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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히치하이커
작성자 외노자     게시물번호 18015 작성일 2024-05-23 13:24 조회수 990

 

12월 중순, 영하 20도를 근접하는 날씨에 알버타 테이버에서 버거킹용 프렌치 프라이를 가득 실었다. 꼬박 4박 5일을 달려 조지아주의 소도시에 도착해 짐을 내렸을 땐 한 여름 날씨로 탈바꿈되었다. 나도 현지인과 마찬가지로 얇은 바지에 반팔을 입고 돌아다녔다.

 

다음 짐은 루이지에나 소도시에서 A&W에 납품할 고구마 프라이를 실어야 한다. 이번 트립에서 나의 역할은 탄수화물 전달자다. 추운 곳의 감자를 튀겨 남쪽에 갖다 주고 따뜻한 곳의 고구마를 튀긴 걸 다시 북쪽으로 가져다 준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 짐을 가져다 주는게 정확히 5일 전에 내가 감자튀김을 실었던 곳이라는 것이다.

 

조지아 주에서 알라바마와 미시시피를 거쳐 꼬박 하루를 달려 루이지에나의 델리라는 소도시 쉬퍼에 도착했다. 장대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와중에 짐을 실었다. 짐을 싣고 나니 밤이 어두워져 쉬퍼 야드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비옷을 입고 화장실에 갔다가 트럭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가니 반갑지 않은 손님이 보였다. 파리 한 마리가 윙윙 날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짜증이 솟구쳤다. 파리가 캡 안에서 날아다니면 여간 귀찮은게 아니다. 운전할 때 눈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며 신경 쓰이게 만든다. 쓰고 있던 모자로 때려 잡으려 해도 날렵한 파리를 잡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놈을 잡는 거에 신경 쓰다가 사고를 낼 뻔한 적도 있다. 예전에 네브라스카 주의 스카일러에 있을 땐 한꺼번에 세 마리의 파리가 캡 안에 들어와서 며칠 동안 고생한 적도 있다.

 

비에 젖은 비웃을 단도리 한 후 파리를 때려잡기 위해 모자를 손에 들고 캡 안 중간에 가만히 서서 놈을 수색했다. 녀석은 나의 살기를 느꼈는지 어딘가에 숨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놈을 잡아 죽이는 걸 포기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새벽 비가 그쳤다. 처음 출발했던 곳, 테이버로 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했다. 비가 그친 뒤 상쾌한 기분으로 한적한 도로를 달렸다. 잠시 후 날이 밝았다. 그리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어제 그 파리놈이 내 눈앞을 붕붕거리며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아이 씨~”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욕이 나왔다. 왜 이렇게 파리는 뒷자석에서 날아다니지 않고 내 눈앞에서 붕붕거리는 걸까?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파리들이 이렇게 운전사를 짜증 나게 한다.

 

놈을 무시하며 달리는데, 자신이 무시당하는게 화가 나는지 놈이 대담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핸들을 잡은 내 손등 위에 내려앉은 것이다. 다른 손으로 놈이 앉아 있던 내 왼손바닥을 내려쳤다. 트럭이 크게 흔들렸고 놈은 나를 비웃듯이 날아가 버렸다.

 

한참 후에 그 녀석은 GPS 화면 위에 앉아 돌아다녔다. 그리곤 가만히 멈춰 두 손을 비비기 시작했다. 나는 살그머니 모자를 벗고 녀석을 노려봤다. 그 녀석의 허점을 노려 모자로 gps를 내려쳤다. GPS 흡착판이 떨어졌고 트럭이 또 한번 크게 흔들렸다. 녀석은 나의 되도 않는 시도를 비웃는 듯이 다시 내 눈 주위를 몇 번 빙빙 돈 후 운전석 옆 차창에 자리를 잡았다. 놈을 놀래키지 않으려 조심하며 가만히 운전석 창문을 내렸다. 보통 이렇게 하면 파리들은 바람에 빨려 밖으로 쫓겨나곤 한다. 그런데 이놈은 그 경우가 아니었다. 창문이 열리기 시작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올라 뒷편 침대 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성가시기 짝이 없는 놈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어릴 땐 파리가 참 많았었는데 요즘은 그래도 보기가 힘들어진 셈이기는 하다. 특히 캐나다로 이사 와서는 집에서 파리를 접한 기억이 별로 없다. 여름에 미국으로 건너와서나 가끔 파리를 본다. 근데 지금은 12월 말이다.

 

여튼, 어릴 때 파리와 관련된 기억이 참 많다. 사방을 둘러보면 어디나 파리가 있었다. 대부분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어서 파리를 잡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많았다. 독극물을 밥에 섞어서 접시에 놓아 두면 파리가 먹고 죽었다. 그 접시 주변으로 파리 시체가 즐비했다. 천장에 끈끈이를 쭉 매달아 놓기도 했다. 파리들이 끈끈이에 붙어 잔뜩 죽어 있었다. 여기저기에 파리채가 있었는데 그걸로 파리를 잡으며 노는게 나의 일상이기도 했다.

 

파리를 이렇게 잡아 대는 건, 이놈이 음식물에 앉으면 알을 까고, 곧 그 음식은 구더기로 뒤덮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 상에 올려져 있던 고등어구이에서 뭔가 꿈틀대 자세히 보니 한쪽이 완전히 구더기로 뒤덮여 있는 것도 봤다. 김치와 풀떼기 뿐인 밥상 위에서 유일한 단백질원이었던 고등어구이를 그렇게 못먹게 돼서 무척 화가 났었다.

 

파리에 대한 두서없는 잡상을 하며 운전을 하고 있는데 이녀석이 또 내 눈앞에서 붕붕거린다. “너 인마 조심해! 나 어릴 때 너 많이 죽였어.” 놈에게 경고했다.

 

어릴 때 곧잘 파리를 가지고 놀았다. 비닐봉지로 파리를 생포하면 날개를 떼고 다리를 뽑으며 고문했다. 생포한 파리를 모기향 연기에 갖다 대고 죽는지 어떤지 실험하기도 했다. 결국 모기향 연기는 파리를 죽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서서히 모기향 불꽃에 놈을 갖다 대고 불고문을 하기도 했다.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었다. 파리 놈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는다. 예전처럼 음식물을 바깥에 방치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놈이 나의 안전에 해가 될 확률은 0%에 근접한다.

 

어릴 때, 파리 흔적은 어디에나 있었다. 화장실에 가면 구더기들이 드글거렸다. 그놈들은 짧은 번데기 과정을 거쳐 파리로 변신할 거였다. 파리들은 음식을 먹은 후 벽에 붙어 다시 게워낸다. 그리고 그걸 다시 빨아 먹는다. 파리가 그 짓을 한 후에는 검은 반점이 남는다. 집안 벽지와 천장과 형광등에 파리가 남긴 검은 반점들이 그득했다.

 

다음 날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 북쪽으로 올라가며 날이 선선해져서 살 만했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  파리놈이 다시 나타났다. “야 인마, 너 빨리 나가야 돼. 위로 올라가면 추워서 너 못 살아.” 놈에게 경고했다.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

 

이놈은 도대체 어떤 인연으로 나와 같이 여행하게 된 걸까? 이놈은 언제 태어났을까? 얘는 어디서 구더기 시절을 보냈을까? 번데기에서 파리로 우화했을 때, 놈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갑자기 놈과 여러 가지 대화를 하고 싶어졌다. 우리끼리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하다는게 참으로 안타까워졌다.

 

“너는 알에서 깨어난 순간을 기억하니? 네가 알에서 나왔을 땐 조그만 귀여운 구더기였겠구나! 번데기에서 파리로 변했을 땐 어떤 기분이었니?”

 

놈에게 두서없이 질문했다. 대답을 절대 들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래도 모처럼 시작한 대화를 중단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너랑 비슷한 경험이 있어. 몇 년 전에 갑자기 캐나다로 이사 왔어. 알고 있던 모든 사람을 뒤로 하고 지구 반대편에서 살아가게 된 거지. 완전히 인생이 리셋된 거야. 그러니 네가 갑자기 번데기에서 파리가 됐을 때 기분이 이해될 것도 같다.”

 

녀석은 내 앞에서 도발을 해도 내가 반응하지 않고 이상한 말들을 해대자 실망했는지 멀찍이 앉아 두 다리를 비비기 시작했다. 놈은 한국에서 보던 파리보단 약간 작은 몸집을 하고 있었다. 대시보드에서 이리로 걷다가, 저리로 걷다가, 가만히 앉아 두 다리를 비비다가, 그 팔로 다시 자기 머리를 쓸어내리기도 했다. 며칠 밥을 못 먹었는지 놈의 배가 홀쭉했다.

 

갑자기 내 자신이 한심하게 생각됐다. 파리에게 말을 걸다니 제정신이 아니다. 그냥 앞만 보며 운전에만 집중했다. 이상하게 눈동자 안에서 비가 오는 듯 윈드 쉴드 너머 풍경이 흐릿해졌다.

 

그날 저녁 일을 마치고 아내가 싸준 된장찌개를 해동해서 먹었다. 뒷정리를 하고 바닥에 떨어진, 된장찌개에 버무려진 밥알 몇 개를, 마치 못 보고 실수로 빠뜨린 것처럼, 테이블 위에 남겨 놨다. 먹던가 말던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날은 점점 추워졌다. 간간히 내리던 비는 눈으로 변한지 오래다. 히터를 틀어 놓은 덕분에 캡 안은 훈훈했다. 덕분에 파리놈은 내 앞을 자유로이 날아다니고 있다. “한계점은 넘었다, 인마. 넌 지금 나가면 10분 안에 얼어 죽을거다. 꼴 좋다.” 알아들을 리 없는 말을 놈에게 쏘아 줬다.

 

갑자기 어릴 때 tv에서 본 찰스 린드버그에 대한 흑백 영화가 생각났다. 그는 최초로 뉴욕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무착륙 단독 비행을 성공시킨 사람이다. 33시간 동안 그는 단 한숨도 못 자며 대서양을 건넜다. 영화는 33시간 동안의 그의 고독을 그리고 있었다. 하늘에서 완벽하게 혼자가 된 그에겐 친구가 있었는데 바로 그의 비행기에 몰래 탑승한 파리 한 마리였다. 그는 파리와 여러 가지 대화를 하며 대서양을 건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것은 영화적인 설정일 뿐이다. 린드버그의 비행기는 무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창문조차도 없었다. 영화 속에서 그는 방한복을 잔뜩 껴입고 추위에 덜덜 떠는 장면까지 나온다. 그런 환경속에 어떻게 파리가 있을 수 있었겠는가. 린드버그와는 달리 나의 파리는 진짜다. 봐라, 이렇게 내 눈앞에서 붕붕거리고 있지 않는가. 차창 밖으로 세상은 눈으로 뒤덮인 완벽한 겨울 풍경이다. 파리가 날아다니고 있는 겨울 풍경! 특이하면서 운치 있다.

 

“야 밖에 눈이 보이니? 파리 중에서 죽기 전에 겨울 풍경을 보는 놈이 과연 몇 마리나 될까? 너 임마 참 운 좋은 줄 알아라. 나 때문에 눈 구경도 하고 말이다. 히히!”

 

내 눈앞의 파리처럼 나도 이레귤러다. 태어난 나라에서 살다가 죽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갑자기 다른 나라로 이사 가서 정착하는, 이른바 이민이라는 것을 하는 삶도 극히 드문 종류의 인생이다. 잘못 탄 트럭에 이끌려 겨울 속으로 끌려온 이 파리처럼, 나도 부지불식간에 삶의 흐름을 따르다 보니 지구 반대편으로 이민을 하게 됐고,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못 했던 트럭 운전을 하며 북미대륙을 누비고 있다.

 

그날 일을 마치고 며칠 만에 샤워를 하기로 했다. 갈아입을 옷을 챙기고 히터가 잘 켜져 있는지 확인을 한 후 파리가 주변에 없는 것을 꼼꼼히 체크한 다음에 트럭 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훅 들어왔다. 다시 한번 파리가 주변에 없는 걸 확인한 후 밖으로 나가서 재빨리 트럭 문을 닫았다.

 

샤워를 마치고 다시 조심조심 트럭 안으로 들어왔다. 파리 녀석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혹시 밖으로 빨려 나간 것은 아니겠지, 약간의 걱정 속에서 잠 잘 준비를 했다.

 

다음 날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날은 더욱 거칠어졌다. 수은주는 영하 20도를 밑돌았다. 한참을 달리다가 드디어 파리녀석이 기력을 되찾았는지 내 눈앞에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안도감이 들었다. “야 이 녀석, 어제 밖에 빨려 나가서 얼어 죽었는 줄 알았다, 인마.” 또다시 주저리 주저리 되도 않는 말들을 파리에게 건네기 시작했다.

 

장거리 트럭 운전은 외로운 일이다. 그래서 많은 트럭 운전사들이 애완동물을 태우고 다닌다. 어떤 트럭 스탑에는 이런 애완견을 위한 Unleashed dog park 까지 있다. 우연하게 히치하이킹을 한 파리 녀석과 대화를 하다 보니 애완견을 태우고 트럭을 모는 운전사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이 트립을 처음 시작했던, 감자튀김을 실었던 바로 그 장소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들려 서류를 건내고 도어를 지정받을 때 같은 회사 운전사를 만났다. 그는 내가 이 회사에 입사 지원했을 때 나를 테스트했던 운전사였다. 그때 그는 내 실력을 탐탁치 않아 했는데, 전화 면접을 한 사람의 요청으로 내가 전 직장을 미리 때려친 것을 알고 마지못해 합격시켜 줬었다.

 

“헤이~ 여기로 배달을 왔어? 흔하지 않은 일이군. 어디서부터 온 거야?”

 

“루이지애나”

 

“정말? 먼 데서도 왔네! 네가 거기서부터 올 실력이 되는지 의심스러운 걸?”

 

“호, 못 믿겠다면 증거를 보여 줄 수도 있어. 거기서부터 따라온 파리 한 마리가 내 트럭 안에 날아다니고 있거든. 한번 볼래?”

 

주변의 다른 운전사들과 사무실 직원들이 모두 한바탕 웃었다. 영하 20도를 밑도는 12월에 어울리지 않은, 날아다니는 파리라는 그림이 그들을 빵 터뜨렸을 것이다.

 

배달을 마치고 오코톡스의 회사 야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2시간 반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다. 보통 집에 가기 위해 회사 야드를 향할 땐 무척 즐거운 기분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가 못했다. 이 파리놈을 어떡하지? 집에 데려가면 제일 좋으련만 이놈이 순순히 잡혀 줄 것인가?

 

걱정 속에서 회사 야드에 도착했다. 빈 트레일러를 분리하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파리 녀석은 눈에 띄지 않았다. 짐을 다 챙기고 나서도 침대에 걸터 앉아 한참을 기다렸다. 시동을 끈 트럭 내부는 점차 서늘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포기하고 주차장에 주차된 내 차를 트럭 옆에 세웠다. 트럭 캡에서 짐들을 승용차 트렁크로 옮기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캡 안을 살폈다. 주변 풍경과 캡 안의 기온은 더 이상 날아다니는 파리가 어울리지 않은 상황이 됐다. 트럭 문을 쾅 닫았다. 내 마음의 문도 쾅 닫혔다.

 

예열이 덜 되어 아직도 끼릭거리는 엔진소리가 요란한 오래된 내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나의 중고 승용차처럼 오래된 내 가슴 속의 뭔가도 계속 끼릭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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