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안내   종이신문보기   업소록   로그인 | 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자유게시판
내 가슴에 사과나무를 심고..
작성자 토론토     게시물번호 -99 작성일 2003-10-17 14:27 조회수 2467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오늘도 변함없이 나는 신선한 아침공기에 흠뻑 취하여 하루의 의미가 이렇 게 산뜻함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나의 소중한 삶의 터전인 조그만 캔디 샵(candy shop)으로 달리 고 있다. 그래, 3년전 오늘, 내 가슴에 한 그루의 작은 사과나무를 심고 따스한 부모님과 형제들, 다정한 이웃과 친구들을 멀리하고 좀 더 많은, 좀 더 탐스 런 사과를 맺기 위해 이곳 캐나다의 동부 끝 핼리팩스에 우리 가정의 둥지를 틀었다. 거의 빈 손으로 시작하여 가진 것이 없이 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 인줄 알면서도 아직은 젊다는 패기와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 다는 용기가 있었기에 오늘도 나의 사과나무는 탐스런 사과를 맺기위해 힘들지 않나 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땐 모든 것이 낯설어서, 마음의 각오는 어느 정도 하고 왔지만 하루아침에 부디치는 낯선 얼굴과 언어에 깜짝 깜짝 놀랬고, 점점 삶의 용기가 줄어드는 것을 느낄 때엔 내가 왜, 이곳에 와 있지? 하는 향수병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었다. 하지만, 빈손으로 왔기에 정착이라는 의미도 모른채 도착 며칠후, 어느정도 시차가 적응된 후 부터는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우선 이 도시의 지리를 알아야만 했고, 무언가 정복하고 싶은 마음으로 부지런히 헤메고 다녔다. 그렇게 헤메고 다니길 석달 후, 삶은 피부로 느꺼지는 것일까?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내 숙제임을 알게되었고 그 래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되었다. 하얀 와이샤스에 푸른 타이를 메고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일을 새로 운 마음으로 시작한다는 것이 더 설레게 했다. 구멍가게! 동네 어귀에 있으면서 코 흘리개 돈을 받아 쥐어야 하는 조금 허름한 구멍가게를 인수하게 되었다. 아마 이것이 이곳에 도착한 후 3개월만의 일이었다. 우리가게는, 핼리팍스의 할렘가라고 부르는 헤링코브 로드(Herring Cove Road)에 있었고, 너무나 낡은 건물에 있는 볼품없는 가게였다. 하지만, 첫날부터 내 남편과 나는 '손님이(은) 왕' 이라는 나름대로의 철학으로 우리 가게를 찾는 손님 한사람, 한사람을 진심 으로 존중했고, 참마음으로 친절함을 베풀었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단골손님을 만들어 갔고, 다정한 이웃으로 서로의 마음을 나누면서 자리잡아 갈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영어를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니어서 몇 달 동안은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우선 , 모든 것이 자신이 없었고,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래서, 단 10분도 손님과 캐쉬어(Cashier)의 관계 일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 구멍가게를 위해서 할 일은 너무도 많았다. 나는 일주일에 2-3번 정도 조금 더 싼 가격에, 조금 더 많이 물건을 구입해야만 했고, 그것이 이곳 사람들에게 창피한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비가 웬종일 퍼붓는 한여름에도, 한겨울의 지독한 추위에도 손을 불어가며, 울컥울컥 목아래로부터 솟아오르는 서러움 을 참아내면서,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인생의 참맛이 이곳에 있음을 겸손되이 받아들였다. '건강한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아마 나는 두 번 다시 느껴지지 않을 소중한 육체적 피로에 푹 빠지곤 했다. 아무튼 우 리 가게는 인수한지 몇 달만에 전 주인의 매상보다 50% 이상의 매상을 올렸고, 그곳에 가면 친절한 동양인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점점 많아졌다. 그랬다. 이곳 사람들은 '손님을 왕'으로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는 피부색이 노란 친절한 한국인이 좋았고, 우리가게는 그 소박함 속에서 점점 더 번성하는 가게가 되었다. 또한, 그들이 나누어주는 따스함에 감동을 했다. 그해 겨울에 손님중 한 분이 조끼를 손수 뜨개질하여 추운날 물건 할 때 따습 게 입으라고 선물해 주셨고, 어떤 손님은 우리 가족의 양말을 모두 손뜨개질 하여 가져오시는가 하면, 어떤 손님은 음식도 나누 어 먹어야 정이 든다고 정성스레 만든 음식을 나누어 주셨다. 나는 다시 한 번 가슴이 뭉클 했었다. 이곳에 와있는 같은 민족 끼리도 그리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 같았는데... 그래서 나는 그 삶의 향기 속에서 아침 6시에 일어나 새벽 1시에 잠들기까지 몸 속에 베어 있는 서글픔과 그리움을 몰아낼 수 있었고, 그저 살아가기에 바쁜 한 남자의 부지런한 아내였다. 이런 작은 정성이 있는 곳에 삶의 향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나와 남편은) 더 더욱 그 (가게 손님)들의 인생을 소중히 생각했고, 그들은 우리 가게에 와서 그 동네의 복덕방인양 그 들의 이야기를 수없이 토해내곤 했다. 나는 딸아이의 작은 옷을 깨끗이 손질하여 그 동네 아이들에게 넘치지 않는 정성을 베풀었고, 우리들은 결코 이방인이 아니라 생김과 모양이 달라도 이렇게 서로 보듬어 가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고, 정착이란 사과 열매를 맺기위해 또 한 번 뿌리 깊숙히 힘들면서도 기쁨에 넘치는 단물을 힘껏 빨아 들였다. 하지만, 나는 1년 6개월간의 짧은 시간속에서 가게를 정리하게 되었는데, 어느 가족은 결코 너희 한국인을 잊을 수 없다며 기꺼히 기념 촬영하였고, 정성으로 만든 이별의 카드에선 곱게 쓰여진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후 그들은 캘거리로 이사가면서 많은 아쉬움 속에서도 너희와 같은 한국인을 만나고 싶다고...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닐까? 아마, 서로 존중해주고 아껴주고 싶은 따스한 가슴을 나누며 사는 것이 아닐까? 그 누구든지 마찬가지겠지. 그후 우리는 무엇을 하던지 자신감이 있었고, 나는 가게를 정리한후 몇 개월만에 짧은 영어 실력 으로 작은 Candy shop을 다시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참 정성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것! 그들을 인정해 주는 것 만이 내가 이곳에서 정착할 수 있는 지름길임을 배울 수있었다. 오늘도 나는 열심히 정성스럽게 나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내가 한국인이고, 내가 받았던 사랑에 대한 보답이라고 믿는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처한 환경이, 형편이 너무나 부족 한 것이 많을지라도 내 가진 것의 조금씩! 참사랑으로 나누면서 살아야겠지! 그들이 한국인이든, 캐나디언이든, 흑인인든.... 왜냐면, 우리는 하나이기에.... 끝.

0           0
 
다음글 게시판에서 싸움은 이렇게 벌어진다.
이전글 동업 제안합니다.
 
최근 인기기사
  캘거리-인천 직항 내년에도 - ..
  앨버타 최고의 식당은 캘거리의 ..
  (종합) 앨버타 두 곳 대형 산..
  캘거리 대학 ‘전례 없는’ 상황..
  캘거리, 에드먼튼 타운하우스 가..
  캘거리 일회용품 조례 공식적으로..
  전국 최고 임금 앨버타, 어느새..
  캐나다 생활수준 40년 만에 최..
  캘거리 주민들, 인근 소도시로 ..
  캘거리 스토니 트레일 충돌 사고..
  세입자, 모기지 가진 집주인보다..
  캐나다 이민 커트라인 점수 크게..
자유게시판 조회건수 Top 90
  캘거리에 X 미용실 사장 XXX 어..
  쿠바여행 가실 분만 보세요 (몇 가..
  [oo치킨] 에이 X발, 누가 캘거리에..
  이곳 캘거리에서 상처뿐이네요. ..
  한국방송보는 tvpad2 구입후기 입니..
추천건수 Top 30
  [답글][re] 취업비자를 받기위해 준비..
  "천안함은 격침됐다" 그런데......
  1980 년 대를 살고 있는 한국의..
  [답글][re] 토마님: 진화론은 "사실..
  [답글][re] 많은 관심에 감사드리며,..
반대건수 Top 30
  재외동포분들께서도 뮤지컬 '박정희..
  설문조사) 씨엔 드림 운영에..
  [답글][답글]악플을 즐기는 분들은 이..
  설문조사... 자유게시판 글에 추천..
  한국 청년 실업률 사상 최고치 9...
 
회사소개 | 광고 문의 | 독자투고/제보 | 서비스약관 | 고객센터 | 공지사항 | 연락처 | 회원탈퇴
ⓒ 2015 CNDrea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