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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질문:흑백사진
작성자 안희선     게시물번호 -1746 작성일 2005-09-09 19:32 조회수 1327

말씀해 주신 바와 대동소이합니다.

저 역시 그런 의미에서 '흑백사진'을 말했습니다.

 

그것을 현재진행형으로 표현한 것은 (찍히는),

과거의 어떤 지나간 시점의 추억을 인화印한 것이 아니라,

정지된 시간으로서 내 안에 항상恒하는 추억이 불현듯,

인화되는 의미로 그리 표현하였습니다.

 

때로는 본체本體보다도 그것의 그림자가 더욱 진하고

뚜렷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진으로 말하자면, 칼라사진보다도

흑백사진이 더 많은 걸 말해주듯이...

 

 

기울여 주신 관심과 너그러운 평문에 다시 한번

깊은 감사드립니다.

 

 

건안하소서.

 

 





☞ 김창한 님께서 남기신 글


저의 어줍잖은 감상문들을 늘 관대하게 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말로 저는 시를 잘 모릅니다문학 작품을 지난 몇 년 동안 한 두 권이나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인문사회과학책에 파묻혀 사는 마음이 메마른 사람입니다
.

그래서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이렇게 시를 쓰시는 분과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간간히 시를 읽으면서 제가 잊고 사는 것, 아니 마음으로 느꼈지만 표현하지 못한 것을 시를 읽으면서 공감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 번 시에 저를 사로 잡은 것은 바로 흑백사진이라는 단어입니다. 안 선생님의 시에서 흑백사진이 어떤 의미를 함의하는지 한참 생각하였지만, 그 깊이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흑백사진을 칼라 사진과 대비를 해 보았습니다. 칼라 사진이 나의 지금을 표상하는 직접적 경험이라면 흑백사진은 경험이 내면화 되어 마음 속에 고착된 것, 기억이 아닐까 속단을 내려 보았습니다. 기억은 과거의 삶의 일거수 일투족을 찍은 것이 아니라 내 경험의 렌즈, 즉 흑백 카메라를 통해서 찍인 것, 또는 과거의 직접적 경험이 시간이라는 연대기적 흐름 속에 색이 바래서 된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기억은 나의 직접적 경험이 한 단계 걸러진 것으로서 이것이 흑백사진으로 표상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소리없이 찍히는이라는 표현에서 저의 생각의 단상들이 막다른 길목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진이 소리없이 찍힌 과거가 아닌 찍히는 현재라는 시제에서 그만 막혀 버렸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과거의 직접적 경험이 되살아는 방식이 바로 흑백으로 소리없이 찍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의 속단착각이 독자로서의 제 마음을 울렁거리게 했습니다. 망각의 늪 속에서 건져진 기억이 회상되는 것이 흑백사진 같은 방식으로만 가능한 것이구나. 이것이 바로 삶의 연륜이 가져다 주는 슬픔이로구나하고 마음의 탄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질문을 한다고 해놓고 엇나갔습니다.
흑백사진이 무엇을 지시하는지?

감사합니다.

김창한 올림 





☞ 안희선 님께서 남기신 글

부족한 시에, 과분한 평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선생님도 언급을 하셨듯이, 시의 착상은 물론 현실에 기초하지만
외부세계의 구체적 사물이라함은 결국 시적詩的 정서를 위한
자극일 뿐이어서 시인은 궁극적으로 그것으로부터

투사적 등가물等價物만을 시로서 취하게 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가을이 깊어갑니다.
나는 이 가을만큼 깊어지고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 김창한 님께서 남기신 글


안희선 回想記
-김창한

 

 

마음의 가을
-안희선

휘청이는 몸으로
힘겹게 붙들고 있는,
영혼의 홀씨

홀로 깊은 마음 속에
소리 없이 찍히는,
흑백사진

눈물인, 그대의 흔적 위로
말없이 쌓여가는
애수(哀愁)어린 낙엽

, 노랗게 여위어 가는
가슴의 추억 하나

마른 위에
쓸쓸히 부서지는
햇빛 같은,

1.     물상화의 거부와 새로운 조우

내가 이 시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내 마음의 거울로 착각했다. 그런데 나의 착시가 오히려 전혀 의미없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 것은 이 시가 갖고 있는 독특한 특성 때문이었다.

안희선 시인은 시
내 마음의 가을을 통해서 事物이 단순하게 여기 저기 널려 있는 객체가 아님을 보여 준다. 이것은 시인이 지고가야 할 어쩔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일 터이지만, 이런 운명적 조우는 시를 잉태시키게 한다. 즉 시라는 것은 삶의 현실 속에 이루어지는 헤아릴 수 없는 만남이 빚어져서 된 것이 아니겠는가.

홀씨, 흑백 사진, 낙엽.
이 세 단어는 개별적으로 서로가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런데 이 시어들이 가을이라는 추상적 주제 속에 깊은 의미연관을 드러내며 한없는 쓸쓸함과 처연함을 자아내는 의미소의 역할을 한다. 이 시어들에는 잊음과 회상의 변증법적 갈등이 선명히 드러난다. 이 의미 연관을 빚어 내는 陶工의 역할을 하는 것이 시인이다.

 

2. 실재는 투사 (projection)가 아니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 형성의 陶工인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자연, 또는 사물에 마냥 투사하는 것일까? 만일 그것이 투사에 그치고 만다면, 시인은 자연적 실재 (reality)의 배반자가 된다. 아래의 두 연을 보면, 그것이 여기 저기 널려 있는 사물이 아니라 시인의 마음의 얼개에 걸린 피사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물의 피사체는 아름다운 시어로 시인의 마음 속에 흘러 들어간다.

 

) 휘청이는 몸으로/ 힘겹게 붙들고 있는, /영혼의  ==è홀씨
) 홀로 깊은 마음 속에/ 소리 없이 찍히는,  =è흑백사진

휘청이는 , 힘들게 붙들고 있는 영혼

이런 삶의 고독과 고달픔에 지친 몸과 영혼이 한낱 홀씨로 드러나고 누구도 알지 못한 체 내 마음 속에만 깊이 간직된 기억이 흑백사진으로 표상된다. 기억은 현재의 내 삶에서 결코 다시 경험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흑백사진처럼 고착되어 있다.

그런데 오 이걸 어쩌나! 이 시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구절에 이르러 독자인 역시 낙엽이 눈물져 내린다
.

눈물인, 그대의 흔적 위로
말없이 쌓여가는
애수(哀愁)어린 낙엽

이 연에서는 아예 대상과 내가 따로 없다. 이 곳 (공간적 은유로 표현할 수 있다면)은 제 3의 공간이다. 이 곳은 시인의 마음도 아니요, 대상 자체도 아니다. 이 곳은 대상적 사물이 드러내는 것과 내 마음의 지향이 만나는 곳, 다시 말해, 대상적 주체와 나라는 주체가 만나는 공간이다. 이것을 이름하여 의미의 구조 (structure of meaning) 라고 해 보자.

우리는 사물 자체에 접근 할 수 없다. 사물은 자신을 드러내며 은폐한다. 내가 사물을 내 경험으로 수용하는 것은 내 마음을 사물에 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물을
향해(指向)있기 때문이다. 마치 이것은 내가 카메라 렌즈를 사물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같다.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 피사체는 렌즈에 들어오는 막연한 사물의 일부가 아니라, 내가 그 사물을 향해 나를 드러내는 것이고 사물은 나의 지향성에 응답 하는 것이다.
 
===
è 나라는 주체 + 대상적 주체 ç=== 사물


이제 낙엽은 흑백 사진처럼 각인된 나의 기억을 회상시켜 주는 기능을 한다. 내 눈물은 그대의 흔적이다. 시적 화자의 눈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 눈물=그대의 흔적이라는 등식은 다름아닌, 흑백사진처럼 각인된 내 기억 또는 추억이 드러나는 통로다. 흑백사진처럼 기억으로 정지되어 있는 것이 눈물로 드러나는 것이다. 즉 마음의 흑백사진은 내가 현재 간직하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 흑백사진이 현재 바로 지금 다시 경험되는 것이 눈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흑백사진 (=그대의 표상)이 눈물져 흐르게 하는 것은 낙엽이라는 것이다.

, 노랗게 여위어 가는
가슴의 추억 하나

결국, 낙엽은 가슴의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나와 공감하는 너이다. 그냥 낙엽이 아니라 나의 주체를 드러내난 낙엽이다.

그래서 낙엽으로서의 또한

마른 위에
쓸쓸히 부서지는

것이다.


3.
흑백사진
누구나 추억의 흑백사진을 갖고 있다. 추억의 회상 속에 사는 사람들은 물리적으로도 흑백사진의 세대다. 모든 것이 화려하고 풍요로운 이 세상. 삶의 여가와 물질적 넉넉함이 행복의 척도로 가늠되는 세상.
그러나 우리는 가을이라는 자연적 현상 속에서 삶의 깊이를 배워야 되지 않을까? 그것이 결코 다채로운 색감으로 채색될 수 없을지언정, 꺼내기만 해도 눈물져 흐르는 추억의 상흔일지언정, 가을을 느끼고 싶다.
내 마음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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