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현대 기독교인들은 1세기 예수가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겼으며, 무엇을 철저히 반대했는지에 대해서 솔직하게 인식해야 개인적인 신앙과 삶은 물론 가정과 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이것은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의무이고 책임이다.
예수가 가장 반대하고 철저히 개혁하려고 했던 것은, 하늘 위에 존재하면서 땅으로 내려와 인간 세계에 멋대로 개입하는 하느님에 대한 기복적인 믿음과 그런 믿음으로 민중들을 이분법적이고 차별적으로 통제하고 탄압하고 착취하는 종교체제였다. 물론 예수는 그런 종교체제가 신봉하는 인격신론의 초자연적인 하느님을 믿지도 않았으며, 가르치지도 않았다. 자신의 명령을 어기면 크게 진노하고 심판하고 징벌을 내리는 그런 옹졸하고 이기적인 하느님은 예수가 가르친 “하느님의 의미”가 아니었다. 예수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폄하하는 성전종교는 회칠한 무덤과 같으며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예수 당시에 차별적이고 우월적인 유대교와 로마제국의 하느님은 인간을 더러운 죄인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예수는 그런 체제를 전복하는 하느님 나라 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무엇보다도 예수는 철저한 무신론적 현세주의자였다. 예수는 소위 거룩한 종교인이 아니었으며, 다만 하느님의 의미를 솔직하게 살아내려고 했다. 따라서 예수는 사람들의 의식과 인간성을 폄하하고 무시하는 성전종교의 유신론적 하느님을 믿지 않았으며 그런 하느님을 철저히 반대했다. 예수는 죽은 후에 하늘 위에서 만나는 내세적인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거부했다. 예수는 새로운 의미의 하느님을 가르쳤다. 다시 말해 지금 여기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새로운 의식과 인간성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삶의 방식과 비전이 하느님이라고 가르쳤다. 예수는 교회들이 “이성과 인간성”을 버리고 무작정 믿는 “그런 하느님”을 가르치지 않았다.
1세기 로마제국의 혹독한 치하에서 사람 답게,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받으며 살아가기를 갈망하던 유대인들이 해방과 자유와 온전함의 비전을 신약성서로 기록했다. 예수가 죽은 지 수십년에서 백여 년이 지난 후에 그들이 성서를 기록한 목적은, 이 땅에서 사는 날 동안에 자신들의 비전인 “하느님 나라”가 온전히 성취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의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 현세에서 완전히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삶이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성서저자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그의 삶의 모습에서 “하느님 나라”를 실제적으로 몸과 마음으로 체험했기 때문에 그것을 좋은 소식(복음)으로 선포할 수 있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현대 기독교인들은 예수와 성서저자들이 밝히는 “하느님 나라”의 원초적인 의미를 크게 오해하거나 왜곡하고 있다. 역사적 예수의 정신을 인식하고 살아내는 성서저자들이 밝히는 “예수의 하느님”은 인격신론의 유신론적 하느님이 아니다. 즉 하느님이란 객체적인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방식이고 궁극적인 비전이다. 따라서 성서적으로 예수의 하느님 나라는 장소가 아니며, 특히 죽음 후의 내세적 미래형이 아니라 철저히 현세적 현재형이다.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에서 성취되어야 할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환경에 대한 은유(metaphor)이다.
성서적인 예를 들자면, 마태복음서 저자는 충실한 유대인으로써 하느님이란 말조차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전통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서 그 대신에 “하늘 나라”(Kingdom of Heaven)로 대체했다. 그러나 마태의 표현은 “저 멀리 하늘 위에 존재하는 나라”(Kingdom in Heaven)처럼 들리기 때문에 마치 예수가 땅에 관해 말하지 않고 하늘에 관해 말한 것처럼, 이 세계에서의 삶에 관해 말하지 않고 다른 세계에 관해 말한 것처럼 들린다. 현대 기독교인들이 이것 이상 성서의 진실을 왜곡하는 것은 없다. 예수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1세기 로마제국이 통치하던 세계에서 정치, 윤리, 경제문제를 종교와 분리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예수와 성서가 선포하는 “하느님 나라”는 황제 시이저가 아니라 하느님이 로마제국의 황제로서 통치하게 된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시이저가 아니라 하느님이 거짓과 은폐 없이,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그리고 완전하게 모든 책임을 맡게 된다면 어떤 세상이 될 것인가라는 사회혁명적 도전이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종교적이면서 동시에 절대적으로 정치적인 개념이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도덕적이면서 동시에 절대적으로 경제적인 개념이다. 하느님은 과연 이 세계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하느님은 이 세계가 어떻게 운영되기를 원하는가? 예수와 성서가 선포하는 하느님 나라는 형이상학적인 하늘에 관한 것이 아니라, 형이하학적인 땅에 관한 것이다. 다시 말해 기독교는 하느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 세계의 인간에 대한 것이다. 예수의 기독교는 죽음 후의 내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이 세상에서의 완전하고 영원한 삶에 대한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는 세례 요한의 묵시종말적 희망을 인정하거나 수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이 하느님의 묵시종말적 개입을 믿으면서, 이 세상이 멸망하고 기독교인들만 구원받아 죽음 후에 천국에 올라갈 것을 기다리는 것은 예수를 배반하는 것이다. 세례 요한을 떠나 보낸 예수는 하느님의 묵시종말적 개입을 가르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제자들이 사회적 혁명을 일으키도록 도전했다. 예수의 정신에 따르면,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이 성취하고, 멋대로 조정하고 통제하는 나라가 아니라 전적으로 인간의 자율성과 창조성과 잠재력과 가능성으로 성취되는 인간적인 나라이다. 예수는 세례 요한의 묵시종말적 희망을 거부하고, 인간의 사회적 혁명으로서의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성서저자들은 이것을 증거하기 위해 예수 이야기를 기록했다.
현대 교회가 예수의 하느님 나라를 왜곡하는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고대 그리스어로 기록된 신약성서의 “바실레이야”(basileia)를 “나라”(kingdom)로 번역한 것에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로, 영어 표현의 “king-“ 부분은 전제주의적인 냄새가 짙다. 둘째로, 영어 표현의 “-dom” 부분은 일정 지역, 즉 지도상의 지리적 지역에 관해 말한다. 그리고 셋째로, 21세기 현대인들에게 전제군주에 의한 통치는 아무 의미도 없으며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예수가 태어났던 지중해 연안 세계에서 왕은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1세기에 바실레이아(basileia), 즉 왕권통치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유대교의 묵시종말적 예언자들만이 아니었다. 헬레니즘 세계에서 바실레이아는 공통의 주제였고, 그 문제는 어떻게 권력이 정의롭고 인도주의적인 방식으로 행사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복음서들은 인간의 힘이 행사되는 방식과 하느님의 의미가 행사되는 방식 사이의 차이 문제를 놓고 씨름하고 있었다. 예수가 “하느님 나라”라는 말을 사용하는 의도는, 오늘날 교회들이 믿는 죽음 후의 천국이 아니다. 예수의 말은, 만약 하느님이 직접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이 세계를 통치한다면, 다시 말해 “하느님이란 말의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의미”가 구체적으로 실현된다면, 이 세계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하는 도전과 요청이었다. 만약 하느님이 황제 시이저의 권좌에 앉게 된다면, 이 세계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오늘날 근본주의 교회들의 믿음대로 하느님이 기독교인들만 축복하고 구원하고 다른 종교인들은 징벌하고 지옥으로 보낼 것인가? 예수와 성서가 선언하는 하느님 나라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하느님 나라는 기존하는 모든 행태의 인간적 지배와 사회적 질서를 초월하고 또한 이를 문제시하는 이상적인 인간 삶의 모습에 대한 은유적 상징이다. 따라서 예수의 “하느님 나라”는 죽은 후에 가는 내세가 아니라, 지금 여기 현세의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혁명의 도전과 비전을 의미한다. 특히 21세기에 세계가 분열과 혼돈에 빠져 있는 때에 예수의 하느님 나라 비전은 인종과 종교와 정치의 경계를 넘어서고, 기존의 종교체제와 정치체제를 전복하는 개혁과 도전과 예리함을 그 의미 속에 함축하고 있다.
신약성서의 핵심 사상인 하느님 나라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은 말장난이 아니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 설교와 교육의 핵심은 사람들을 인간의 본성인 이성과 과학적인 지성으로부터 단절하여 철저히 격리시키고, 세상과 분리된 수도원적인 고립된 삶을 강요하고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열심히 다니기 시작하면 다른 종교와 사상을 지향하는 가족들과 이웃들과 상종하지 않고 특히 과학에 기초하는 주류 사회로부터 분리된 차별적이고 이기적인 고대 부족인이 된다. 그러나 예수는 이분법적이고 내세적인 망상의 자아도취에 빠지도록 유도하는 교리를 암송하고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유치한 짓을 가르치지 않았다. 예수는 자신의 모든 가르침을 자신의 삶에 적용했으며, 따르는 사람들도 그렇게 살도록 격려하고 도왔다. 예수는 단순히 이론가가 아니라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실행하는 혁명가였다.
결론적으로, 1세기에 예수는 사회적 격동기에 태어나고 성장하고 온갖 고통과 절망을 실제로 체험하고 살았다. 예수가 가르친 “하느님 나라” 비전을 들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내세적인 믿음이 아니라, 현세적인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예수의 하느님 나라는 100% 종교적이면서 또한 100% 정치적이었고, 100% 신학적이면서 또한 100%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것이었다. 예수의 가르침은 영적인 세계와 물질적인 세계를 분리하는 형이상학적이고 이원론적이고 관념적인 것이 아니었다. 예수는 그의 민족이 직면한 위기를 모른척하거나 외면하고, 이 세계를 도피하여 죽은 후 천국에 올라가는 망상을 철저히 반대하고 거부했다. 따라서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98%의 민중들은 예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용기와 힘과 희망을 얻었다. 안타깝게도 인격신론의 초자연적인 하느님을 신봉하는 성전종교는 백성들을 저버리고, 권력과 부를 보호하기 위해서 로마제국의 시녀로 전락했다. 오늘 현대 교회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는 하느님에 대한 관념적인 믿음과 내세의 천국에 대한 망상에 빠진 사람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이라고 규탄했다. 예수는 지금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대안을 제시했고, 사람들이 행동에 옮기도록 초대하고 격려했다.
예수가 소위 거룩하고 깨끗하다고 자랑하는 사람들로부터 “탐식가의 술주정꾼이요, 세관원과 범법자의
친구”라는 험악한 비판을 받았던 가장 큰 원인은, 당시 종교체제가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관습적인 사회 규범들을 위반하면서까지 모든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는 개방된 공동의 식탁에 초대했기 때문이다. 예수는 거룩한 믿음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는 세속적인 세상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어울려서 함께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삶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몸소 보여주었다. 예수는 구원받을 믿음에 대해서 미사여구로 장황하게 떠벌리는 설교가가 아니었다. 예수는 인종과 종교의 경계 넘어 담대하게 살아가는 세속적이고 적극적인 실천가였다. 예수의 개방된 식탁은 새로운 사회를 위한 축소된 모형이었으며, 이와 똑같은 일이 예수의 병고침에서도 드러났다. 물론 성서가 예수의 병고침 이야기를 기록한 목적은, 예수의 신성이나 초자연적인 기적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었고, 또한 단순히 개인적인 연민의 행위도 아니었다. 예수는 성차별과 인종차별과 종교차별에 기초한 기존의 사회적 윤리관과 가치관을 전복시키고, 지금 여기에서 살아내는 우주적이고 통합적인 하느님 나라의 삶을 보여주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예수는 형이상학적이고 내세적인 추상적 사상들을 가르치지 않았다. 죽음 후의 “천국”은 예수와 성서와 아무 상관이 없다.
[필자: 최성철, 캐나다연합교회 은퇴목사, 전직 지질학자]
<더 읽을 책>
*** (본 칼럼의 생각들은 이 책들에서 나왔다. 이 책들을 통해 세계의 과학 철학 종교 사상에 대한 미래의 물결을
이해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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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카우프만. 예수와 창조성. 한국기독교연구소, 2009
스티픈 패터슨. 수난을 넘어서: 예수의 죽음과 삶 새로 보기. 한국기독교연구소,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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