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안내   종이신문보기   업소록   로그인 |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시그널 힐 언덕 숫자들의 의미는?
1차 대전 당시 지역 훈련소의 참전 대대 이름
(사진 : 캘거리 헤럴드, 시그널 힐 언덕의 숫자들) 
앨버타가 국내에서 가장 높은 참전률 보여

캘거리 SW 시그널 힐 언덕에는 113, 51, 137, 151 의 거대한 숫자가 2만개 이상의 색칠된 돌멩이를 이용하여 표시되어 있다.

시그널 힐은 과거의 Sarcee 군사 훈련소자리로, 1차 대전 당시 언덕위에 만들어진 이 숫자들은 이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1차 대전에 참전한 4개 대대의 이름이다.

1914년 8월 4일, 영국이 전쟁 참전을 선포하자 불과 며칠 안에 3만 7천여 명의 앨버타 주민들이 캘거리를 찾아 참전 신청을 했으며, 곧 그들은 오늘날에는 Garrison Green으로 불리고 있는 저수지 공원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캘거리 Sarcee 군사 훈련소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훈련소가 되었으며, 4만 여명 이상이 이 훈련소를 거쳐 갔다. 앨버타는 1차 대전 당시 국내에서 인구 당 가장 높은 참전률을 보인것으로 알려졌다.

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캘거리 시민들 역시 무수히 많은 방법으로 전쟁을 도왔다. 여성들은 병과 깡통을 찾아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엘보우 파크와 같은 지역을 찾아다녔으며,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양말과 목도리를 떠서 전쟁 중인 군인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1914년 크리스마스 전까지 끝날 것으로 예상되던 전쟁이 길어지자, 캘거리 시민들은 분노가 커져갔다. 그 분노는 독일 이민자들에게 향해, 캘거리 시민들은 독일인이 운영하던 가게를 불태우기도 했으며 우크라이나와 같은 지역에서 이민 온 이민자들도 적국의 외국인으로 분류되어 후에 도시 서쪽의 캐슬 마운틴 포로 수용소에 감금되기도 했다.

1차 대전은 결국 4년 반 동안 이어졌고, 그 기간 동안 2만 5천여 명의 앨버타 군사들이 부상을 입었으며, 6,140명이 전사했다. 캘거리 헤럴드지에서는 독자들에게 전쟁 정보를 알리는 추가판을 발행했으나, 후에는 전사자와 부상자의 명단으로 가득 찼다.

당시 수천 명의 훈련병들이 머물렀던 Sarcee 군사 훈련소 자리에는 현재 쇼핑 단지가 들어서 있다. 하지만 당시에 남겨진 숫자는 여전히 멀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 캘거리 시민들에게 전쟁에 참전한 뒤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고, 잊혀 지지 않기를 원했던 이들을 기억할 수 있는 장치로 남겨져 있다.

(박연희 기자)

기사 등록일: 2014-06-13
나도 한마디
 
최근 인기기사
  캘거리-인천 직항 내년에도 - ..
  앨버타 최고의 식당은 캘거리의 ..
  (종합) 앨버타 두 곳 대형 산..
  캘거리 대학 ‘전례 없는’ 상황..
  캐나다 생활수준 40년 만에 최..
  식사 후 대장균 감염, 캘거리 ..
  앨버타 소방관, 베네핏 없이 시..
  캘거리 스토니 트레일 충돌 사고..
  캘거리 일회용품 조례 공식적으로..
  캐나다 이민 커트라인 점수 크게..
댓글 달린 뉴스
  세종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 열.. +1
  주정부, 여성 건강 및 유아 생.. +1
  요즘은 이심(E-Sim)이 대세... +1
  에드먼튼 대 밴쿠버, 플레이오프.. +1
  캘거리 시의회, “학교 앞 과속.. +1
  “범죄 집단에 비자 내주는 캐나.. +1
회사소개 | 광고 문의 | 독자투고/제보 | 서비스약관 | 고객센터 | 공지사항 | 연락처 | 회원탈퇴
ⓒ 2015 CNDr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