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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이전에 사랑을 회복해야..
작성자 내마음의 평화    지역 Calgary 게시물번호 3795 작성일 2011-03-05 09:32 조회수 1202
사진의 인물이 신부님 맞는가요? 생기신 것이 꼭 어떤 가수랑 닮아서 잠깐 멈칫 했습니다. 그 가수는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ㅋ
아무튼 오늘 날씨도 추운데 이 다큐나 보아야겠습니다.

아프리카님의 광팬 중 한사람으로서 댓글로 답을 달다가  길어지는 바람에 답글로 올립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잘못된 기독교의 폐단으로부터 자유롭지가 않습니다. 특히 최근 개신교의 장로가 다시 대통령이 된 이후로 이 왜곡되고 굴절된 사회의 모습은 더욱 심화 되었고 마치 이 나라가 신정일치의 국가인것처럼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 것은 당연히 예수께서 원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부조리한 나라의 모습의 원인이 된 한국 기독교의 근본주의적이고 교조적이며 세속적인 모습, 탈예수적인 우상화로 치닫는 그 범죄적이기까지한 타락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는 것은 기독교를 믿고 아니 믿고를 떠나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여깁니다.

오늘 아침 출근 중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가 진정 선교를 꿈꾸고 이땅의 천국을 원한다면,
교회가 정녕 예수님의 몸된 교회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교회는 철저히 가난해져야하고 아무 세상적인 권력이 없는
힘약한 존재가 되어야한다고.
그것이야말로 자신들이 그토록 외쳐대는 예수님의 방식이라고.

예수께서는 얼마든지 자신의 가지신 능력으로
단숨에 세상을 바꿀 수도  있는 존재였지만,
그 분은 철저히 가난했고 철저히 약한 존재로 머무셔서
모든 힘있는 것들, 돈있고 권세 있고 명망있는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멸시받고 천대받고 쫒겨 다니며 때론 숨어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세상 누구도 가지지 못한 힘으로, 능력으로,
그 위대한 사랑으로, 뜨거운 가슴으로, 눈물로,
그리고  불굴의 정신과 위대한 말씀, 즉 로고스로 이 세상을
변화 시키셨습니다.

그 분은 하늘의 군대를 동원할 수 있다 하지 않습니까
세상의 모든 물질의 복의 근원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분은 산상에서 수많은 군중들을 모아 놓고 셜교하실 때
요즘처럼 앰프 시설하나 없이 육성으로 설교하셨지만
수천 수만명의 힘들고 가난하며 매일의 삶에 찌들어 살던 외롭고
쓸쓸한 세상의 약자들, 우리의 이웃이요 형제들인 그 사람들이
그 말씀에 감동감화 받았습니다. 아니 예수님의 존재만으로도,
그들과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위로받고 은혜받고 힘을 얻었지요.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막대한 돈의 힘입니까?
아니면 근사한 교회 건물의 힘입니까. 세상의 권력을 가졌습니까.

오늘 한국 교회가 대통령을 수렴청정하기에까지 이르렀지만,
그토록 지대한 권력을 지녔지만, 엄청난 교회 건물과 성도수,
천문학적인 교회 재정으로 세상을 호령하며
거의 안하무인으로 정치인들을 좌지 우지하기 까지 하며
사회 여론을 호도하는데 까지 이르렀지만 손교수님의 일갈대로
한국 교회 100년이래 지금이야말로 가장 타락하고 가장 썩어서,
어느때보다 사랑이 필요하며 용서와 화해가 필요하고
사회정의와 공평무사가 절실한 오늘날 이 세상에 대해서는
정녕 아무 것도 할 수도 없고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이나 받는
거대한 공룡같은 오만하고 편협한 또하나의 세상 권력,
우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입에 거품물고 가장 공격적인 모습으로
세상에 도전하며 끝없이 분란을 일으키고 화해와 평화는 커녕
분쟁의 씨앗으로 끊임없이 갈등을 양산하고 있는 한국 기독교.
여기에 예수님의 사랑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습니다.

오늘 한국 기독교가 말하는 예수님의 사랑은 세상을 향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신만을 향한 유아적 수준의 사랑입니다.

'나를 구원해 주시고, 나를 이뻐해주시고, 나를 잘살게 해주시며, 나를, 나를 나를..'
전부 나에 대한 이기적인 사랑, 유치하기 짝이없는 미숙한 사랑입니다.
조금 더 발전했다하더라도 우리 교회 식구 정도일까요?
이런 가운데의 선교란 한낱 공허한 외침일 뿐입니다.

그와 같은 바탕에서의 선교는 그 선교 가운데 제아무리 힘든 육체적, 물리적 위험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예수께서 받으신 고난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것이며 예수와 관련하여 아무 필연성도 없는 고난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개신교는 그 고난을 마치 예수의 고난과 동일시 하며 스스로
환상에 빠져 마치 자신들이 순교자라도 되는 듯 행동하고 말하지요.
이것은 단지 몽환적 수준의 자기 도취에 다름이 아니지요.

이런 가운데의 선교의 결과들은 대부분 자기 신앙에 있어 지극히 자화자찬의 수단으로만 남아 교회를 키우고 살지우는데나 기여할 뿐입니다. 그런 껍데기만 남은 경험들은 아무런 변화를 세상에 주지 못합니다.

선교가 부수적 산물이라는 아프리카님의 언어를 사랑합니다.
사랑의 부수적 산물이지요. 바로 그것입니다.
아프리카 오지에, 가난한 서남 아시아지역에 사랑을 하러 가는 것이지 선교를 하러 가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 스스로 사람다운 존재로
자각하고 일어설 수 있도록 내가 예수가 되어 찾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한마디도 하지 않아도, 교회를 말하지 않아도,
십자가를 보여주지 않아도 결국 그들로 하여금 저절로 깨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 방식의 선교라고 믿습니다.

눈만 뜨고 입만 열면 선교를 외치는 한국 교회는 먼저 예수님의 사랑을 회복해야합니다. 그것을 먼저 회복하고 깨우쳐야 비로소 선교가 눈에 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회복해야한다는 이 단순하고 뻔한 이야기에 식상하고 별 내용이 없는 것이라 치부하시는지요.

생각컨데 예수사랑의 가장 핵심 중 하나는 나를 버리고 남을 대신 채우는 것인데 그것은 곧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것인데 과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처럼 나와 다른 존재들을 인정하고 귀히 여기는 지 돌아 보아야 합니다.

불교도와 이슬람교도들, 아니 이렇게 멀리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교회내에서 나와 생각이 다른 존재들, 성경을 나와 조금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 예수에 대한 생각이 조금 다른 사람들에 대해 과연 나는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들을 진정 존중하고 인정하는 지.. 과연 나는 서로 다른 사이에서 서로를   '화평케하는 ' 존재인지.


내 약함에 강함되시는 주를 찬양한다 눈물흘리며 인상쓰며 찬양은
하면서 왜 교회가 세상적으로 강해지려 합니까. 왜 교회가 권세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왜 교회가 재정적으로 부자가 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까?  진정 예수를 모르기 때문 아닌지요.

교인수가 적다고 마음 아파하지 말며 교인 수 늘리는 것이 교회 성장이라고 강박관념에 시달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철저히 가난해야 합니다. 철저히 힘없고 세상 빽없고 돈없고  가진 것이 정녕 없어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진정 의지하며 참되고 순수한 신앙으로 나아가며 예수님의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진정한 선교는 사랑의 부산물이다. 참으로 명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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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아프리카  |  2011-03-05 19:43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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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평화님의 이집트, 리비아 등등의 글 잘 읽었습니다.

선교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입니다. 우리가 종교적 선교를 하지 않든 이 세상은 이미 지구촌이 되었고 우리가 마시는 커피나 초콜릿은 남미나 아프리카 오지의 원주민들의 삶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니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encountering을 어떤 형태로든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사회학자 Mark Juergensmeyer가 편집한 [Religions in Global Civil Society]에 정치학자 Susanne Houber Rudolph가 쓴 [Religious Transnationalism\"이라는 논문을 며칠 전 읽었습니다. 선교에 대한 이해에 대해서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주더군요. 이 분은 \"an attempt to convert\"와 \"an attempt to bear witness\"는 차이가 크게 난다는 것입니다. 전자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알고 있는 선교이고 후자는 글자 그대로 증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예수가 살던 삶을 실천하는 것이지 특정 종파로 개종하자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정 종교나 종파로 개종을 시도하는 도가 지차치면 결국 종교적 갈등은 증폭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차이를 저자는 \"universal church\"와 \"universal religiosity\"라고 설명합니다. 전자는 특정 종교를 확장하는 전통적인 선교 방법이고 후자는 종교가 달라서 서로 대화를 하면서 서로간의 종교성을 나누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후자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개종이나 선교를 거부하는 것은 달리 말해 자기 종교를 보호하기를 원하는 이슬람, 러시아 정교, 힌두교 등등도 좋아하는 개념이니까요. 중국에서 외국인 선교를 금하는 것도 그런 전략 중의 하나로 보입니다. 그래도 로돌프는 이 후자의 개념이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조심스런 진단을 내놓고 있습니다. 저도 동의하는 바구요. 저한테 러시아에 단기 선교로 간 한국 개신교도들의 선교 행위를 연구한 학자의 논문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세상 좁다구요. 한국인들이 러시아 이곳 저곳 들 쑤시고 다니면서 하는 선교 행위가 연구 논문으로 나오는 세상입니다.

내사랑아프리카  |  2011-03-05 20:21    지역 Calg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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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모자를 쓰신 것은 항암치료를 받은 탓으로 온 탈모 때문입니다. 수단에서 한국에 방문했다가 친구의 권유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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