 >에서 보스톤 레드삭스의 팬들이 야구 경기장에서 보스톤 레드삭스의 응원가로 합창한 곡이다. 고향 팀인 뉴욕 양키스의 열혈 팬인 닐 다이아몬드의 대표곡이 라이벌 팀인 보스톤 레드삭스의 공식 서포트 노래라는 점이 아이러니다.
‘Sweet Caroline’이 발표된 1969년부터 이 캐롤라인의 실제 주인공이 누구냐는 질문에 닐 다이아몬드는 35년 이상 밝히지 않다가 2007년에 그 인물이 바로 존 F. 케네디의 딸 캐롤라인 케네디라고 밝혀 화제가 되었다.
1970년이 되면서 닐 다이아몬드의 음악 인생은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기 시작한다. 급부상하는 인기를 바탕으로 저주 받은 첫 싱글 ‘Solitary man’을 다시 싱글로 커트해서 1970년에 21위를 차지하는 고집을 보여줬고 ‘Cracklin' rosie’는 그의 노래로는 최초로 인기순위 1위에 올랐다. 1971년에는 ‘I am... I said’가 4위에 랭크되었고 몽키스에게 준 ‘I'm a believer’를 직접 취입해 51위를 기록했다. 이듬해인 1972년에는 ‘Song sung blue’가 두 번째로 넘버원을 차지해 그의 인기에 확실한 방점을 찍었고 그의 노래 중에서 가장 서정적인 곡 중 하나인 ‘Play me’는 11위에 올랐다. 한편 국내의 일부 디제이들은 ‘Song sung blue’를 ‘Song song blue’로 잘못 읽어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도 이 곡의 제목을 ‘Song song blue’로 잘못 알고 있는 음악 팬들이 있다.
1973년에는 갈매기를 주연으로 발탁한 영화 <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 >의 음악을 맡아 여기 수록된 철학적인 대곡 ‘Be’가 싱글로 커트되어 34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다운타운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1974년에는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은 ‘Longfellow serenade’가 5위를 마크했다.
1976년, 더 밴드(The Band)의 리더 로비 로버트슨(Robbie Robertson)이 프로듀서를 맡은 앨범 < Beautiful Noise >의 판매는 부진했지만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그 사이 꾸준한 공연활동으로 < Love At The Greek >이라는 라이브 음반을 공개해 앨범차트 8위를 기록했다. 같은 해에는 더 밴드의 마지막 공연실황을 담은 기록 영화 < Last Waltz >에 출연해 로비 로버트슨과의 우정을 확인하며 신세도 갚았다.
1978년에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rbra Streisand)와의 듀엣 곡 ‘You don't bring me flowers’로 세 번째 넘버원에 올랐다. 이 곡은 원래 닐 다이아몬드가 1977년에 솔로로 발표했던 노래인데 1978년에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리메이크해서 앨범 < Songbird >에 수록한 한 버전과 짜깁기해서 마치 두 사람이 듀엣으로 부른 것 같은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며 스매시 히트를 기록했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 냇 킹 콜(Nat King Cole)과 딸 나탈리 콜(Natalie Cole)의 음원을 편집해서 빅 히트를 기록한 ‘Unforgettable’이 ‘You don't bring me flowers’를 벤치 마케팅한 사례.
데뷔 때부터 앨범재킷에 자신의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찍어 내걸 정도로 수려한 외모를 자랑했던 그는 1980년에 < 재즈 싱어 >라는 음악영화에 발탁되어 처음으로 극영화의 주연을 소화했다. 이 작품의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Love on the rocks(2위)’, ‘Hello again(6위)’, ‘America(8위)’가 연속으로 싱글 차트 탑 텐에 진입해 인기를 성수했으며 여기서의 연기로 골든 글로브 최우수 남우주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된 동시에 최악의 영화와 배우를 뽑는 레지 어워드에서 그해 최악의 남자배우로 선정되기도 했다. ‘America’는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고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선 마이클 튜카키스 진영의 캠페인 송으로 선정되어 미 전역을 뒤덮은 바 있다.
1982년에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블록버스터 영화 < E.T. >를 보고 감동을 받아 ‘Heartlight’를 싱글로 발표해 5위를 차지했는데 이 곡은 그의 마지막 탑 40 히트곡이 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리메이크 앨범이나 영화음악 음반을 제작해 꾸준한 음악활동을 연계했고 2005년에는 록 계의 막후실력자 릭 루빈(Rick Rubin)이 프로듀싱을 맡은 음반 < 12 Songs >가 23년 만에 앨범차트 10위권 내에 진입했다. 3년 후인 2008년에 발표한 < Home Before Dark >는 닐 다이아몬드의 음반으로는 최초로 앨범차트 정상에 오르는 등 탑 아티스트로서의 지위를 유지했다. 2009년 2월에 열린 제51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MusiCares Person of the Year’를 수상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 ‘Sweet Caroline’을 위시한 자신의 수많은 명곡들을 후배들과 젊은 관객들 앞에서 열창하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1984년에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닐 다이아몬드는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45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그 시대의 음악에 대한 ‘기축통화’ 역할을 해왔다. 이제는 우리 시대의 ‘음악적 도덕률’인 닐 다이아몬드에게 경건함을 표해야 한다.
출처) IZM, 소승근(gicsucks@hanmail.net)

기사 등록일: 201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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